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같이 사랑만 쏟는 ‘신성한 모성’은 없다
‘잠든 아기를 바라본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취약함을 응시하는 것이다. 아기의 부드럽고 평화로운 숨소리를 듣고 있으면 평온함과 경외감이 교차한다….’
지난해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른 멕시코 작가 과달루페 네텔(51)의 소설 ‘이네스는 오늘 태어날 거야(원제 La hija única·외동딸)’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비혼·저출생 시대에 모성(母性)을 다각도로 탐구하는 소설. 여성 인물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인생의 기쁨인 동시에 고통인 임신·출산·육아 과정을 그린다. ‘아이를 가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넘어 ‘엄마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고찰한다.
지난해 이 소설이 영어로 번역되자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주요 외신은 크게 호평했다. 부커상 심사위원회는 “자유·장애·의존성에 관한 복잡한 질문을 너무나 직설적으로 던져 따끔거린다”고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는 “모성이라는 경험을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룬다”며 추천사를 썼다. 지난 8월 국내 출간을 계기로 작가를 이메일로 만났다.
“서구 사회에서 성모 마리아로 대변되는 ‘신성한 모성’의 고정관념을 부수고 싶었어요. 모성의 형태는 정말 다양하거든요.” 엄마가 되는 것에 입장 차를 가진 여성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 “연민, 보호, 온화함, 이타적인 사랑…. 24시간 내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엄마는 없어요. 이걸 한 사람에게 요구하는 건 부당해요.” 네텔은 여성에게 모성을 짐처럼 지우기를 거부한다. 대신 새 생명을 마주하는 기쁨과 이를 통해 얻는 생의 의지, 연약한 존재를 돌보는 마음, 아이를 키우기 위해 협력하는 여성 간의 상호 연대 등에 주목한다. “저 역시 엄마이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어요.”
주인공이자 화자인 라우라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비혼 여성이다. ‘아이를 갖자’는 파트너의 말에 라우라는 이런 생각을 한다. ‘절대 자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고층 빌딩 테라스에서 심연에 홀리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나는 임신의 유혹을 느꼈다.’ 라우라는 삶의 주도권을 뺏기지 않으려고 영구적 피임인 난관 수술을 감행한다.
자식이 ‘족쇄’라는 데 공감해 왔던 절친 알리나가 임신 소식을 전하면서,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다. 알리나의 딸 이네스는 태어나면서부터 활택뇌증(뇌가 평평한 질환) 진단을 받는다. 직장이 주는 자녀 의료보험 혜택이 절실했던 알리나는 출산휴가를 마치고 곧장 일터로 복귀한다. 대신 보모 마를레네에게 딸을 맡긴다. 알리나는 엄마로서 자신의 자리를 뺏긴 것 같은 상실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이네스가 음악에 맞춰 춤추듯 몸을 움직이는 순간, 엄마와 보모는 한마음으로 환희에 빠진다.
말썽꾸러기 아들 니콜라스 때문에 삶의 의욕을 놓아버린 엄마 도리스도 있다. 이들 옆집에 사는 라우라는 도리스 대신 니콜라스를 돌보며 ‘모성’을 느낀다. 내 아이에게만 모성을 느낀다는 건 고정관념일 뿐이라는 것.
최근 여성 대통령이 취임했지만, 그간 ‘마초의 나라’로 불린 멕시코라는 사회적 토양이 잉태한 소설이기도 하다. 작가는 “매일 10명 이상의 여성이 살해당한다는 공식 통계가 있다. 친구의 친구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가해자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소설을 쓸 당시(2020년) 멕시코에선 젠더 폭력에 반대하는 큰 시위가 일었어요. 그 움직임이 라틴 아메리카의 ‘낙태 합법화’ 요구 시위로까지 번졌습니다. 경험해 본 적 없는 여성 연대였어요. 그 경험이 자연스레 소설에 녹아들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출생률이 낮은 한국에 작품이 소개되는 소감을 물었다. “한국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느꼈어요. 한국 여성들은 사회에서 이미 상당한 억압을 받고 있구나. 거기에 아이까지 가지면서 억압의 무게를 더하고 싶지 않구나.” 네텔은 “다른 국가 여성들도 마찬가지로 억압받고 있고, 거기서 해방되려고 제 나름의 방식으로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좋은 조건이 뒷받침만 된다면 엄마가 되는 건 큰 즐거움이죠. 삶의 다양함을 경험할 기회를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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