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위에 군림하려는 야구 예능... '최강야구'의 약탈과 폭주

[민상현의 견제구] 룰을 파괴한 예능, 책임을 외면한 레전드. 상도(商道) 잃은 그라운드, 존중 없는 쇼만 남았다.

불꽃야구 쪽과의 갈등으로 2025시즌 시작이 늦어지고 있는 최강야구(출처: JTBC)

두 개의 세계가 충돌했다.

한쪽은 1시즌 144경기의 긴 호흡으로 돌아가는 프로야구의 세계가 있다.

이곳에는 성문화된 규정만큼이나 ‘상도(商道)’와 ‘불문율’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칙이 중요하다.

시즌 중 상대 팀의 핵심 인력을 빼가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리그라는 생태계 전체의 안정성을 스스로 허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올시즌 KT 코치로 합류했던 이종범 (출처: KT위즈)

다른 한쪽에는 시청률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주 질주하는 방송국 예능의 세계가 있다.

이곳의 시간은 훨씬 빠르고, 생존 방식은 더 즉각적이다.

화제성과 노이즈는 곧 숫자로 증명되는 가치다.

이 세계의 논리에서 ‘룰을 깨는 파격’은 비난이 아닌 찬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새 시즌 감독으로 프로 1군 코치인 이종범을 영입한 것으로 알려진 최강야구 (출처: KT 위즈)

‘최강야구’는 후자의 세계에 속해 있다.

그들에게 이종범은 ‘KT 위즈의 1군 코치’이기 이전에, ‘논란과 화제성을 담보하는 최고의 캐스팅 카드’였다.

그들은 프로야구의 불문율을 몰라서 어긴 것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잘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선을 넘었을 가능성이 높다.

프로야구단에 먼저 양해를 구하는 '절차'는 그들의 세계에선 불필요한 비용이자, 화제성을 반감시키는 비효율에 불과했을 수 있다.

올해 초 트라이아웃을 취소했던 최강야구 [출처: JTBC]

이것은 ‘매너’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더 큰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라는 시스템이,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다른 시스템의 규칙을 간단히 무시해버린 사건이다.

그들은 한국 프로야구라는 탄탄한 기반 위에 자신들의 쇼를 세웠지만, 정작 그 기반을 지탱하는 기둥 하나를 아무렇지 않게 뽑아버렸다.

프로 1군 감독의 꿈을 이루지 못한 이종범(출처 2025 KBO 야매카툰)
프로야구 감독직에서 더 멀어진 이종범(사진: 한화, LG ,KT)

물론, 최강야구의 제안을 덥석 받은 이종범의 책임도 있다.

하지만 우린 물어야 한다. 왜 이런 제안이 애초에 가능했는가?

그것은 JTBC란 미디어 권력이 프로야구 산업 전체를 예능 소재의 하나 쯤으로 업수이 여기고 있다는 방증은 아닐까?

사진= JTBC

이제 질문은 KBO 레전드 이종범 개인의 거취를 넘어선다.

한쪽 세계의 이익 논리가 다른 쪽 세계의 근간을 뒤흔들 때, 우리는 이것을 ‘파격적인 기획’이라 불러야 할까?

아니면 ‘오만한 약탈’이라 불러야 할까?

이번 사태는 그 답을 우리 모두에게 묻고 있다.

글/구성: 민상현, 김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