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우린 로봇이 아니다”... 유럽 축구 혹사 논란
“우리는 로봇이 아닙니다. 경기 수를 줄여야 더 좋은 경기력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손흥민(32·토트넘)은 26일(한국 시각) 가라바흐(아제르바이잔)와 맞붙는 2024-2025시즌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UEL) 1차전을 앞두고 최근 불거진 경기 일정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어 “우리는 축구를 사랑하고 경기에 나서는 것을 즐긴다”며 “다만 경기 수와 이동이 지나치게 많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에 나서면 부상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이 논란에 대해 불을 지핀 이는 2023-2024시즌 발롱도르(한 해 최고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 후보로 꼽히는 수비형 미드필더 로드리(28). 맨체스터 시티 핵심 전력으로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에 힘을 보탠 뒤 유로 2024에 참가해 스페인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는 지난 시즌 63경기 5275분을 소화했고, 2022-2023시즌엔 66경기 5306분을 뛰었다.
그는 지난 17일 UEFA 챔피언스리그(UCL) 경기를 앞두고 “선수들이 파업에 돌입할 상황이 가까워졌다”며 “팬들이 원하는 더 좋은 축구를 위해선 우리도 쉬어야 한다. (노르웨이의 유로 2024 본선 탈락으로) 쉬고 온 엘링 홀란이 골을 몰아치는 모습을 보면 왜 이런 요청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발언이 있은 1주일 뒤 로드리는 쓰러졌다. 지난 23일 아스널전에서 오른쪽 무릎 인대를 크게 다친 것. 최악의 경우 남은 올 시즌을 뛰지 못할 수 있다. 페프 과르디올라 맨시티 감독은 “카라바오컵(리그컵)엔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 주로 2군 선수들을 내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EPL 팀들은 치러야 할 경기가 많은 편이다. 정규 리그인 EPL과 아마추어부터 모두 참가하는 FA컵, 1~4부 리그 팀이 나서는 리그컵을 모두 소화해야 하고, 상위권 팀은 순위에 따라 UCL과 UEL 등 유럽 대항전에 출전한다. 올 시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 훌리안 알바레스(24)는 지난 시즌 맨시티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71경기에 출전했다.
축구 선수들이 한 경기를 교체 없이 뛰고 100% 체력을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보통 최소 48시간에서 72시간으로 추산한다. EPL은 ‘겨울 방학’이 있는 다른 빅 리그와 달리 연말 2~3일 간격으로 3연전을 펼치는 일정으로 악명이 높다. 회복할 시간이 적어 선수들이 다칠 가능성이 커진다는 지적. 2018-2019시즌 12~1월 EPL 경기당 부상자는 평균 2.3명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리그 평균(1.9명)보다 높았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2022년엔 시즌 도중 카타르 월드컵까지 치르는 바람에 더 힘들었다. 2022년 10월 EPL 부상자 평균 결장 시간은 11.35일에서 월드컵이 끝난 직후인 작년 1월엔 19.41일로 치솟았다.
이전에도 강행군이 없었던 건 아니다. EPL 첼시는 2012-2013시즌 유럽 빅리그 역대 최다인 69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다만 그동안 선수들이 이를 감내하다 FIFA(국제축구연맹)와 UEFA 등이 최근 대회 규모를 키우고 방식을 바꾸는 등 수익 극대화를 위해 과도한 행보를 보이자 쌓였던 불만이 터지는 양상이다.
국제축구선수협회 유럽지부와 유럽프로축구리그협회는 지난 7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FIFA를 경쟁법 위반 혐의로 신고했다. 내년 FIFA 클럽 월드컵이 36팀, 2026 북중미 월드컵이 48팀 참가로 대폭 확대되면서 선수들 피로가 누적되고 부상 위험이 높아질 것이란 주장이다. 하비에르 테바스 스페인 라 리가 회장은 “선수들이 파업을 해서 클럽 월드컵이 사라진다면 환영할 일”이라고까지 말했다. UEFA가 올 시즌부터 챔피언스리그를 개편하면서 조별 리그 2경기가 늘어나고 상위 8위 안에 들지 못하면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UEFA는 유럽 국가대표 대항전인 네이션스리그를 2018년, 유럽 중상위권 클럽이 참가하는 콘퍼런스 리그를 2021년 각각 신설하기도 했다.
유럽 무대에서 뛰는 아시아나 남미 선수들은 대표팀 경기에 나서려면 장거리 이동과 시차 적응을 감수해야 하는 추가 부담도 있다. 손흥민은 2018년 6월부터 2019년 6월까지 러시아 월드컵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UAE 아시안컵 등에 출전하며 토트넘 48경기, 대표팀 23경기 등 총 71경기를 뛴 적도 있다. 그는 최근 3시즌 동안 모두 4500분 이상을 뛰었다. 손흥민은 “팬들은 가능한 한 많은 경기를 보기보다는 질 높은 경기를 보고 싶어한다”며 “FIFA 등 단체들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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