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과 김건희, 박근혜와 윤석열...8년 전 탄핵의 공기가 느껴진다
[해설] 2016년보다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의석수도 적은 윤 대통령, 쏟아지는 김 여사 리스크에 고립 양상...보수언론 비판에 귀 닫은 모습, 8년 전 박근혜와 유사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
2016년 10월7일.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29%였다. 8년 전 언론은 대통령의 30% 지지율 붕괴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지난 9월13일 한국갤럽 같은 조사에서 지지율 20%를 기록했다. 가장 최근 발표인 9월27일은 23%였다. 8년 전 박 대통령보다 낮은 지지율이다. 8년 전과 지금의 공통점은 그해 여당의 총선참패다. 그런데 지금이 더 대통령과 여당에 불리하다. 2016년 20대 총선 이후 새누리당 의석수는 122석이었지만 2024년 22대 총선 이후 국민의힘 의석수는 108석이다. 8년 전에 비해 대통령 지지율은 더 떨어지고, 여당 의석수는 더 적다. 그런데 임기는 절반 이상 남았다.
8년 전과 현 국면의 유사점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향한 분노다. 2016년엔 최순실 씨, 2024년에는 김건희 여사다. 여러 갈래에서 전방위적으로 의혹이 터져 나온다는 점도 유사하다. 8년 전 국민적 분노를 유발한 건 정유라씨와 이화여대가 먼저였다. 한겨레는 그해 9월27일 “정유라씨 담당 교수가 제적 경고를 하자 최순실 씨 모녀가 찾아와 그날로 교수가 교체됐다”고 보도했고, 10월12일엔 정유라씨가 이대에서 학점 특혜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훗날 이화여대 부정 입학 사건으로 끝난 당시 이슈에 많은 국민이 공분했다. 김 여사의 경우 명품백 수수 사건과 검찰과 권익위의 '면죄부'로 이어진 흐름이 공분을 일으켰다고 볼 수 있다.
미디어 환경은 2016년 박근혜 정부가 2024년 윤석열 정부보다 유리했다. 2016년은 지금처럼 유튜브를 통한 뉴스 이용이 활발하지 않았고, 이명박정부를 거친 공영방송 저널리즘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비공식 공영방송' JTBC가 이슈를 주도하긴 했으나 타 방송사들이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 JTBC가 연일 최순실-차은택 관련 단독 보도를 내놓을 때 KBS와 MBC는 '北 도발' 관련 리포트를 맨 앞에 배치하는 식이었다. 그나마 TV조선이 <차은택 사단 靑정부 행사 휩쓸어> 리포트 등을 통해 관련 의혹을 다뤘다. 2016년 10월4일~10일까지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을 주요 쟁점으로 다룬 방송 보도는 35건이었는데, 이 중 JTBC가 25건이었다.
2016년 10월 초만 해도 '최순실'은 한겨레, 경향신문, JTBC를 제외한 주요 언론에서 여야 정쟁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시민들을 중심으로 '#그런데최순실은?' 해시태그 운동이 시작되며 어젠다키핑이 이어졌다. 반면 지금은 MBC가 행정법원의 연이은 판단으로 여전히 정부 여당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고, JTBC가 김 여사 관련 단독 보도를 이어가며 두 레거시미디어가 여사 이슈를 끌고 가고 있다. 서울의소리와 뉴스토마토 등 비주류 매체에서 굵직한 단독 보도가 나오고, 뉴스타파에서 탐사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언론보도를 둘러싼 해석과 전망이 시사유튜브 채널에 쏟아지는 상황도 8년 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하락을 거듭하던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2016년 70위로 역대 최악이었다. 올해도 극적 추락을 보여주며 62위를 기록한 점은 유사한데, 주목할 점은 보수언론의 비판적 논조다.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은 2016년보다 높은 수위로 정부 여당을 비판하고 있다. 이제 TV조선 앵커의 대통령 비판이 익숙할 정도다. 8년 전 '탄핵'에 따른 '학습효과'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수를 요구해야 할 김 여사에게 사과면 충분하다는 식의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주입해 보수 대통령이 두 번째 탄핵으로 가는 최악의 상황을 막고, 스스로는 '내부자들'에서 '심판자들'로의 태세 전환을 통해 살길을 찾는 전략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8년 전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 게이트가 2014년 정윤회 문건 파동처럼 끝나길 원했던 것 같다. 그러다 10월24일 “대통령 단임제는 정책의 연속성이 떨어진다”며 돌연 '개헌' 카드를 꺼냈으나 태블릿PC 앞에서 무너졌다. 10월17일 조선일보는 “대통령의 일방통행 마이웨이는 바뀌지 않는다. 밖의 말은 듣지 않기로 결심한 듯하고 안에서는 아무도 고언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경고 수위를 높였으나 먹히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 무렵 아버지의 고향인 경북 구미를 방문해 전통시장을 둘러보고 '새마을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고 11월 4일 한국갤럽 정례조사에서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최저 지지율인 5%를 기록했다.
10월20일 조선일보는 “K스포츠재단 의혹은 이대 사태보다 훨씬 큰 문제다. K스포츠재단은 설립부터 운영까지 최씨 모녀를 위한 기구였다”면서 “이걸 규명하지 않고는 국력을 집중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라가 얼마나 더 표류할지 알 수 없다”고 했다. 10월22일엔 “상식을 벗어난 일이 거듭되면 공분을 일으킨다”고 경고했다. 현재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정부 여당을 향한 경고가 사설과 칼럼을 통해 이어지고 있으나 윤 대통령도 8년 전 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8년 전 국감이 '최순실 국감'이었듯, 올해 국감은 '김건희 국감'으로 진행될 것이고 무엇이 터져 나올지는 짐작하기도 어렵다.
2016년 10월19일 JTBC는 “최순실씨의 핵심 측근 고영태 씨의 증언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최순실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손보는 일까지 했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청와대는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청와대가 JTBC의 '미끼'를 문 순간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10월은 어떨까. 8년 전 <최씨, 대통령 연설 전에 연설문 받았다> 같은 JTBC 단독 보도 같은 결말이 나올지 모른다. 또는 청와대 행정관이 최순실 씨의 통화가 끝나자 휴대전화를 두 손으로 받던 의상실 영상의 새 버전을 목격할지 모른다. 무엇이 됐든 윤 대통령의 10월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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