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에서 서울의대 편입, 결국 의사 그만두고 시작한 일
시간과 장소 구애받지 않는
근골격계 재활운동 솔루션
에버엑스의 윤찬 대표(41)는 10년 넘게 정형외과 의사로 일하며 한 가지 지점에 아쉬운 점을 느꼈다. 바로 재활운동이다. 의료진은 재활운동의 중요성을 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환자들은 혼자 재활운동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다고 의료진이 환자 하나하나를 붙잡고 재활운동을 시킬 수는 없다. 시간과 비용이 드는 탓이다. 윤찬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골격계 재활운동·처방 비의료기기 솔루션 모라(MORA)를 개발했다. 윤찬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기존 재활운동치료 방식에 의문을 느낀 정형외과 의사
윤 대표는 2001년 카이스트 생명과학과에 입학했다. 유학을 꿈꿨지만 현실적으로 제약이 많다고 판단했다. 가족과 상의한 끝에 서울대 의과대학으로 학사 편입을 했다. 2009년 의대를 졸업하고 공중보건의로 시작해 지금까지 의사로 일했다.
그는 레지던트 시절부터 재활운동 분야에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걸 인지했다. “근골격계 환자들에게는 재활운동치료가 아주 중요해요. 하지만 혼자 이를 수행하는 덴 무리가 있습니다. 재활운동치료는 주에 3~5회씩 두 달 이상 해야 효과가 있는데요. 매번 내원해서 재활운동을 한다는 건 시간, 돈, 장소 관점에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병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재활운동치료 보험 수가가 30분에 7000원입니다. 이 돈으로는 병원이 수익을 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병원에서 재활운동 가이드가 될만한 책자를 나눠주거나 유튜브 영상을 추천하는 게 최선입니다. 이런 방식은 치료효과가 떨어집니다. 환자의 성별이나 나이, 상태를 고려해서 고안한 처방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죠. “
정형외과 의사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겠다고 생각할 즈음에 공동창업자를 만났다. “’근골격계 환자들의 재활치료가 어려운 게 참 문제다’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그러면 착용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볼까’라는 아이디어로 이어졌죠. 전문적인 치료가 가능한 웨어러블 기기를 만들어 보기로 했죠.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보자는 생각보다는 일단 만들어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근골격계 환자들의 재활치료를 돕는 웨어러블 기기 아이디어로 정부의 예비창업패키지에 선정됐다. ”아이디어가 탄생한 날이 마침 예비창업패키지 마감일이었어요. 부랴부랴 손으로 그림을 그려 넣고 지원했는데 된 거죠. 그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 법인설립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환자 혼자서 재활운동 하는 방법 고안
2019년 말부터 1년 반 정도 기계를 만드는 데 주력했지만 계속 문제에 부딪혔다. 기계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실패 이유도 파악이 안됐다. “기계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2020년 8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디지털 치료기기 인허가를 발표했어요. 발표 내용을 검토하다가 깨달음을 얻었어요. 근골격계질환에 대해서는 독일이 앞서고 있었는데요. 예시 속에 재활운동 처방 애플리케이션(앱)이 있었습니다. 소프트웨어로도 이게 가능하다는 사실에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2021년 4월, 하드웨어에서 디지털 치료기기로 사업모델을 전환했다. “2021년부터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서비스를 개발해나갔습니다. 2023년에는 디지털 치료기기로 처음 임상에 들어갔어요. 서울대병원에서 무릎통증, 만성 요통을 치료하는 탐색 임상이었죠.”
이 과정들을 통해 2023년 모라가 탄생했다. 병원과 스포츠 센터 등에서 쓸 수 있는 공개형 플랫폼이다. “모라를 활용한 치료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인공지능(AI) 기반 자세추정, 동작분석 의료기기인 모라뷰(MORAVu)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검사합니다. AI가 환자의 움직임을 분석해 근골격계를 평가하죠.이후 모라엑스(MORAEx)를 통해 맞춤형 재활운동을 처방합니다. 환자는 처방 받은 커리큘럼을 따라 집에서 재활운동을 합니다. 의료진은 환자의 운동과정을 모니터링하고 피드백을 줍니다. 환자가 모라 세계관을 따르기만 하면 2~3달 이상의 운동 과정을 소화할 수 있습니다.”
꼼꼼하고 치밀한 플랫폼을 설계한 배경에는 전문성으로 무장한 에버엑스의 팀원들이 있다. “저를 비롯해 의료진 출신이 많습니다. 이들이 직접 기초작업을 하고 3000개가 넘는 재활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구축했습니다. 의료진이 직접 감수한 가이드도 함께 제공되죠. 환자는 멀리 나갈 필요 없이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의료진의 지도를 받으며 안전하게 운동할 수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도 병행합니다. 근골격계 평가와 AI모델, 풍부한 콘텐츠와 인지행동치료 기능까지 모두 보유한 셈이죠.”
◇의료에 디지털 툴이 필요한 진짜 이유
에버엑스는 치료가 필요한 주요 관절에 대한 다수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것으로 특허도 받았다. 스타트업, 벤처업계의 주목도 한 몸에 받았다. 누적 105억원의 투자를 유치한데 이어, 지난 5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올해 7월까지의 매출은 7억원으로, 연말에 10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재활운동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작년까지 의사일과 사업을 병행했던 윤대표는 올해 병원을 그만뒀다. “의료가 행위중심에서 가치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환자는 괜찮아지면 병원에 안 옵니다. 그러니 환자가 어떻게 좋아진 건지 알 길이 없어요. 하지만 디지털 툴을 이용하면 어떻게 해야 좋아지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쉽게 알릴 수 있습니다. 의료비용도 줄어들고요. 디지털 툴 없이는 모든 환자를 의료진이 감당할 수 없어요. 그래서 관련 정책이나 기술도 쏟아지는 추세죠. ‘지금이 변곡점이구나. 잘해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병원을 관뒀습니다.”
모두가 섬세한 개인 맞춤형 재활 서비스를 누리는 세상을 꿈꾼다. “돈과 시간이 아주 많은 사람에게는 저희 서비스가 필요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전세계 모든 사람이 의료 서비스를 누리기에는 의료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개인에게 최적화된 솔루션을 만들었어요. 이를 통해 누구나 재활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미션입니다.”
의료와 기술은 상호보완의 관계라고 강조했다. “결국 의료 영역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려면 3박자가 맞아야 해요. 기술의 혁신, 제도적 수용, 환자의 니즈입니다. 환자가 재활운동의 중요성을 잘 알아야 기술의 혁신이 빨라지고 제도적 수용도 앞당길 수 있어요. 저희도 병원과 함께 이 방향으로 잘 나아가보려 합니다.”
/김지은 객원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