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기일을 며칠 앞두고 혼자 산소에 올라갔습니다. 형제들과는 몇 해째 연락이 뜸해 늘 저 혼자 다니던 길이었습니다.그런데 그날은 비석 앞에 누군가 먼저 다녀간 흔적이 있었습니다. 국화 한 송이 아래 놓인 것을 보고 저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혼자 오르던 산소 길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형제들은 하나둘 발길을 끊었습니다. 유산 문제로 언성을 높인 뒤로는 명절에도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산소는 늘 제가 혼자 돌보았습니다. 풀을 뽑고 술 한 잔을 올리고 내려오는 것이 해마다 반복되었습니다. 이번에도 당연히 아무도 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비석 앞에 놓인 것
비석 앞에는 아직 시들지 않은 국화 한 송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작게 접힌 종이 한 장이 돌에 눌려 있었습니다. 펼쳐 보니 형의 글씨로 아버지께 죄송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동생과 화해하지 못해 면목이 없다는 문장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종이를 손에 쥔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산을 내려오며 건 전화
내려오는 길에 몇 년 만에 형의 번호를 눌렀습니다. 형은 한참 말이 없다가 산소에 다녀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쪽지를 봤다고만 말했고 형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기일에 함께 산소에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형제 사이의 서운함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먼저 내민 작은 손짓 하나가 오래된 매듭을 풀기도 합니다.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형제가 있다면 오늘 짧은 안부라도 먼저 건네 보시면 어떨까요. 부모님이 가장 바라셨던 것도 그 모습일지 모릅니다.
Copyright © 본 콘텐츠는 저작권이 보호되며 카카오 운영지침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