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는 반시장적 제도인가[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13)

2022. 11. 2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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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탈리아 등 도입…정부는 반대 입장
“유가가 상승하면 왜 정유사의 이익이 늘어나느냐? 조금 마법함수와 같은 게 있지요.”

이 발언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정유사들은 원재료인 원유를 구매해 정제해 만든 휘발유, 경유, 등유 등을 판매한다. 원재료인 원유의 가격이 오르면 이를 얼마나 판매가에 반영하느냐에 따라 정유사들의 수익성이 달라진다. 유가 상승기에는 매번 정유사의 이익이 급속도로 커졌다. 이를 이 발언자는 ‘마법함수’라고 표현했다. 같은 사람의 다른 발언을 살펴보자.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등 관계자들이 지난 7월 2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칼텍스 본사 앞에서 재벌 정유사의 폭리를 규탄하고, 정부에 ‘횡재세’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알뜰주유소는 그 세금(유류세) 인하 효과가 상당히 빠르게 나타나고 있는데 일반 주유소들은 사실은 저희들이 가서 확인을 함에 있어서도 그 효과가 시차를 두고 상대적으로 조금 굉장히 천천히 나타나고 있는 그런 현상이 있기 때문에….”

4대 정유사들에 직접 공급을 받는 주유소들과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알뜰주유소 간에 유류세 인하 효과가 다르다는 지적이다. 원재료 가격의 상승분 이상을 판매가에 반영하는 정유사들이 유류세의 인하분을 바로 판매가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런 발언을 한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윤석열 정부의 경제사령탑인 추경호 경제부총리다. 지난 7월 2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횡재세에 대한 추 부총리의 입장을 물었다. 추 부총리는 ‘마법함수’ 등 정유사의 시장지배력에 대해서는 여러 의미심장한 발언을 내놨지만, 횡재세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렇게 말이다.

“저는 그들이 법인세를 제대로 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횡재세 이런 접근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외부 요인으로 얻은 과도한 이익에 부과

횡재세(windfall tax)란 기업이 자신들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아닌 특정한 운이나 외부 요인으로 얻은 과도한 이익에 부과하는 세금을 의미한다. 영어로 횡재를 뜻하는 윈드폴(windfall)은 ‘바람에 떨어진 과일’에서 유래했다. 횡재세보다 더 많이 사용된 비슷한 단어로 ‘초과이윤세(excess profit tax)’가 있다. 초과이윤세는 역사 속에서 여러차례 도입된 적이 있다. 학계의 기존 연구에서도 ‘물가 상승 국면에 시장지배력을 가진 기업들이 판매가를 인상하며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며 누리는 이윤’이라고 정의됐다. 현재의 국면에선 시장지배적 사업자들이 원재료 비용 증가를 상회하는 판매가 인상으로 횡재 이윤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이 둘 간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공론장에선 횡재세라고 부르고, 법률에선 초과이윤세란 용어를 더 자주 사용할 뿐이다.

국내에서 지난 4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유류세 인하 효과가 제한적이라며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정유사에 횡재세를 거둘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국내에서는 처음 제기했다. 필자도 지난 7월, 이 지면을 통해 물가대책으로 횡재세를 거둬 대중교통 지원 정책 재원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을 한 바 있다. 그 이후 용혜인 의원과 이성만 의원이 국회에 횡재세 도입 법안을 법인세법 개정안으로 발의했다. 앞선 추 부총리의 발언과 같이 정부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 이후 국회 담당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에서도 제대로 논의된 바 없다.

이렇게 후속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여러 이유가 있다. 일단 횡재세가 우리 사회에서 낯선 제도다. 기업이 많이 벌었다고 그 이윤에 추가적인 과세를 하겠다는 조치가 반시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른 국가들의 분위기는 우리와 사뭇 다르다. 스페인은 2021년에 부담금의 형태로 초과이윤세를 처음 도입했다.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올해 3월부터 도입했다. 헝가리는 에너지 기업에 주로 부과한 다른 나라들과 달리 금융, 보험, 소매, 제약 등에도 횡재세를 부과하고 있다. 미국 역시 하원에 석유와 가스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푸틴 전쟁에 따른 수익취득 금지법’이 발의돼 논의 중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예상대로 공화당이 압승을 거두면 횡재세 도입이 어려우리라 관측됐지만, 민주당이 상원 과반을 유지하는 의외의 결과가 나와 논의의 불씨가 살아 있다.

윤석열 정부의 리시 수낵은 누구일까

국가 단위로 이뤄지던 횡재세 논의가 최근엔 더 확대됐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9월 20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모든 선진국에 화석연료 기업들의 횡재 이익에 세금을 부과할 것을 촉구한다”고 발언했다. 유럽연합은 보다 실질적인 규제안을 마련 중이다. 유럽연합 이사회는 ‘연대기여금(solidarity contribution)’이란 이름으로 횡재세를 공식화했다. 이전 4개년 과세가능 이익 대비 20%를 상회한 이익을 과세 대상의 ‘초과이익’으로 정의한 뒤 유럽연합 회원국에 초과이익의 최소 33% 세율을 적용하는 방안으로 설계했다. 영국,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헝가리, 루마니아, 네덜란드 등 이미 시행 중인 회원국엔 연대기여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특히 보수정당이 집권한 한국은 마찬가지로 보수당이 집권당인 영국의 사례를 눈여겨볼 만하다. 영국에서 연초에 노동당 쪽에서 발의한 횡재세 법안에 보수당 정부는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는 “횡재세가 도입되면 에너지 기업은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유가 상승으로 국민의 생계 부담이 커지자 리시 수낵 당시 재무장관은 5월 26일 석유와 가스 업체에 법인세율에 25% 세율을 더하는 초과이윤세를 한시적으로 도입하고, 석유와 가스 요금이 정상화되면 세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영국은 감세 정책을 내세운 리즈 트러스 총리가 집권해 횡재세 폐지가 예측됐지만,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 감세안으로 환율과 채권 금리가 요동을 치며 혼란을 자초한 뒤 45일 만에 실각했다. 차기 총리는 횡재세를 도입한 전 재무장관이자, 트러스에게 감세의 위험을 미리 경고한 리시 수낵이었다. 리시 수낵도 보수성향의 정치인이지만, 인플레이션 국면에 감세는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자주 드러냈고, 고물가에 피해를 받는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 추가적인 증세 조치를 천명했다.

반면 한국은 유럽이나 미국처럼 정유사들이 역대 최대 이익을 얻고 있지만, 물가 상승 부담을 온전히 국민에게 안기고 있다. 그나마 취한 대책이 유류세 인하였다. 이 역시도 소비자에게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름 실행하고 있는 물가 정책이 있다. 바로 원가 상승으로 천문학적으로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는 한전을 방치하는 일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가와 연동해 전기요금을 인상해야 한다. 정부는 국민의 눈치를 보며 전기요금을 찔끔 인상하는 데 그쳤다. 글로벌페트롤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석유와 가스의 가격이 급등한 지난 1년 반 동안 횡재세를 도입한 이탈리아, 영국의 전기요금은 2배 정도 올랐지만, 한국은 17.5% 인상에 그쳤다. 이들 국가는 원가 상승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대신에 횡재세로 거둔 세수입으로 저소득층에게 지원하는 체계를 정책으로 만들어 위기에 대응했다. 한국에선 한국전력이 올 한해에만 24조원 이상의 채권을 발행해 채권시장의 자금조달 금리를 올렸다. 그마저도 일반 회사채가 팔리지 않아 기업들이 연쇄도산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엉뚱하게 던진 폭탄으로 채권시장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섰다. 정부가 이런 위기에 대응하려면 리시 수낵과 같은 인물이 윤석열 정부에도 나와야 한다. 감세 조치를 철회하고 적절한 증세 조치로 얻은 세수입으로 고물가로 피해를 입은 저소득층을 지원해야 한다. 이 국면에 증세할 수 있는 대상은 초과 이윤을 얻는 기업이 되는 게 당연하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가 열리는 이집트 샤름 엘-셰이크에서 지난 11월 16일 기후활동가들이 화석연료 사용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EPA연합뉴스


독과점 교정하는 시장친화적 방안

물론 횡재세도 딜레마 속에 있다. 일단 횡재세는 기업의 늘어난 이익에 추가적인 과세를 하기 때문에 반시장적이란 비판을 받는다. 이런 비판은 “기업이 어려울 땐 손실을 감내하게 하더니, 실적이 좋아지니까 추가로 과세하려 하느냐”는 반문으로 이어진다. 정유사들의 3분기 실적이 대폭 악화해 횡재세 부과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과연 그럴까.

횡재세는 독과점 상태의 시장실패를 교정하는 시장친화적인 방안이다. 주류경제학은 시장의 가장 중요한 미덕을 ‘유효한 경쟁’으로 꼽는다. 횡재세를 부과하려는 시장은 이런 유효 경쟁이 없는 독과점 상태다. 만일 유효한 경쟁이 있다면 기존 사업자들이 원재료 가격 상승분 이상을 판매가에 반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다른 사업자들이 새로 시장에 진입해 그보다 낮은 판매가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유업은 엄청난 자본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어서 아무나 진입할 수가 없다.

최근 국책연구원의 보고서에도 횡재세가 유효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이 나온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이 지난 9월 28일 낸 ‘우리나라 인플레이션의 특징과 시사점’에서 “석유·석탄제품은 가격 상승률이 비용 상승률보다 30%포인트 이상 높아 양자 간 격차가 가장 크다”며 “독과점적 시장구조에 기초해 비용 상승분을 훨씬 초과하는 과도한 가격 상승이 존재하는 경우, 이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한 인플레 대응 정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른 비판들은 어떨까. 어려울 때 손실을 감내한 기업은 다음 해의 법인세 납부액에서 감면을 받는 이월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또한 정유사들이 3분기에 이어 4분기에도 실적이 지속적으로 나빠진다면 자연스레 거둘 횡재 이익이 없어진다.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현실은 올해 3분기 정유 4사의 영업이익 2조7356억원이 2분기의 7조5536억원에 견줘 줄어든 수치일 뿐 예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큰 규모라는 점이다.

횡재세가 기업의 투자를 줄인다는 비판은 그나마 합리적이다. 유럽연합이 횡재세를 고려한 주된 배경은 에너지 기업들이 거둔 초과 이윤을 재투자하기보다는, 자사주를 매입하거나 내부에 유보를 하기 때문이었다. 횡재세를 부과하면 공급이 줄어 오히려 구매력이 부족한 소비자에게 불리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횡재세는 판매세가 아니기 때문에 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의 횡재세 논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엄청난 비극으로 인한 공급발 물가 상승은 모두에게 동등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극심한 고통을 주고, 누군가에겐 견딜 만한 고통을 준다. 또 에너지 기업, 금융사, 글로벌 식품업체들엔 횡재의 이익을 주고 있다. 과연 이게 공정할까. 이 횡재와 고통을 동시에 줄일 수 있는 주체는 정부뿐이다. 그런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 주체는 우리밖에 없다.

윤형중 정책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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