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상현의 견제구] 룰을 파괴한 예능, 책임을 외면한 레전드. 상도(商道) 잃은 그라운드, 존중 없는 쇼만 남았다.

두 개의 세계가 충돌했다.
한쪽은 1시즌 144경기의 긴 호흡으로 돌아가는 프로야구의 세계가 있다.
이곳에는 성문화된 규정만큼이나 ‘상도(商道)’와 ‘불문율’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중요하다.
시즌 중 상대 팀의 핵심 인력을 빼가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리그라는 생태계 전체의 안정성을 스스로 허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쪽에는 시청률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주 질주하는 방송국 예능의 세계가 있다.
이곳의 시간은 훨씬 빠르고, 생존 방식은 더 즉각적이다.
화제성과 노이즈는 곧 숫자로 증명되는 가치다.
이 세계의 논리에서 ‘룰을 깨는 파격’은 비난이 아닌 찬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최강야구’는 후자의 세계에 속해 있다.
그들에게 이종범은 ‘KT 위즈의 1군 코치’이기 이전에, ‘논란과 화제성을 담보하는 최고의 캐스팅 카드’였다.
그들은 프로야구의 불문율을 몰라서 어긴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잘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선을 넘었을 가능성이 높다.
프로야구단에 먼저 양해를 구하는 '절차'는 그들의 세계에선 불필요한 비용이자, 화제성을 반감시키는 비효율에 불과했을 수 있다.

이것은 ‘매너’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더 큰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라는 시스템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다른 시스템의 규칙을 간단히 무시해버린 사건이다.
그들은 한국 프로야구라는 탄탄한 기반 위에 자신들의 쇼를 세웠지만, 정작 그 기반을 지탱하는 기둥 하나를 아무렇지 않게 뽑아버렸다.


물론, 최강야구의 제안을 덥석 받은 이종범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우린 물어야 한다. 왜 이런 제안이 애초에 가능했는가?
그것은 JTBC란 미디어 권력이 프로야구 산업 전체를 예능 소재의 하나 쯤으로 업수이 여기고 있다는 방증은 아닐까?

이제 질문은 KBO 레전드 이종범 개인의 거취를 넘어선다.
한쪽 세계의 이익 논리가 다른 쪽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 때, 우리는 이것을 ‘파격적인 기획’이라 불러야 할까?
아니면 ‘오만한 약탈’이라 불러야 할까?
이번 사태는 그 답을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다.
글/구성: 민상현, 김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