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의 겨울 이적 시장이 막을 내렸다. 잉글랜드는 3일 오후 11시에 문을 닫았다.
한국 선수들의 위치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양민혁만이 임대로 팀을 옮겼다. 토트넘에서 퀸즈 파크 레인저스(QPR)로 향했다.

#갑자기 임대?
사실 임대의 징후가 있기는 했다. 그 때는 몰랐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임대가 당연했을 수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초였다. 토트넘 경기장에서 안면이 있는 직원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12월 15일에 양민혁이 한국을 출발해 런던으로 오거든. 한 번 히드로 공항에 나가보려고."
그 직원은 "아하. 얭(Yang)~ 좋은 선수라고 들었어. 와서 훈련하다가 임대를 갈 수도 있겠지만, 가더라도 경기력 발전을 위해 좋은 임대가 될 거야"고 했다.
물론 그 직원은 일반론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대부분 10대 어린 선수가 빅클럽에 왔다가 임대를 가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양민혁은 그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토트넘에서 계속 데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오랜 시간 유럽 축구계를 취재했음에도, 같은 나라 선수의 일인지라 '일반론'을 애써 무시했다.
1월 1일 이후 양민혁이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서 머리 속에서 '임대'는 지워버렸다. 다른 유망주들이 출전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임대를 보내기 위한 쇼케이스성 출전 명단 등재'라고 하면서 양민혁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했다. 분명 뛸 것이고, 조만간 토트넘 선수들이 정리되면 더욱 기회를 많이 받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1월 마지막 주. 양민혁 관계자가 갑자기 영국으로 들어왔다. 뭔가 낌새가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임대설이 퍼졌다. 결국 QPR로 임대됐다. 뒷이야기를 들었다. 양민혁의 임대는 '실패'가 아니었다. '통 큰 투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 상황에서 토트넘 공격진은 차고 넘친다. 양민혁은 좌우 윙어는 물론이고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뛸 수 있다. 그러나 현상태에서는 순위가 밀린다.
손흥민, 데얀 클루셰프스키, 브레난 존슨, 티모 베르너, 마이키 무어, 윌손 오도베르까지. 히샬리송도 측면에서 뛸 수 있다. 중앙으로 가도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제임스 매디슨, 클루셰프스키, 루카스 베리발 등이 있다.
부상이 계속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양민혁에게까지 기회가 오려면 차례 차례를 넘겨야 한다. 그 나이대에서는 경기에서 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양민혁 본인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양민혁은 2023년까지 고등학생 선수였다. 강원의 U-18팀인 강릉제일고에서 뛰었다. 2023년 12월 갑자기 기회가 찾아왔다. 준프로 계약을 체결했고, 강원 1군으로 콜업됐다. 김병지 강원 대표의 결단이었다. 그 나이대 에이스가 애매한 18세 이하 리그에서 뛰느니 성인 무대에 참가하는 것이 낫다고 결론내렸다.
2024년 개막전부터 양민혁은 선발로 출전했다. 만 17세 10개월 15일. 강원 구단 역대 최연소 출장 기록이었다. 이후 양민혁은 강원의 주전 멤버로 도약했다.
경기를 치르면서 경기력도 수직 상승했다. 강원은 여름 프로 계약을 맺었고, 토트넘과의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토트넘으로 가기 전, 양민혁은 2024년 K리그 전 경기(38경기)에 나섰고, 이 중 37경기를 선발로 출전했다. 12골-6도움을 기록했다. 시즌 시작 전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18세 어린 선수가 경기에 뛰면서 일취월장하며 K리그 최고 선수로 발돋움한 것이다.
양민혁의 발전 가능성에 주목한 토트넘은 결단을 내렸다. 출전 순위에서 밀려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것보다는 2부리그라도 임대를 보내 경기에 나서게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6개월 임대를 결정했다. 많은 팀들이 토트넘과 접촉했다. 이미 양민혁의 실력은 알고 있었다. 임대 후 이적 조항을 많이 들고 나왔다. 토트넘은 모두 거절했다.
보통 임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임대만 하는 방식과 임대 후 이적 조항을 넣는 방식이다. 임대만 하는 경우에는 향후 그 선수를 쓰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당장은 뛰지 못하니, 뛰게 하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린 후 다시 데려와 쓰겠다는 의미이다. 반면 임대 후 이적 조항을 넣는 것은 더 이상 팀 내에서 활용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양민혁의 경우 임대만 보내는 계약으로 알려져있다. 그만큼 양민혁을 인정했다는 의미이다.

양민혁이 참고해야할 모범 답안이 있다.
우선 토트넘의 전설, 해리 케인이 가장 대표적이다. 1993년생인 해리 케인은 18세 때인 2011년 1월 3부리그 레이튼 오리엔트로 임대되어갔다. 반 시즌을 뛴 그는 토트넘으로 돌아왔다. 반 시즌을 뛰었지만 여전히 자리가 없었다.
19세의 케인은 2012년 1월 2부리그인 밀월에서 반 시즌을 뛰었다. 그 다음 시즌인 2012~2013시즌 역시 케인은 토트넘에서 뛰지 못했다. 반 시즌은 당시 프리미어리그였던 노리치시티, 그 다음 시즌은 2부리그였던 레스터시티에서 경기 경험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린 20세의 케인은 결국 토트넘에 뿌리를 내렸고, 레전드로 자리매김했다.
임대 생활을 하면서 기량을 꽃피운다면 굳이 토트넘에 남지 않아도 된다. 다른 모범 답안들도 상당히 많다.
프리미어리그 최고 미드필더인 케빈 더 브라이너는 2012년 1월 마지막 날 KRC 헹크를 떠나 첼시로 이적했다. 첼시는 유망주인 더 브라위너를 키울 생각이었다. 바로 KRC헹크에 재임대했다. 남은 시즌을 뛰게 했다. 2012~2013시즌 첼시로 돌아온 그는 다시 베르더 브레벤으로 임대됐다. 2012~2013시즌 더 브라이너는 독일에서 34경기에 나와 10골-10도움을 기록했다. 독일 무대 임대가 더 브라이너에게 큰 기회를 줬다. 다음 시즌인 2013~2014시즌 첼시로 돌아온 그는 실망스러운 시즌을 보냈다. 당시 에덴 아자르, 오스카, 윌리안 등 2선 자원들이 넘치고 넘쳤다. 2014년 1월 볼프스부르크로 완전 이적했다. 다시 폭발했다. 특히 2014~2015시즌 더 브라이너는 독일에서 16골-27도움을 올렸다. 맨시티가 불렀고, 2015년 8월 맨시티로 이적한 후 지금까지 뛰고 있다.
모하메드 살라도 임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높였다. 살라는 FC바젤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2014년 1월 첼시로 이적했다. 그러나 역시 2선은 포화상태였다.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1년을 버틴 살라는 2015년 2월 이탈리아 피오렌티나로 임대됐다. 반 시즌동안 26경기에서 9골을 넣었다. 많은 팀들이 살라를 원했다. 2015~2016시즌 AS로마에서 임대로 뛰며 15골-7도움을 기록했다. 다음 시즌 완전 이적에 성공했고, 2016~2017시즌 살라는 19골-13도움을 기록했다. 그리고 2017년 여름 리버풀로 이적해 지금까지 리버풀의 전설로 뛰고 있다.
이들 외에도 마르틴 외데고르, 필리베 쿠티뉴, 제이든 산초 등 많은 선수들이 유망주 시절 임대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렸다.
양민혁인 이제 시작이다. 임대는 절대 실패가 아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발전의 밑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