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올케

황당한 일이 벌어진 건 지난해 늦은 가을이었다. 통장 정리를 하면서 이유 없는 돈이 들어와 있는 걸 발견했다. 오십만 원이었다. 보낸 이의 이름을 본 순간 놀라움이 컸다. 경제적으로 결코 넉넉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무슨 이유인가. 아마도 다른 곳으로 갈 것이 내게 온 것 같다. 바로 전화해 잘못 입금된 것 같다고 했다.
"아니예요. 형님께 용돈 보내드린 거예요"
큰 올케의 대답에 어이가 없었다. 저도 힘들게 사는데 시누이에게 용돈을 보내다니, 헛웃음과 함께 가슴이 뭉클했다.
나에게는 세 명의 올케가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형성된 가족이다. 남동생들의 아내이니 모두 손 아래지만 시누이와 올케의 관계는 서로 간의 예의가 필수여서 매사 조심스럽기도 하다.
자식 사랑이 유별난 어머니는 당신 자식 외에는 모두 탐탁잖아하신다. 며느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성장해서 결혼하기 전까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무기 삼아 무서울 게 없이 당당할 수 있었다. 다른 환경에서 자란 올케들이 새로운 식구로 들어오면서 어머니의 권위적이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성품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발생하는 불편한 감정을 어머니는 숨기지 않으셨다. 그럴수록 고부간 갈등은 골이 깊어지고 며느리들은 될 수 있으면 어머니와 함께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 했다. 딸의 입장에선 참으로 편치 않은 일이었으나 나도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보다 올케들 편을 들 수밖에 없다.
나는 올케들을 같은 여자로서 대한다. 남동생들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세상에 아내 속 썩이지 않는 남자가 몇이나 될까. 그러면서 잘났다고 큰소리치는 게 남의 편들이 아닌가. 게다가 며느리를 배려하지 않는 시어머니로 인해 마음고생하는 올케의 편에서 새로운 환경 적응을 돕는 안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에게 상처를 제일 많이 받았던 큰 올케가 구십을 훌쩍 넘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이젠 노쇠해진 몸으로 혼자서는 거동도 불편해 기저귀를 차야 하는 시어머니가 주간 보호소를 다녀오시면 목욕시키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핀다. 치매기가 있으신 어머니의 성품은 그대로여서 아직도 수발드는 며느리를 몹시 힘들게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딸인 나부터 차라리 요양원으로 모시자고 하는데 막아서는 사람은 올케다. 피붙이인 자식이 하지 못하는 일을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감당한다. 나는 진정한 가족으로 이어지기 위해 시어머니를 존중하고 따듯하게 대하는 올케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인데 시누이인 내게 용돈이라니.
어려운 처지를 잘 알고 있기에 돌려줄 기회를 보다 구정 명절 무렵 올케 통장으로 오십만 원을 입금했다. 명절에 아이들 오면 세뱃돈 주라는 핑계도 덧붙였다. 헌데 얼마 전, 다시 백만 원을 보냈다. 이번에는 꼭 드리고 싶다며 간곡하게 말한다. 친정어머니를 올케에게 맡기고 시누이올케 사이의 마찰은커녕 죄인이 되어 있는 시누이가 시누이 노릇 못하고 사는 게 안돼 보였을까. 가족이기에 더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무참히 깨버린 어머니로 인해 오히려 올케와의 관계가 더 돈독해졌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변함없이 안부 전화를 하는 올케다.
"형님, 아직도 기운 없으세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같이 밥 먹어요."
오랜 세월 서로에게 스며든 정 때문이란 걸 알기에 그 돈을 쓰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올케를 위해 쓸 생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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