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와 '샹치'가 만나, 난리 난 최근 美영화 소식
아바타 · 샹치 잊게 하는 '시뮬런트' 배우들의 'AI 공존' 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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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대작 영화로 익숙한 배우들의 낯설면서도 새로운 얼굴을 마주하는 일, 영화가 관객에 선사하는 짜릿한 맛이다.
지난 2일 개봉해 관객의 꾸준한 선택을 받고 있는 영화 '시뮬런트'의 주인공 샘 워싱턴과 시무 리우가 그간 보인적 없는 얼굴로 스크린을 채운다. 인지 능력을 갖게 된 인공지능(AI)를 둘러싸고 대척점에 있는 캐릭터로 맞붙지만, 어쩌면 같은 곳을 바라보는 듯한 분위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관객의 애틋한 감상을 일깨운다.
● 샘 워싱턴 · 시무 리우, 배우의 진가 발휘하는 새로운 면모
'시뮬런트'는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외형을 지닌 AI가 우리 삶에 깊숙하게 들어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배경이다. 그렇다고 상상력을 한껏 발휘한 먼 미래를 다룬 SF영화의 흐름을 따르는 작품은 아니다.
영화 속 세상은 실제 AI와의 공존이 시작된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곧 닥칠 현실'에 기반한 세계다. 손에 잡힐 듯 가까운 현실을 다룬 덕분에 SF장르를 내세우면서도 정서적으로는 이질감 없는 작품으로 관객에 가 닿는다.
'시뮬런트'는 시스템에서 일탈한 AI를 뒤쫓는 특수요원 케슬러(샘 워싱턴)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케슬러가 추적하는 존재는 AI 에스메(알리시아 산스). 인지 능력을 넘어 사랑의 감정을 느끼도록 설계가 바뀐 에스메를 가까스로 붙잡은 케슬러는 그를 통해 'AI의 해방자' 케이시(시무 리우)의 존재를 알게 된다.
샘 워싱턴이 연기한 케슬러는 AI에 품은 감정을 숨긴 인물. 통제권에서 벗어난 AI를 추적하는 임무에만 충실한 듯 보인다. 반면 시무 리우가 소화한 케이시는 사실 고도의 AI를 개발해온 천재 과학자이지만 AI가 인간의 '노예'가 돼 가는 현실을 자각하고 해킹을 주도한다. AI 설계를 바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면서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도록 변화시키는 인물이다.
영화가 다룬 'AI와 인간의 공존'은 현재 전 세계에서 주효한 화두로 떠오른 이슈다. 이를 드라마로 녹여낸 '시뮬런스'의 주역 샘 워싱턴과 시무 리우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통해 '실현 가능한 공존'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그 해답을 '사랑'에서 찾는 과정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극 중 두 배우는 AI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대립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AI와의 공존이라는 과제를 고민하는 처지는 같다. 이는 현재 우리 앞에 닥친 현실 문제와도 맞닿는다. '시뮬런트'를 그저 AI를 다룬 SF영화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유이다.
영화가 AI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공존하는 세상을 향한 고민과 기대로 확장하는 데는 주인공 샘 워싱턴과 시무 리우의 활약에서 비롯된다.
이들이 누구인가. 전 세계를 사로잡은 '아바타' 시리즈의 주역, 마블 스튜디오 최초로 아시안 히어로를 내세운 단독 시리즈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주인공이다. 전 세계 영화의 흥행 판도를 좌우하는 인기 시리즈의 얼굴인 이들은 판타지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몰입도 높은 곧 다가올 현실의 이야기를 함께 완성했다.
세계 영화 흥행사를 바꾼 '아바타' 시리즈를 통해 본래의 얼굴은 감춘 채 컴퓨터그래픽으로 구현한 나비족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끄는 샘 워싱턴은 '시뮬런트'에서 관객이 본 적 없는 새로운 얼굴로 나선다. AI를 추적하는 특수요원이지만, 어딘지 처연한 표정도 지니고 있다. 아들의 음성을 반복해 듣는 그의 모습이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도 잠시. 과거 AI의 오작동으로 인해 아들을 잃은 상처가 드러나면서 캐릭터가 한층 입체적으로 확장된다.
시무 리우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올해 북미 시장을 강타한 최대 화제작 '바비'에서 보인 우화적인 모습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진중하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을 거뜬히 소화한다. 지금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는 아시안 배우로 인정받는 이유를 이번 영화에서 증명한다.
'샹치 텐 링즈의 전설'에서 성장하는 히어로의 모습을 보였고, '바비'에서는 희화한 남성 캐릭터를 소화한 그가 '시뮬런스'를 통해서는 연기 저변을 넓히는 점도 눈에띈다. '해방자' 이자 '구원자'라는 설정이 시무 리우의 담백한 비주얼과도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두 배우의 활약 덕분에 영화를 향한 관객들의 궁금증도 높아만 간다.
실제로 영화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뮬런트'에 대한 다양한 리뷰가 이어지는 가운데 샘 워싱턴의 눈동자가 한쪽만 파란색인 이유, 아들의 음성을 듣는 이유 등 작품을 향한 궁금증과 그에 대한 해석이 줄을 잇고 잇다.
● 인간과 AI의 사랑... '공존'을 향한 열쇠
'시뮬런트'는 상징성 짙은 AI를 내세운 SF장르를 추구하면서도 인간과 AI의 공존을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풀어가는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그 사랑은 인간을 향하기도 하고, AI를 바라보기도 한다.
한동안 SF영화들에 등장한 AI는 인간과 반목하고 대립하는 구도로 활용돼왔지만, 이번 '시뮬런트'는 노선이 다르다. 현실과 보다 밀접한 '인간과 AI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도 의미를 더하고 있다.
영화에는 또 다른 주인공인 AI 에반(로비 아멜)이 등장한다. 사고로 죽은 자신을 아내가 AI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하지만, 케이시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사고하게 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내와의 사랑을 이어가려 한다. 그의 선택이 설령 관객의 공감을 얻기 어려울 수 있지만 '영원한 사랑'을 향한 욕망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의미심장한 선택으로 비친다.
영화 말미, AI 에즈메가 모든 기억을 잃고 케이시와 새롭게 만나는 장면 역시 '시뮬런트'의 지향을 드러낸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감정'은 결국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에즈메와 케이시의 짧은 재회로 상징한다.
'시뮬런트'는 곱씹을수록 메시지가 깊어지는 영화다. 긴박한 추격전 등을 예상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인류애에 기반한 사랑으로 공존하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11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색다른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