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러닝크루' 단속 너무해? "달리기 매너부터 챙겨라"

장수현 2024. 10. 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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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거치며 급증한 '러닝크루'
길막기·소음에 "운동장 혼자 쓰나" 민원
지자체 '5인 이상 달리기 제한' 권고
"단체 훈련할 곳 없어" 러너들 불만도
지난 2일 오후 8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한 러닝크루가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달리고 있다. 장수현 기자

지난 2일 오후 8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강공원. 삼삼오오 달리는 자전거 운전자들과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로 20여 명의 러닝크루(달리기 모임)가 등장했다. 10여 명씩 두 팀을 이룬 이들은 앞뒤로 짧은 간격을 두고 빠르게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한 차선을 가득 채운 러너들을 자전거가 스쳐가길 여러 번.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들은 크루에 부딪힐까 우왕좌왕했다. 한 크루가 지나가면 비슷한 규모의 크루들이 뒤이어 나타났다. 근처에서 반려견을 산책시키던 이모(62)씨는 "30~40명 정도가 뭉쳐서 달리는 일도 흔하다"며 "계속 피하기 불편해서 요즘은 다른 공원을 더 많이 이용한다"고 했다.

많게는 수십 명이 함께 달리는 러닝크루가 유행하면서 시민 불편이 커지고 있다. 일부 모임은 좁은 주로를 점령하거나 달리면서 큰 소리를 내는 등의 행동으로 눈총을 받는다. 지자체가 나서 단체 달리기 제한 방침까지 마련할 정도다. 이에 대해 "지나친 규제"라는 비판도 제기되지만, "러닝 크루들이 먼저 매너를 지켜야 한다"는 지적도 강하다.


급증한 러닝크루, 달리기 예절은 '정체'

지난달 8일 철원 DMZ 국제평화마라톤 대회가 강원 철원군에서 열린 가운데 하프코스 참가자들이 비무장지대 출발점에서 달리기 시작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 직접 연관 없는 사진. 철원=홍인기 기자

달리기가 부쩍 인기를 끈 것은 실내 운동이 어려웠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부터다. 최근엔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과 소통하며 달릴 수 있는 소모임인 러닝크루가 급증하고 있다. 네이버에 따르면 커뮤니티 플랫폼 '밴드'에서 러닝과 걷기를 주제로 삼은 모임은 2021년 9월 대비 올해 9월 90%가 증가했다. 밴드에서 '러닝'을 검색하면 지역 소모임만 2,653개가 나타난다.

문제는 모임 증가와 함께 공공장소를 이용하는 시민 불편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경기 고양시의 일산호수공원에서 주말 오전 6시마다 개인 운동을 한다는 박모(40)씨는 "저랑 같은 시간대에 10~12명이 좁은 주로를 다 차지하고 달린다"며 "계속 큰 소리로 '파이팅!' 구호를 외쳐 놀라게 하는 것도 불편하다"고 했다. 매일 뚝섬한강공원과 반포종합운동장 등지에서 뛰는 김원정(29)씨도 "(한 러닝크루) 30~40명이 트랙의 4분의 1을 점거해서 꼬리잡기하는 줄 알았다. 본인들만 운동장을 쓰려고 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고 전했다.

3일 온라인에서 판매되고 있는 러닝 강습 수강권. 주3회 12만5,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수강권 판매 사이트 캡처

유료 달리기 강습·행사를 운동장이나 사람 많은 야외에서 여는 일도 흔하다. 포털사이트에 '러닝클래스'를 검색하면 회당 1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연세대운동장, 교대운동장 등에서 달리기 훈련을 하는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각 지자체에는 "(운동장) 트랙 중간에 멈춰서 자세 교정하는 사람들 때문에 부딪힐 우려가 크다", "뛰는 도중 사진을 찍어 통행에 방해된다"는 민원이 제기돼 왔다.

지난달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에선 A 러닝크루가 유료 러닝 행사를 추진하는 일도 있었다. 소규모 민간 달리기 행사는 도로점용허가를 받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인도 통행 방해가 우려된다'는 취지의 시민 민원이 접수되자, 단체는 근처 광장으로 행사 장소를 변경했다.


지자체 권고도 효과 없어…"동호인들이 문화 바꿔야"

서울 서초구 반포종합운동장에 걸린 '5인 이상 단체 달리기 금지' 현수막(위쪽 사진)과 성동구 서울숲에 걸린 '단체 달리기 자제' 현수막. 온라인 커뮤니티

민원이 쏟아지다 보니 지자체가 직접 나선 곳도 있다. 반포종합운동장을 관리하는 서초구는 지난 1일 5인 이상 달리기 제한을 시작했다. 5인 이상 주로에 뭉쳐있거나 러닝 유료 강습을 하면 퇴장당할 수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민원이 반복돼 '유료강습 금지' 현수막을 달고 관리 직원들이 현장에서 계도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조치 이유를 밝혔다. 송파구와 성동구도 각각 석촌호수와 서울숲에 "단체 달리기를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걸었다.

하지만 지자체 권고만으론 역부족이다. 2일 반포종합운동장에선 제한 이전과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김씨는 "5인 미만은커녕 7, 8명씩 두 그룹이 1~4레인 전체에서 쉬었다 달렸다 반복하며 인터벌 훈련을 하더라. 숙련된 러너 입장에서도 위협적이었다"고 비판했다. 일부 러너들은 달리기 커뮤니티에서 "운동장 말고 어디서 단체 훈련을 하냐", "지자체까지 나서는 건 과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경기 파주시에 기반한 '파주러닝클럽'이 공식 인스타그램에 공지한 러닝 에티켓. 파주러닝클럽 인스타그램

갈등이 커지자 달리기 예절수칙을 세워 자정 노력을 하는 러닝크루들도 있다. 경남 창원시 기반의 크루 '뛰닝'은 "페이스별 소그룹 편성해서 뛰기", "고성방가 금지" 등 8개 수칙을 만들어 지난 8월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지했다. 200여 명 규모의 '파주러닝클럽'은 운영진 회의를 통해 "달리다 갑자기 멈추지 않고 4~6번 레인으로 신속하게 이탈 후 멈추기", "운동 중 상의 탈의 지양" 등의 규칙을 세우고 달리기 전 안내하고 있다.

김인욱(48) 파주러닝클럽 매니저는 "동호인들이 직접 (러닝) 매너를 바꿔야 지자체 제한도 풀리고 시민 인식도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한국 사회에 달리기 문화가 정착 중인 과도기이니 시민분들께서도 조금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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