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사상 첫 감액 예산안 강행 처리… “증액 필요 땐 추경”

더불어민주당이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여당의 반대에도 ‘감액 예산안’ 의결을 강행했다. 예산안 처리가 해를 넘겨 신규 사업에 돈을 한 푼도 쓸 수 없는 초유의 준(準)예산 편성은 막았지만, 코로나 등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비상금 격인 예비비와 국고채 이자 상환 예산 등 4조원대 예산이 삭감됐다. 예산심사권을 쥔 국회가 정부 동의 없이 증액할 수 없지만 감액은 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여야 협의 없이 야당이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민주당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다른 야당들과 함께 총지출 677조4000억원 규모의 정부 예산안에서 4조1000억원을 깎은 673조3000억원의 예산안을 재석 278명 중 찬성 183표, 반대 94표, 기권 1표로 통과시켰다. 내년 총지출 규모는 올해(656조6000억원)에 비해 2.5% 늘어나는 데 그치게 됐다. 역대 최저 증가율이다.
기획재정부는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예비비와 국고채 이자상환 예산 등 민주당 감액분의 절반가량인 2조1000억원 규모를 되살려달라고 요구하는 등 막판 협상에 나섰지만 끝내 결렬됐다. 정부는 ‘이재명표 지역 화폐’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예산을 당초 여당의 협상안이었던 3000억원보다 1000억원 많은 4000억원으로 늘리는 등 9000억원 규모의 증액안을 제시했지만, 민주당은 지역 화폐 등 예산을 2조원 이상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절충점을 찾지 못했다.

◇정부 비상금 반 토막
감액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되면서 예상치 못한 국가적 재난을 대비하는 용도인 예비비가 정부안(4조8000억원)의 절반(2조4000억원)으로 줄었다. 정부는 관세 장벽 강화를 내세운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불확실성 요인이 많아 충분한 예비비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작년 예비비 중 실제 사용액이 28.5%에 그쳤다는 이유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년과 올해 2년 연속 세수 결손으로 재정적자가 90조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적자를 메우기 위해 발행하는 국고채 이자를 갚을 예산도 30조4779억원에서 29조9779억원으로 5000억원 줄었다. 예비비 다음으로 감액 규모가 컸다.
민주당은 또 대통령실과 검찰, 경찰, 감사원 등의 특수활동비(정보·수사 업무를 위한 비용), 특정업무경비(디지털 성범죄·마약 범죄 등 특정 분야 수사 등에 사용되는 비용) 등도 “깜깜이 쌈짓돈”이라며 전액 삭감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민주당이 검경의 특수활동비를 보복성으로 삭감했다”며 “민주당의 일방통행식 예산안은 ‘이재명 방탄용’이자 ‘국가마비용’”이라고 반발했다.
◇육아휴직 급여 상한 150만→200만원
저출생 대응과 국가장학금, 소상공인 지원 관련 등은 당초 정부안대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육아휴직 급여 상한은 월 15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늘어나고, 육아휴직을 쓴 직원을 대신해 인력을 고용한 업체가 받는 대체인력 지원금도 월 8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확대된다. 국가장학금 지원 예산은 올해 4조7000억원에서 내년 5조3000억원으로 6000억원 늘어, 지원 대상이 100만명에서 150만명으로 확대된다. 전체 대학생의 75%가 최소 100만원씩 국가장학금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영세 소상공인에게 연간 30만원의 배달·택배비를 지원하는 사업에 신규 예산 2037억원을 투입하는 내용도 정부안대로 반영됐다. 간이과세 대상에 해당하는 연매출 1억400만원 미만 소상공인이 지원 대상이다.
◇野 주도 추경 가능성에 정부 난색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증액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추후 추경 등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예산안이 통과된 직후 “정부는 내년도 예산집행이 시작되는 즉시 추경 편성 준비에 착수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재부는 “향후 경기 여건 등을 보아가며 결정할 사안으로 현재 추경을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신중한 입장이다. 야당 주도의 추경은 지역 화폐 등 이른바 ‘이재명 사업’ 예산을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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