“반려동물도 침 맞고 뜸뜨면 몸과 마음이 더 편안해져요” 최재호 최재호한방동물병원 원장
오랜 시간 ‘양방’이 굳건히 자리매김해온 수의학계도 최근 ‘한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여 년간 한방진료를 해온 최재호 수의사에게 들어보는 한방수의학의 세계.
최근 수의학계에서 한방진료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서울대와 전북대 수의과대학에서는 커리큘럼에 한방수의학 과목을 포함하고 있다. 서울대 동물병원은 지난 2020년 8월 한방진료를 공식 개시한 바 있다. 양방으로 진단이 어렵고 복잡한 만성의 노령성, 난치성 질환에 대해 한방의학적 전문 진단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대하는 반려인이 많아지면서 전문적이고 다각화된 수의학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이 한몫했다. 특히 기존 한의학에 긍정적인 반려인을 중심으로 한방수의학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그만큼 아직은 낯선 한방수의학에 관한 궁금증도 크다. 이에 최재호 원장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반려동물도 한방진료를 통해 몸과 마음이 더 편안해질 수 있다"며 "더 이상 가망이 없을 때 찾는 '최후의 방법’이 아닌 일상에 함께하는 하나의 선택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람은 침 안 놔주나요?"
보호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동물병원에서는 하얀색 의사 가운만 봐도 반려견이 경직되는 경우가 있다고 해요. 제가 보통 의사와 다르게 개량 한복을 입고 있어서인지, 한방 냄새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물들이 편안하게 있는 편이에요. 물론 자주 오면 나중엔 병원인 걸 알아서 도망가려고도 하지만요(웃음).
침을 맞을 때 강아지들이 안 움직일 수 있나요.
그래서 침구 보정 틀이 중요합니다. 견종 크기에 따라 보정 틀을 달리 두고, 보호자와 같이 침술을 진행해요. 보호자가 옆에서 자장가를 불러주는 등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요. 그런 상태에서 침을 맞으면 심지어 코를 골면서 잘 만큼 편안해하기도 합니다.
한약도 중요한 역할을 하나요.
그럼요. 식사할 때 숟가락의 역할과 젓가락의 역할이 따로 있듯이 한방에서도 침의 역할과 한약의 역할이 따로 있어요. 면역 매개성 질환 등을 다룰 때 면역을 올려주는 부분은 침보다는 한약이 좋아요. 근골격 질환을 앓는 반려견에게는 적외선 치료도 추천합니다. 가정에서도 원적외선 등으로 따뜻하게 쬐어주면 혈액순환이나 관절 치료에 도움이 됩니다. 사람 치료 방식이랑 큰 맥락은 같아요.
한의학이 활성화된 것에 비해 한방수의학은 아직 인지도가 낮은 듯해요.
냉정하게 말해서 아직 수의사들 사이에 한방수의학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입니다. 정작 보호자 중에는 본인이 직접 한의학의 효과를 보고 반려견에게도 효과가 있을지 먼저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한방 전문 수의사는 상당히 드물죠.
왜 그런가요.
쉽게 말해 한방수의사가 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개인적으로 최소 1년의 시간을 들여 전통수의학회에서 한방수의사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침술을 포함한 한방수의학을 연마해야 하고요. 이때, 수의과대학에서 배운 양방수의학의 관점과도 완전히 달라서 공부가 더 어렵죠.
어떻게 다른가요.
양방은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하거나 수술을 진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처치합니다. 반면 한방은 치료보다는 보호의 개념에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아요. 응급한 상황에서는 양방학적 접근이 우수하고, 관리나 치유 개념에서는 한방이 좋다고 봐요.
구체적인 사례가 궁금합니다.
예전에 3주 가까이 설사를 계속하는 반려견이 찾아온 적이 있어요. 양방에서 분변 검사를 했을 때 장염 등의 증상도 없었고, 지사제나 항생제를 처방받았는데도 낫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한방에서는 이 같은 장 트러블은 간에 스트레스가 쌓여 비위를 압박해서 발생한다고 봅니다. 실제 진단 결과 반려견의 스트레스가 심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호텔링을 한 이후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서 보호자와 재회하며 긴장이 확 풀린 것이었죠. 이에 교감신경이 항진되면서 설사가 시작됐고 소화기와 신장도 탈진됐고요. 간 기능을 끌어올리는 한약을 처방하고 침으로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부위를 자극하니 한결 좋아졌습니다. 아로마 요법을 병행해 안정도 찾아줬고요. 심하게 짖거나 예민한 반려견에겐 장미허브 잎을 가볍게 문질러 코에 발라주면 금세 차분해집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진료가 끝날 때쯤 보호자들이 꼭 하는 질문이 있어요.
무엇인가요.
‘사람은 침 안 놔주나요?’입니다(웃음). 실제로 반려견을 진료하다가 보호자들이 상담하고 가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관련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앞선 예와 비슷한 소화기 질환 사례입니다. 설사가 멎지 않아 온 강아지가 있었습니다. 보호자에게 침 한 방이면 다 낫긴 하는데 부작용으로 변비에 걸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어요. 꼬리 바로 밑에 경락*이 시작되는 '교사’라는 자리가 있는데 여기에 침을 놓으면 웬만한 소화기 질환은 잡을 수 있죠. 정말 그날부터 설사가 멈췄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보호자분이 다시 와서 "형부가 묻는데, 혹시 사람은 어떻게 안 될까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분도 지금 몇 주째 배탈로 고생 중이라면서요. 저는 수의사지 한의사가 아니라서 안 된다고 했습니다(웃음).
*경락: 인체 내 경맥과 낙맥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전신의 기혈을 운행하고 각 부분을 조절하는 통로
한방진료가 동물에게 효과가 특히 좋다고요.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사람보다 효과가 3배는 더 빠르다고 봅니다. 사실 보호자들의 철저한 관리가 큰 역할을 해요. 사람은 병원에서 '밀가루 먹지 마세요’ '술 마시지 마세요’ 얘기를 듣고도 먹는데, 반려동물들은 철저하게 관리가 돼서 다른 변수가 개입할 수 없어요. 순수하게 진료 효과를 볼 수 있는 거죠.
감정까지 고려해야 치료 효과 높아져
소화기, 면역 매개성 질환 등 다양하지만 병원을 찾는 반려견의 90%는 근골격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예전에 14세 된 노령견이 허리가 굽고 목도 처진 상태로 방문했어요. 엑스레이 사진을 보니 뼈 사이사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고 경추와 흉추 손상도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치료하고 나니 스스로 걸을 수도 있고 상당히 호전됐습니다. 엑스레이 사진상 뼈는 그대로였는데 말이죠.
어떻게 치료했나요.
흔히 '디스크가 터졌다’고 할 때는 디스크 내부에 있는 수핵이 밖으로 돌출돼 척추 신경을 압박하고 신경학적 증상을 유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인대가 수핵이 척추 신경을 압박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한방에서는 이 인대의 힘을 곧 간의 힘이라고 봐요. 침을 통해 평활근(내장의 벽을 구성하는 근육)이 긴장된 것을 이완시키고, 한약으로 어혈 통증도 줄여줬습니다. 기의 흐름이 막혀 있어서 어혈 통증이 생기는 것인 만큼 혈액순환을 활발히 한 것이죠. 그런데 20년 가까이 한방 치료를 하면서 느낀 것은, 이런 치료는 기본적이고 결국은 동물의 감정까지 고려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예컨대 원래 대소변을 잘 가리는 반려견인데 허리가 아파서 패드까지 못 가고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동물들도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해져요. 그러다 보면 소화기부터 시작해서 전체 근육이 위축됩니다. 이때 아로마테라피 등으로 우울감을 풀어주면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치료 효율도 높아집니다. 동물도 감정과 생각이 있을까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실제 치료 시 감정적인 컨트롤을 했을 때 치료 효과가 더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주로 노령견들이 많이 온다고요.
강아지들은 생체력이 좋다 보니까 항생제만 복용해도 빨리 낫습니다. 한방진료까지 받을 일이 거의 없죠.
한방진료가 노령견에게 효과가 좋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기본적으로 생체 장기 기운이 많이 떨어집니다. 노인이 돼서 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치료의 대상이 아닙니다. 자연스레 인정하고 관리해야 하는 영역이죠. 개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령견들의 고통과 불편을 덜기 위해 아픈 부위에 침도 맞고, 뜸도 뜨는 것이죠. 장기적으로는 한방수의학이 반려견의 호스피스 역할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호스피스 역할을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개도 맥을 짚어서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노쇠한 개의 경우에는 남은 수명도 대략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 입원 치료를 받으러 온 진돗개가 있었는데 맥을 짚어보니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고요. 보호자에게 입원시키기보다는 댁에 가서 식구끼리 있다가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실제로 집에 돌아가서 마지막 가족 구성원이 오는 것을 보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떠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일을 경험하면서 침술이나 아로마테라피 요법으로 반려견이 마지막 가는 길에 고통을 완화하도록 돕고, 보호자와의 시간을 더 갖게 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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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홍태식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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