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 동상 13개 있는데 또?···공허한 추앙, 아직도 부족한가[창간기획]
설치 때 마다 무수한 사회적 논쟁 촉발
공로만 기념하는 건립방식에 반감 커
극단 갈등 땐 일방적 강행·훼손 발생도
이승만 3개·박정희 6개 추가건립 예정
“좋은데” “불필요” TK서도 여론 팽팽
전직 대통령 동상 전수조사 해보니 (상)
“대구를 박정희의 도시로 만들려는 것 같아서 걱정돼요. 타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경북대 식품공학부에 재학 중인 한채영씨(21)는 최근 대구시가 14억5000만원을 들여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2개를 지으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26일 대구캠퍼스에서 만난 경북대 학생들은 모교(대구사범학교, 이후 경북대 사범대학)에서조차 박물관 수장고에 들어간 박 전 대통령의 동상이 대구 시내에 버젓이 세워진다는 사실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컴퓨터학부에 재학 중인 한씨의 친구는 “동대구역이라는 공적인 공간을 정치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같아서 부정적이다. 경제발전의 공로는 인정하지만 신격화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전국에서 때아닌 동상 열풍이 불고 있다. 박 전 대통령만 6개, 이승만 전 대통령은 3개의 동상이 건립을 준비 중이다. 박 전 대통령 동상은 대구·경북(TK)에서, 이 전 대통령 동상은 서울에서 각각 건립 추진 움직임이 활발하다. 두 전직 대통령의 공을 기리기에 기념물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정말 그럴까.
경향신문이 7일 직접 확인하거나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전국에 있는 대통령 동상을 전수조사한 결과 현재 공공장소(수장고, 창고 등 제외)에 있는 전직 대통령 동상은 총 57개에 달한다. 이승만 13개, 박정희 13개, 김대중 9개, 노무현 6개, 김영삼 4개, 노태우 3개, 윤보선 2개, 최규하 2개, 전두환 2개, 이명박 2개, 박근혜 1개 순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동상은 서울(4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은 경북(6개)에 가장 많았다. 건립했다가 철거한 동상은 11개다.
대통령 동상은 건립될 때마다 무수한 사회적 논쟁을 촉발했다. 과거의 일이 아니다. 현존하는 대통령 동상의 84%(47개)가 2009년 이후 지어졌다.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는 일방적인 강행과 훼손 시도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승만 동상, 건립도 철거도 가장 많다···김영삼 “그 돈이면 비 맞는 동포들 집 지어준다”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은 임기 중 동상이 세워졌다. 동상이 가장 많이 철거(5개)된 대통령이기도 하다. 남산과 탑골공원에 지어진 동상이 대표적이다. 이 전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1956년 건립된 남산 동상의 높이는 그의 나이와 같은 81척(25m)이었다. 당시 동양 최대, 세계 최대라고 자랑했다. 총 공사비만 2억600만환으로 극장 입장표에 기금조성비를 포함시켜 마련했다. 같은 해 3월에 건립된 파고다공원(탑골공원) 이승만 동상은 기단까지 합쳐 모두 6m에 달하는 크기였다. 이 역시 대한소년화랑단에서 이 전 대통령 80회 탄신기념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이 전 대통령 동상은 건립 당시에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1956년 8월1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김영삼 당시 민주당 의원은 “남산에 이 대통령의 동상을 2억여환을 들여서 세웠다. 살아 있는 사람의 동상을 꼭 세워야 하나”라며 “이 돈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다. 지금 판잣집에서 비가 오면 그냥 비를 쪼루루 맞고 자는 우리 동포들에게 집을 아마 수천개, 수만개 지어 줄 수 있는 돈”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두 동상은 1960년 4·19혁명 직후 모두 철거됐다. 탑골공원 동상이 먼저 4월26일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끌어내려져 종로 거리를 끌려다녔고, 남산 동상도 8월 철거됐다.
이 전 대통령 동상은 이후로도 두 차례 건립됐지만 곧 철거되거나 사라졌다. 현존하는 이 전 대통령 동상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전두환 정권 때인 1984년 서울 강동구 배재고등학교에 세워졌다. 이 동상 건립도 과오까지 아우르는 역사적 평가에 기반한 것이 아니었다. 배재고 동상의 비문에는 독재 목적의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는 언급 없이 “한평생을 항일과 반공, 자유민주주의에 바친 겨레의 큰 스승에 대한 추모”의 뜻만이 적혔다.
공로만 기념하는 동상 건립 방식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사회적 반발도 뒤따랐다. 1987년 대전 서구 배재대에 세워진 동상이 그 해 일어난 6월 민주항쟁 과정에서 학생들에 의해 철거됐다. 1997년에도 건립과 철거가 한 차례 더 반복됐고 2008년 다시 세운 동상도 10년 넘게 시민단체와 학생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외에 국회, 부산 서구 임시수도기념관, 서울 중구 자유총연맹, 인천 인하대·경인여대 등에 세워진 동상들도 여론의 지탄에 건립이 미뤄지거나 끝내 철거되는 경우가 생겼다.
박정희 동상, 박근혜 대선주자로 떠오르며 우후죽순 건립···훼손 시도도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역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1966년 박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쿠데타를 모의했던 자리에 육군 6관구 사령부가 세운 박 전 대통령 흉상은 2016년 빨간색이 칠해지는 등 훼손됐다가 복구됐다. 1971년 모교인 경북대에 만들어진 흉상도 1980년, 2021년 철거 운동이 벌어져 경북대박물관 수장고로 들어갔다. 1991년 구미국민학교(현 구미초등학교)에도 동상이 세워졌는데 경남 진양군(현 진주시)에 거주하는 윤재식씨는 같은해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아무리 일국의 대통령이었을지라도 그의 공과를 숙고해 국민적 공감을 얻었을 때 동상을 세우든지 해야 할 텐데 이를 고려치 않고 동상을 세웠다”며 “박 대통령 동상이 국민학교에 세워져 역사를 잘못 교육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의 특징 중 하나는 2009년 이후 건립이 급격하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13개 중 11개가 2009년 이후 지어졌다. 정치적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지난 시점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대표 등을 역임하며 보수의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던 때다. 2010년 6월 지방선거, 2012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과 지자체장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눈에 들기 위해 경쟁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경북 포항시·청도군·구미시 등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이 지어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강원 철원군 군탄공원, 경북 성주군 등에 동상이 생겼다.
동상 건립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독재자의 딸이라는 거부감을 줄이고 보수를 결집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지자체와 새마을운동중앙회 등 관변단체, 친박계 인사들은 반대 여론에도 동상 건립을 강행했다. 철원 박정희 동상 건립에 반대했던 김용빈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 부의장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찬반 동의는 있지도 않았다. 그땐 지자체가 한다고 하면 다 하는 시절”이라며 “친일 논란이 있어서 신성화할 수 없다던 사람의 동상이 전국 각지에 지어져 추앙받는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통령 동상, 대구도 찬반 팽팽···젊은 세대 “정치색 거부감” 비판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달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건립이 예정된 대구 동대구역 광장에서 만난 대구시민 A씨(65)는 “정치인들이 개인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시민들한테 의견을 물어야 한다”며 “독단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광장에는 이미 ‘박정희광장’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우뚝 서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얼굴도 큼지막하게 새겨졌다. 앞서 홍준표 시장은 지난 8월15일 “대구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을 기리는 흔적은 전혀 없어서 이번에 시의회 조례도 만들고 그 조례에 따라 연말에는 그곳에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도 세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상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남편과 함께 광장에서 볕을 쬐고 있던 김점순씨(81)는 “여기 세우면 좋은데 왜 그러나”라며 “우리나라를 이만큼 잘 살게 해줬는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잊기 쉬우니 좀 기억할 수 있게 하면 좋지 않나”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박 전 대통령이 구미사람이니까 대구하고 구미에만 세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에 거주하는 석애경씨(54)는 “당연히 세워야 한다”며 “물론 독재해서 고생한 사람도 없잖아 있겠지만 큰일을 하려 하면 어쩔 수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하다 보면은 과도 있지만 과만 따지면 안 되지 않나”라며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젊은 세대에서는 비판적인 여론이 높았다. 그들은 “세금 낭비”, “불필요하다”, “정치색이 너무 들어가서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광장으로 나와 택시를 기다리던 엄기훈씨(55)는 동상이 지어진다는 소식에 “갑자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도 동상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그는 “(홍준표) 대구시장이나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점점 더 선동을 하는 것 같다”며 “자꾸 TK가 우경화되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공을 기릴 기념물이 부족하다는 데도 의구심을 표했다. “기존에도 충분히 그분은 업적을 기릴 만한 데가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굳이 지금 2024년에, 다들 경제도 어려운데 꼭 지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https://www.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2410071332001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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