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20만원 대학기숙사 5만가구 공급 소식에…원룸사업자, 피켓들고 시위하는 이유 

[땅집고] 한 대학교 인근 원룸촌 주민들이 ‘기숙사 건립 반대 투쟁 위원회’를 결성하고 대학 측의 신규 기숙사 사업에 반대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땅집고] “와, 월세 20만원짜리 정부 원룸 쏟아진다니… 대학가 원룸촌 집주인들은 또 게거품 물고 반대하겠네요.”

이달 11일 더불어민주당이 월세가 20만원대로 매우 저렴한 대학생용 기숙사를 총 5만 가구 공급하는 내용의 청년 정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 청년정책 총괄 기구인 '랩(LAB) 2030'이 청년 표심을 겨냥해 내놓은 1호 정책이다.

이날 홍익표 원내대표는 간담회를 열고 "청년 복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 안전성"이라며 "기숙사를 대규모로 공급해 청년들이 좀 더 낮은 가격으로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정책 마련 의도를 밝혔다. 이어 이개호 정책위의장은 "교통 접근성이 양호한 초·중등학교의 폐교 부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시설 및 부지를 활용한 연합형 기숙사를 공급할 것"이라고 했다.

[땅집고] 이화여대가 2017년 신축한 기숙사 ‘이 하우스’(E-House). /DMP건축사사무소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네티즌들이 보이는 반응이 눈에 띈다. 대학생들은 좋겠지만, 전국 곳곳 대학가 원룸촌 건물주들의 원성이 터져나올 것이라고 예측이 나온다. 실제로 그동안 몇몇 대학들이 기숙사를 증축·신축할 때마다 인근 원룸촌에서 월세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원룸 수요가 줄어 생계에 타격을 입을까봐 극렬히 반대했던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지역이 연세대·이화여대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일대다. 이화여대는 2014년 지하 4층~지상 5층, 6개동, 총 368실로 학생 2344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 기숙사 ‘이 하우스’(E-House)를 짓기 시작했다. 당시 기숙사 수용률이 8.4%로 서울지역 대학 평균(18.3%)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 문제라고 보고 과감하게 신축을 결정한 것. 같은 시기 연세대 역시 신축 기숙사 '우정원'을 다 짓고 학생들을 추가 수용하기 시작했다. 지하 2층~지상 5층, 169실로 구성해 총 4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물이었다.

[땅집고] 2014년 이화여대와 연세대의 기숙사 신축에 반대하는 신촌 지역 주민들. /이대학보

그런데 두 대학이 새 기숙사를 건립한다는 얘기를 들은 서대문구 연희동·봉원동·대신동·창천동·신촌동 등 신촌 일대 원룸촌 집주인들은 '연대·이대 기숙사 건립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기숙사 신축 사업에 강하게 반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학 캠퍼스를 찾아 반대 시위를 열고 "대학이 영리를 위한 기숙사가 웬 말이냐", ”이화여대와 연세대가 세워지면서 뿌리를 박고 살아온 주민들을 벌거숭이로 만들 것인가. 대학은 교육사업에 몰두할 것이지 부동산 투기와 임대업에 몰두하면 되겠느냐", “주민들은 빚을 내어 집을 짓고 방을 넓혀 지금까지 학생들과 살아왔다.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주민들의 아픔을 아느냐"는 등 발언을 내놓았다.

[땅집고] 서울 성동구 왕십리 일대 원룸촌 집주인들이 한양대의 기숙사 신축에 반대하며 내건 현수막.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 성동구 왕십리 일대에 있는 한양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17년 한양대가 마련한 지하 2층~지상 7층에 총 1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기숙사 신축계획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하자, 인근 원룸촌에서 임대 사업을 영위하던 주민들이 한양대 측에 생존권을 보장해달라고 들고 일어난 것.

당시 한양대가 추정한 신축 기숙사비는 2인실 기준 18만~26만원으로 예상됐다. 한양대 인근 원룸 월세 시세(50만원 안팎)와 비교하면 반값에 불과했다. 저렴한 기숙사에 학생 수요를 뺏길까 우려한 왕십리 일대 원룸 임대업자들은 ‘기숙사 건립 반대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격렬한 반대 운동을 벌였다.

[땅집고] 2014년 한 대학교 학생들이 모여 공공기숙사 건축인허가 촉구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학생들은 이 같은 원룸 주인들 반대가 너무 이기적이라고 토로했다.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은 학교 기숙사에 입사할 기회를 얻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한 학기 동안 머무를 보금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당시 신촌지역 원룸·하숙·오피스텔 임대료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70만원 수준으로 비쌌기 때문이다.

현재 임대료는 물가상승률 등을 반영해 더 오른 상황이다. 올해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보증금 1000만 원 기준 전용 33㎡ 이하 서울 주요 대학가 인근 지역의 원룸 평균 월세를 분석한 결과, 이화여대 인근 원룸 평균 월세는 83만5000원으로 전국 대학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연세대가 69만 5000원, 중앙대와 한양대가 각각 65만 5000원, 고려대와 서강대가 각각 62만 원으로 뒤를 이었다. 매달 대학생들이 직접 벌어 내기도,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에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기숙사 신축 문제를 둘러싼 대학과 원룸촌 간 전쟁의 역사를 접한 네티즌들은 “대학가 원룸은 집 상태가 좋지도 않으면서 월세는 더럽게 비싸지 않느냐, 집주인들이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진다”, “대학교가 학생들 복지를 위해 기숙사를 짓겠다는데 반대하는 원룸 집주인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라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글=이지은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