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초마다 오는 기적의 버스

이 사진을 보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전설의 경기도 버스’라며 올라온 사진.부천 88번 버스를 둘러싼 소문들인데. 경기도 시내버스 중 승차량 1위이고, 88초마다 오는 것 같고, 도로 위의 무법자(?)라는 별명도 있고, 막차가 새벽 2시인데 첫차가 불과 2시간 후인 새벽 4시라는 내용.

이런 얘기만 들으면 ‘전설’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법 한데. 정말 그런지 왱이 88번 버스를 직접 타봤다. 유튜브 댓글로 “부천 88번 버스에 대해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첫째, 승차량 1위. 일단 부천 88번 버스가 경기도 시내버스 중 승차량이 제일 많다는 건 사실이다. 2010년부터 9년 간 경기도 버스 가운데 이용객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아예 전국 시내버스 중 이용객이 가장 많던 때도 있었다

88번 버스 승객, 왜 이리 많나?노선 자체가 엄청 긴 데다가, 중요한 상권과 거주지들을 다 훑고 다니기 때문.

88번 버스 노선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기점인 대장공영차고지 부터 부평역, 그리고 부평역에서 여의도환승센터까지다. 이 중 대장공영차고지와 부평역 사이는 계양구, 경인교대, 산곡동, 청천동 등 인천과 부천의 주거지역들을 굽이굽이 돌아다닌다.

부평역 부터 여의도환승센터까지는 경인로와 지하철 1호선을 따라 달리는 직선 노선이다. 이 부분이 88번 버스 노선의 핵심인데, 부천역, 송내, 소사역, 역곡역 등 부천의 요지들을 지나, 구로역, 신도림역, 영등포역, 여의도라는 상업 지구들을 모두 지나간다. 그렇다보니 서울 남부쪽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88번을 타는 것.

이렇게 이용객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88번 버스 숫자도 늘어났다. 88번 버스를 운영하는 부천버스에 물어봤는데, 무려 65대의 버스를 인가 받은 상태라고 한다. 평소에는 50대 가량의 버스가 도로에 나가고, 바쁠 땐 60대 가량이 버스가 운행한다고.

특히 지하철역까지 갈 필요 없이 집 바로 근처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경우가 많아더더욱 88번 버스를 선택하는 출퇴근족이 늘고 있다고. 1호선 열차가 여의도 안쪽까지 들어가지 않는 여파도 있다.

두번째, 배차간격 88초.

[부천 88번 버스 기사님]

우리가 출퇴근 시간에 4분 배차예요.그러면 이제 신호 하나 걸리면 보통 2대 이렇게 붙는 거는 여사지. 신호 하나 아다리 되고(?) 그러면 차 한두 대 붙는 거는 여사예요.

일단 공식적으로 부천 88번 버스의 평일 배차간격은 4분에서 9분, 주말은 5분에서 10분이다.

근데 버스 대수도 많고, 배차간격도 짧아 차간 거리가 가까운데, 한 버스가 신호에 걸려 멈추다보면 뒷차들이 따라잡아 88번 버스끼리 도로 위에서 붙어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실제로 왱이 새벽 4시반 무렵 여의도환승센터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88번 버스 두대가 한번에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차들이 줄줄이 들어오니 체감상 88초마다 오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

세번째, 도로 위의 무법자 설이다. 88번 버스가 심야 시간 페라리를 추월한다는 얘기도 있고, 손잡이를 꽉 안잡으면 날아간다는 말도 나온다.

사실 88번 버스의 절대적인 속도 자체는 그리 빠르지 않다.최고속도제한장치를 설치하고 있기 때문. 특히 경기도는 지난 1월부터 정류장 인근에서 30km/h를 지키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88번 버스 운행 속도가 빠르다고 느끼는 건 짧은 정류장간 거리와 배차간격 때문. 앞에서 말한 것처럼 뒷차가 따라붙어 배차간격이 틀어지면 앞차는 속도를 내서 간격을 벌려야 한다.

하지만 정류장간 거리가 짧아 또 금세 멈춰야한다.이렇게 가속과 급제동이 악순환하면서 차가 더 빠르게 느껴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2시 막차와 4시 첫차. 이건 어디서 버스를 타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가능한 이야기다. 종점에서 기점까지 88번 버스를 타보니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마지막 버스가 새벽 12시45분에 종점(여의도환승센터)에서 회차하니, 새벽 2시면 충분히 버스를 탈 수 있는 시간이다.첫차도 대장공영차고지에서 오전 3시50분, 중간출발지(송내)에서 새벽 3시40분에 출발하니 4시면 거뜬히 버스를 탈 수 있다.

취재하다가 알게 된 건데,이런 심야 시간에 다니는 버스에도 승객이 가득 찬다. 새벽 4시반에 여의도환승센터에 도착한 버스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내렸는데, 기사님께 이유를 물어봤다.

[부천 88번 버스 기사님]

우리가 8대는 송내에서 출발을 하고 또 8대는 청천동에서 출발을 해요. 그러면 송내 8대는 여의도 새벽에 청소하러 가는 아줌마들이 거의 8대 꽉 차서 올라가요.

오늘도 버스를 타고 열심히 출근하는 사람들, 밤늦게까지 분주하게 사람들을 실어나르는 88번 버스도 모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