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엔 퍼플을, 햇살 아래선 블루를

[김희연의 컬러 팔레트] 장마와 초여름 사이, 한국의 6월 어울리는 색들에 대하여

갑작스레 기온이 30도까지 치솟더니 이어지는 우중 주말, 성수동 한 복합문화공간에서 만난 오랜 친구는 회색 리넨 재킷에 라벤더빛 블라우스를 매치하고 있었다. 흐린 날씨 속에서도 얼굴이 화사해 보였고, 전체적인 인상은 단아하면서도 생기가 흘렀다.

그녀는 "이런 날일수록 밝고 투명한 색을 입고 싶어서 말이지"라며 웃었다.

필자도 그녀의 말처럼 그레이와 라벤더의 조합은 장마의 무채색 배경 위에서 더욱 빛나 보인다고 폭풍 칭찬을 날려 주었다. 날씨에 따라 기분이 바뀌듯, 색이 감정을 바꾸는 순간이었다.

라벤더. / pixabay

6월, 계절의 중심에서 우리는 두 개의 얼굴을 마주한다. 하나는 하늘이 뿌옇게 가라앉은 장마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초록이 무르익는 초여름의 청량한 표정이다. 이 극단의 계절이 주는 이중적인 감성은 자연스럽게 색채에도 반영된다.

컬러란 결국, 날씨와 기분, 공간의 분위기까지 대변하는 가장 섬세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장마철이 주는 첫인상은 ‘회색’이다. 컬러 전문가인 필자는, 정확히는 웜 그레이(warm gray) 혹은 쿨 그레이(cool gray)로 나눈다. 우중충하고 답답한 느낌을 주는 회색이지만, 패션과 인테리어에서 회색은 오히려 정제되고 단정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유용하다.

특히 쿨톤의 사람에게는 푸른빛이 감도는 그레이가 피부 톤을 살려주는 컬러로 작용하고, 웜톤에게는 베이지빛 그레이가 안정감 있는 인상을 준다.

여기에 함께 등장하는 색이 바로 딥 네이비(deep navy)다. 비 오는 날의 짙은 하늘과 젖은 아스팔트의 색을 닮은 네이비는 장마철의 묵직한 기분을 스타일로 승화시킨다. 특히 정장이나 우산, 아우터에서 많이 활용되며 실용성과 감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다.

또 장마 속에서도 짧게 스며드는 햇빛을 닮은 컬러가 있다. 바로 버터 옐로우(butter yellow)다. 흐린 날의 무채색 위에 은은하게 얹어지는 노란색은, 사람의 심리를 따뜻하게 다독여 준다. 최근엔 장마철 우울감과 심리 안정에 기여하는 색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6월 중순을 지나면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다. 여기서 키워드는 ‘생기’와 ‘맑음’이다. 에메랄드 그린(emerald green), 코발트 블루(cobalt blue) 같은 시원한 채도의 색들이 중심을 잡는다. 자연과 바다, 하늘에서 추출한 듯한 컬러들은 6월의 햇살과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 에메랄드 그린은 그 자체로 초여름 숲의 밀도와 싱그러움을 표현하며, 다양한 피부 톤에도 비교적 잘 어울리는 범용성 있는 색이다. 반면 코발트 블루는 쿨톤에 잘 맞는 색으로, 여름철 셔츠, 원피스, 스카프 등에서 경쾌함을 더해준다. 컬러 플레이가 중요한 시즌이기에 이 시기의 메이크업 역시 음영보다는 포인트 컬러로 생기를 더하는 방향이 어울린다.

벌새, 에메랄드 그린. / pixabay

이맘 때면 도심 곳곳에선 라벤더 퍼플(lavender purple)이 시선을 끈다. 특히 서울 하늘공원, 남산 둘레길 등지에서 보랏빛 수국과 라벤더가 한창 피어난다. 보랏빛은 장마 전후의 불안정한 날씨 속에서도 우아함과 감성을 유지하게 해주는 컬러다.

트렌디하면서도 차분한 이미지를 동시에 줄 수 있어, 라벤더 퍼플은 퍼스널컬러 진단에서도 최근 매우 인기 있는 컬러군으로 꼽힌다.

수국, 라벤더 퍼플. / pixabay

결국 6월은 흐림과 맑음, 습기와 바람, 침잠과 생동이 맞물리며 변화하는 시기다. 색도 그러하다. 한 쪽엔 그레이, 네이비, 퍼플이 절제된 조화를 이루고, 다른 한 쪽엔 옐로우, 그린, 블루가 생기와 청량감을 더한다.

컬러는 그 자체로 기분을 바꾸고,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올 6월, 회색 구름 아래에서 나만의 색을 찾는 건 어떨까. 그 어떤 계절보다 감각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