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활 오타니가 해바라기씨를 먹는 법

조회수 2024. 5. 3. 06:49
음성재생 설정

이동통신망에서 음성 재생시
별도의 데이터 요금이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덕아웃에서 후배 야마모토의 시범경기 데뷔전을 지켜보는 오타니. 왼손에 2개의 컵을 들고 있다. SportsNet LA 중계 화면

왼손에 있는 컵 2개의 쓰임새

지난 2월이다. 애리조나 시범 경기 때였다. 야마모토 요시노부(25)가 공식전에 처음 등판한 날이다.

다저스 덕아웃에 눈길이 간다. 관심 깊게 지켜보는 사람 때문이다. 오타니 쇼헤이(29)다. 맨 앞 열에서 마운드를 응시한다. 그는 이날 게임조가 아니었다. 숙소에 돌아가서 쉬어도 되는 날이다. 하지만 남았다. 후배의 데뷔전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그러던 중이다. TV 중계 카메라가 그를 줌인한다. 바로 위에 있는 장면이다. SportsNet LA의 화면을 캡처한 사진이다.

그러자 특이한 게 눈에 띈다. 왼손에 들고 있는 컵이다. 처음엔 뭔가를 마시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마시는 게 아니고 먹는 모습이다. 해바라기씨다. 그거야 뭐. 메이저리그에서는 흔하디흔한 일이다. 상당수 선수가 즐기는 기호 식품이다.

하지만 특이하다. 컵에 담아서 먹는다. 손대지 않고 해결한다. 물론 정갈한 스타일인 건 잘 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다. 컵이 2개다.

무슨 뜻이냐. 뒤쪽 컵에는 씨가 담겼다. 그걸 물 마시듯 기울여 몇 개씩 입에 넣는다. 우물우물. 혀와 치아의 정교한 컨트롤을 통해 알맹이를 발라낸다. 문제는 남는 껍데기다. 그걸 앞쪽 컵에 조심스럽게 뱉는다. 혹시라도 떨어질까 정성을 기울인다. 그야말로 깔끔 그 자체다.

서울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고척돔 덕아웃도 더럽히지 않는다. 해바라기씨 껍데기를 종이컵에 얌전히 뱉는 모습이다. SportsNet LA 중계 화면

해바라기씨의 본래 감성

이렇게 방식은 처음이다. 본래 해바라기씨는 그런 감성이 아니다. 입 안 가득 와르르 쏟아 넣고, 대충 알맹이를 발라낸다. 그리고는 껍데기를 시원하고, 시크하게 툭툭 뱉어낸다. 어디든 상관없다. 그라운드에서도, 덕아웃에서도. 그게 상남자의 멋진 스타일이다.

그러나 그는 다르다. 스스로에게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바른생활 사나이 아닌가. 쓰레기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성격이다. 올스타전 등판이라는 일생일대의 순간에도 그걸 잊지 않았다. 그런 그가 함부로 씨를 뱉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도 신성한 덕아웃에 말이다.

어쩌면 먹는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일탈이다. 염분 함유량이 상당한 수준이다. 철저한 식단 관리로 유명하다. 매 끼니마다 균형과 칼로리를 꼼꼼히 따진다. 그 좋아하던 달걀 요리까지 끊을 정도다. 외식도 엄격히 제한한다. 그런 평소와는 거리가 있는 루틴이다.

다만, 해바라기씨는 예외다. 그걸 꽤 즐기는 모습이다. 미국에 진출한 뒤로 맛을 들였다는 얘기다. 물론 필수 아미노산과 단백질, 이르기닌 등이 풍부하다. 면역력을 높여주고, 심장 박동수를 낮춰주는 효과도 있는 식품이다.

무엇보다 야생의 느낌이 생생하다. 거친 빅리그의 감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덕아웃 바닥은 물론이고, 주변이 온통 어지럽다. 뱉어낸 껍데기투성이다. 마치 전투의 잔해 같다. 치열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걸 그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모습이다. 정갈하고, 깔끔하고, 스마트하다.

올 시즌 다저스의 홈런 세리머니로 등장한 해바라기씨 뿌리기. 사진 제공 = OSEN

다저스의 홈런 세리머니

하지만 전혀 다른 표현도 등장한다. 올해 다저스의 특별한 세리머니가 그렇다. 홈런을 친 타자가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해바라기씨가 반긴다. (물론 아직 씹지 않은 것이다.) 주인공의 얼굴을 향해 한 줌 가득 뿌린다. 덕분에 그 순간이 멋진 한 컷으로 남기도 한다.

기획 및 연출자는 외야수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다. 오타니의 다저스 첫 홈런 때도 그 특별한 환영식이 팬들의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혹시 당사자가 내키지 않으면 어쩌지?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뱉는 것도 싫어서 컵을 이용하는 사람 아닌가. 그걸 잔뜩 뿌려대는 걸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데 아니다. 에르난데스의 며칠 전 인터뷰다. 여기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그의 대답이 이랬다. “해바라기씨 퍼포먼스? 당연히 미리 물어본다. 상대가 싫다고 하면 절대 하지 않는다. 모두가 즐겁고, 좋은 기억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오타니도 “괜찮다”고 했다는 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질색한다. 그러나 혼자 튀려는 생각은 없다. 팀이 우선이다. 모두의 분위기를 위해서다. 굳이 까탈스럽게 굴지는 않는다.

작년 3월 WBC 때 일본 대표팀 덕아웃의 풍경. 바닥에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FOX TV 중계화면

부도덕함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고

며칠 전이다. 보도 자료 하나가 떴다. 광고 모델 계약 건이다. 일본의 차(茶)와 음료 기업인 이토엔이 그를 글로벌 파트너로 임명했다는 내용이다. ‘친애하는 오타니 쇼헤이 님께…’로 시작하는 한국어 응원 편지가 등장한다.

아시다시피 그는 광고업계의 슈퍼스타다. 일본의 가장 비싸다는 모델에 비해서도 7~8배에 이르는 압도적인 광고료를 받는다. 그런 게 17~18개 정도 된다. 포브스가 추정한 올해 수입만 6500만 달러(약 890억 원)다. 야구로 버는 돈(올 연봉 200만 달러)의 30배가 넘는다.

그런 상승세가 잠시 주춤했다. 전 통역의 불법 도박 스캔들 때문이다. 그러나 오타니 자신도 결국 피해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면서 한층 더 두터운 신뢰감이 생겼다. 주춤했던 광고 계약이 다시 진행된다는 사실이 그걸 입증한다. ‘도덕성 리스크’에서 벗어났다는 신호다.

다저스도 마찬가지다. 일본 기업과 손잡았다는 소식이 줄줄이 발표된다. 매체 디애슬레틱은 ‘4월부터 매주 1건씩은 나오는 것 같다’고 전했다. 민간 항공사 전일본공수(ANA), 제약 회사 코와(KOWA), 생활용품점 다이소(DAISO), 화장품 업체 코세(KOSE)를 비롯해 6곳과 스폰서십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 중 몇 개는 오타니가 뛰던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이적한(?) 것이다. 역시 리스크가 해결됐다는 뜻이다.

사실 대단치 않은 일이다. 오타니의 해바라기씨 말이다. 껍데기를 바닥에 뱉으면 좀 어떤가. 남들은 다 그런다. 아무렇지 않다. 구태여 컵 하나를 더 쓰는 게 유난스럽다. 그렇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한번 느껴진다. 사려 깊음이다. 마치 볼넷으로 나갈 때 모습과 비슷하다. 방망이와 보호장구를 가지런히 정리해 배트 보이에게 건네는 마음 씀씀이다. 그러면서도 동료의 해바라기씨 퍼포먼스에는 흔쾌하다.

그런 것 같다. 팬덤은 플레이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야구만 잘한다고 응원하는 게 아니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사소한 것들이 하나하나가 쌓이는 과정이다.

(메이저리그가 해바라기씨의 감성을 금지했던 시기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다. 공에 침을 묻히는 것도 못 하게 하고, 마운드의 로진백도 피아를 구분해서 쓰던 시기다. 당연히 해바라기씨를 뱉는 행위에도 철저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