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비틀어져" 사람까지 위협…싹 다 베면 되는데 방치?
<앵커>
재선충병에 걸려 말라비틀어진 소나무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치료제도 없어 소나무를 베어내는 게 최선이지만, 그냥 방치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문제는 죽어가는 소나무들이 사람의 안전까지 위협한다는 겁니다.
박찬범 기자가 현장 취재했습니다.
<기자>
고령층 20여 명이 모여 사는 경남 밀양의 한 마을.
소나무 숲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데, 4년 전만 해도 산 중턱에 간간이 보였던 붉은빛 소나무가 지금은 산 전체는 물론 민가 주변까지 뒤덮었습니다.
재선충병에 걸려 말라비틀어진 겁니다.
[송준설/밀양 이장 : 제가 볼 적에는 이런 거는 (경사도가) 한 30~35도? 소나무가 아주 지금 넘어갈 정도로 되어 있으니까 걱정이 많습니다.]
이 상태로 2~3년만 더 지나면 고사목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해 산 전체가 민둥산처럼 변하게 됩니다.
경주의 한 마을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성옥순/마을 주민 : 마을 (산 지) 한 50, 60년 다 됐네. (예전에는 소나무가) 새파랬습니다. 새파랬는데 갑자기 재선충이 이만큼 옵니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류는 잎이 아래로 처지고, 색깔도 붉게 변합니다.
시간이 더 흐르면 껍질도 벗겨지면서 하얗게 말라죽습니다.
지난 2022년을 기점으로 재선충 감염 소나무류는 이전보다 3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문제는 단지 산림에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 주민 안전까지도 위협한다는 겁니다.
[유복순/마을 주민 : (비가 많이 오면) 밤새도록 뜬눈으로 새우지 뭐. 까닥까닥 그러면 잠 안 와요. 천둥 치고 해봐라. 얼마나 겁나는데.]
지난해 태풍 때는 재선충 고사목이 민가를 덮치는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습니다.
[유복순/마을 주민 : (잘라달라고) 신고를 하니까 처음에는 안 해주더라고. 사람이 들락날락거리다 죽으면 어떡하냐고 얘기했더니 해줬어요.]
산사태도 걱정입니다.
[성옥순/마을 주민 : 이게 질땅이 아니고 마사토라 가지고 나중에 비가 오면 또 뭉개질까 봐 그게 또 걱정이야.]
실제로, 일본 연구진이 지난 2010년과 11년 산사태가 빈발한 규슈 아마미오 섬을 조사했더니,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 군락지에서 토사 붕괴가 더 많았던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고속도로 터널 입구에 말라죽은 소나무도 운전자를 위협하는 낙하물이 될 수 있고, 해안 탐방로의 고사목도 보행자들에게 위험 요소입니다.
관광객들이 해안변을 따라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입니다.
제 바로 머리 위로 닿을 듯 말 듯한 재선충 피해 고사목들이 있는데요.
많은 비가 내리거나 강한 바람이 불면 이곳을 걷는 관광객들을 덮칠 수도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김상환/관광객 : 위험한 거 알면서도 다니는 거지. 그냥 태풍 같은 거 오면 또 무너지겠지.]
국보가 많은 불국사 주변에도 재선충 고사목이 늘면서, 문화재에도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규원/ 산림기술사 : 특히 동해안과 남해안은 이암 토질 그다음에 급경사지의 마사토 지역입니다. 그 사방지로 이루어진 숲이 소멸하고 나면 어떠한 피해 2차 피해가 나올지 아직 감을 못 잡는 그런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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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현장 다녀온 박찬범 기자와 이야기 나눠보죠.
Q. 소나무재선충병 확산, 안전사고로 이어지나?
[박찬범 기자 : 최근 2년에서 3년 사이 연간 재선충병에 감염된 소나무 수가 이전과 비교했을 때 3배 가까이 급증했습니다.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땅의 응집력을 약화시켜 산사태를 일으키고 산불이 났을 때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데요. 문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국내의 재선충병 확산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Q. 이런 소나무들을 베어내지 않고 방치하는 이유는?
[박찬범 기자 :결국에는 위험 요소를 제거하려면 안전과 직결된 재선충병 소나무를 베어내고 대체 식목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 국내 산림 방재 지침상 여러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도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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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산림청에 보고된 재선충 감염 소나무류는 196만여 그루입니다.
이 가운데 24%에 해당하는 47만여 그루는 아직 방제가 진행되지 않아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공식방제 기간인 10월이 돼야만 방제를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산림 당국은 일반적으로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만 재선충 감염 소나무를 베어냅니다.
재선충을 퍼뜨리는 하늘소가 성충이 돼 나무 밖으로 나온 뒤에는 방제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최원일/연구관 : 여름에는 약제 살포들을 하는 거죠. 10월부터 3월까지는 나무를 베서 그 안에 있는 유충과 성충들을 없애는 방지를 하고요.]
병해충 확산 방지 관점에서 효율적인 시기를 정한 것이지만, 정작 집중 호우가 잦은 장마, 태풍철에는 안전을 위협하는 재선충 소나무가 방치될 수밖에 없습니다.
[김선호/녹색연합 자연생태팀 : 산의 경사면이나 민가 주변에 늘어나면서 이것들이 어떤 안전 위협을 가할 지에 대해서는 방제 지침에서는 사실은 빠져 있는 부분이 많은 거죠.]
현장에선 현재의 방제 예산으로는 재선충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하소연도 나옵니다.
최근 5년간 재선충 방제 현황을 보면 지난해부터 재선충 급증을 감당하지 못해 처리하지 못하는 감염 목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양현두/경주시 산림경영과장 : 매년 100억 정도 예산이 확보되어서 저희들이 소나무 재선충병 방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확산 속도를 억제할 수가 없습니다.]
재선충병 확산이 국민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는 만큼, 지금과는 다른 방제 전략과 예산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입니다.
[정규원/ 산림기술사 : 숲이 완전 소멸된 지역에 대해서는 안전 쪽에서 측면에서 재난 측면에서,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제 지침이나 매뉴얼이 나와야 합니다.]
(영상편집 : 원형희, 디자인 : 이준호·방명환·임찬혁·홍지월, VJ : 김준호)
박찬범 기자 cbcb@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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