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액암과 일반암의 경계선에서 오랜 기간 줄다리기해온 '전이암 기준 보험금 분쟁'에 대법원이 판단 기준을 제시하며 논란이 일단락 됐다. 그러나 이를 두고 동일한 암보험에 가입하고 같은 보험료를 납부했더라도 설명의무 해석에 따라 보상 범위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5일 황현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암보험약관 설명의무 관련 대법원 판례 검토' 보고서를 내고 설명의무와 관련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해당 판례는 대법원이 올해 3월 암보험 약관 중 '원발부위 기준 분류조항'이 설명의무 대상인 중요한 사항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던 내용이다. 이 조항은 전이암 발생 시 보험금을 전이암이 아닌 원발암 기준으로 지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번 판결의 발단이 된 사건은 다음과 같다. 보험계약자인 원고는 갑상선암(소액암)을 진단받고 치료 중, 림프절로 전이된 암(일반암)을 발견했다. 그러나 보험사는 약관에 따라 원발암인 갑상선암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했다. 결과적으로 일반암 기준 보험금의 20% 수준밖에 받지 못했다. 이에 원고는 보험가입 시 원발부위 기준 조항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일반암 기준의 보험금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사건을 맡은 1심과 2심 법원은 "해당 조항은 설명의무 대상이 아니다"며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지만, 대법원은 이를 뒤집고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원발부위 기준 분류조항은 보험금 지급액 및 보장 범위에 직결되는 핵심 조항으로 봤다. 따라서 계약자가 이를 알았더라면 계약 체결 여부 및 보험료 납입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설명의무 대상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또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갑상선암에서 전이된 암이 일반암으로 보상되지 않고 소액암으로만 보장된다는 사실은 쉽게 예측하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대법원은 보험약관이 널리 사용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설명의무를 면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황 위원은 "이번 판결은 암보험금 산정과 관련해 엇갈려온 하급심 판단을 정리하고, 설명의무에 대한 소비자보호의 기준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며 "실제로 이 판결 이후, 유사한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황 위원은 이번 판결이 새로운 형평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보험모집인의 설명을 성실히 들은 가입자는 약관에 따라 소액암 기준의 보험금을 받게 되고, 설명을 듣지 못한 가입자는 일반암 기준의 더 많은 보험금을 받게 되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보험계약의 기본 원리인 '동일한 보험료, 동일한 보장'이라는 형평성과 정합성에 어긋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황 위원은 "약관규제법상 편입통제를 보험약관에 그대로 적용한 결과 발생한 것인바, 향후 이에 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이 2011년 '전이암 지급기준 합리화 방안'을 통해 원발암 기준의 보험금 지급기준을 통일한 것도 회사 간 보상 기준 격차 해소를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동일한 기준에도 불구하고, 설명 여부에 따라 보험금 지급이 달라지는 새로운 불균형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에 따라 황 위원은 "금융소비자보호법상 계약해지, 손해배상, 설명의무 이행 명령 등의 수단을 중심으로 분쟁 해결 체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이번 판결은 현재 부산지방법원에서 파기환송심으로 진행 중이다. 보험업계는 해당 판결의 파급력에 주목하며, 향후 계약서류 및 모집인 교육체계의 전면 개편 가능성까지 검토하고 있다.
박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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