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드라마·영화의 원작 활용 급증의 두 얼굴

원작 활용 드라마와 영화가 급증하고 있다. 영상 시장이 급성장한 가운데 콘텐츠의 제작 환경과 마케팅 전략이 급변하고, 흥행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원작 이용 영상물이 폭증하고 원작의 사용 범위와 양태도 크게 변모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의 원작 활용의 역사는 오래됐다. 한국 영화 초창기인 1920년대 윤백남 감독의 ‘운영전’, 이경무 감독의 ‘심청전’ ‘장한몽’, 이규설 감독의 ‘농중조’ 등 상당수 영화의 원작은 고전 소설과 일본 연극·소설이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났다. 지난해 564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던 ‘좀비딸’은 이윤창 작가의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을 영상화한 것이고,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가 없다’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미국 소설 ‘액스’를, 젊은 관객들의 눈길을 끈 ‘만약에 우리’는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를, 그리고 넷플릭스가 2월부터 서비스해 호평을 받은 ‘파반느’는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영화화한 것이다.

이처럼 원작을 사용한 영상물은 한국 대중문화 역사와 궤를 함께할 만큼 오랜 역사를 지녔다. 시대에 따라 원작으로 이용된 작품의 양태는 크게 변모했다. 전통적으로 영상물의 원작으로 가장 각광받은 것은 소설이다. 문학적 상상력과 탄탄한 내러티브, 독창적인 캐릭터로 무장한 소설은 사극부터 현대극까지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와 영화의 원작으로 활용됐다. 일제 강점기 심훈의 ‘상록수’부터 1960~1970년대 이범선의 ‘오발탄’, 김승옥의 ‘무진기행’,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 ‘토지’, 1980~2020년대 조정래의 ‘태백산맥’, 최인호의 ‘겨울 나그네’ ‘상도’, 김훈의 ‘칼의 노래’ ‘남한산성’, 공지영의 ‘도가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한강의 ‘채식주의자’ ‘흉터’,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이선미의 ‘경성 애사’까지 오랫동안 수많은 소설이 드라마와 영화로 재탄생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기상천외하고 실험적인 스토리와 인물, 비약과 축약을 통한 박진감의 배가, 사건과 서사의 신속한 전개, 캐릭터의 명확한 설정 등 영상화하기 좋은 요소를 두루 갖췄을 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웹툰과 웹소설의 원작 사용이 급증했다. 드라마 ‘모범택시’ ‘이태원 클라쓰’ ‘무빙’ ‘파인’ ‘동네변호사 조들호’ ‘미생’ ‘정년이’ ‘경이로운 소문’ ‘스위트홈’ ‘지금 우리 학교는’ ‘송곳’과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 ‘신과 함께-죄와 벌’ ‘내부자들’ ‘강철비’ ‘콘크리트 유토피아’ ‘부활남’ ‘패션왕’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끼’ ‘26년’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이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상물이다.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재벌집 막내아들’ ‘사내 맞선’ ‘김비서가 왜 그럴까’ ‘그녀의 사생활’ ‘구르미 그린 달빛’ ‘내 남편과 결혼해줘’ ‘어게인 마이라이프’와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나 혼자만 레벨업’ ‘시맨틱 에러: 더 무비’ 등은 웹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들이다.

왜 이처럼 원작을 활용한 영상물이 급증할까. 최근 방송사와 제작사, 영화사, OTT의 증가와 국내 영상 시장의 급성장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콘텐츠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기존 작가의 한계와 매너리즘으로 인해 발생하는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스토리 빈곤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원작의 영상화 작업이 왕성하게 전개되고 있다. 원작의 대중성과 유명성, 인기를 흥행으로 연결하려는 의도 역시 원작의 영상화 작업을 부추기는 주요한 원인이다. 원작을 사용하면 제작비 절감과 제작 기간 단축을 이끌 수 있는 이점 역시 원작 이용을 배가시킨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지식재산권(IP)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 개의 작품을 여러 문화 분야에서 이용하는 원소스-멀티유스(One Source-Multi Use) 전략을 본격적으로 구사하면서 원작의 영상화 붐이 조성됐다.
영화와 드라마 같은 문화 상품의 특성도 원작 사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한 번 소비된다고 수명이 끝나는 것이 아닌 비소모재이고, 이용자가 상품을 직접 소비했을 때만 그 가치를 아는 경험재다. 또한, 한번 소비하면 다시 이용하지 않는 경향이 강한 비반복재와 소비할 때 적지 않은 돈이 소요되는 사치재 성격도 있어 수요가 불안정하고 소비 예측이 매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수요 안정화 수단인데 그중의 하나가 스타 캐스팅, 속편·장르 전략과 함께 다른 문화 상품 시장에서 성공한 작품을 재가공하는 원작 활용이다.

소설부터 웹툰까지 다양한 원작을 이용하는 영상 콘텐츠가 급증하고 있지만, 성공한 영상물보다 실패한 작품이 훨씬 많다.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신과 함께-인과 연’ ‘신과 함께-죄와 벌’을 포함해 ‘좀비딸’ ‘내부자들’처럼 흥행에 성공한 영화도 있지만, 제작비 300억 원과 이민호 안효섭 같은 톱스타들이 대거 투입된 블록버스터 ‘전지적 독자 시점’이 손익분기점 700만 명에 턱없이 부족한 106만 명의 관객에 그친 것을 비롯해 원작을 사용한 영화의 상당수가 흥행에 참패했다. ‘판사 이한영’ ‘폭군의 셰프’ ‘무빙’ ‘이태원 클라쓰’ ‘모범택시’처럼 국내외에서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원작 활용 드라마도 있지만, ‘바니와 오빠들’ ‘함부로 대해줘’ 같은 0%대 시청률로 대중의 외면을 받은 작품도 부지기수다.

원작 활용 영상물이 폭증하며 오리지널물 창작자와 제작진의 입지가 좁아지고, 흥행과 작품성에서 실패한 영화와 드라마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웹툰 ‘미생’을 원작으로 한 동명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과 완성도를 이끈 김원석 PD의 “영상물의 특성에 맞게 원작의 스토리와 캐릭터를 잘 녹여내는 것이 원작 활용 영상물에서 매우 중요하다”라는 조언과 원작 이용에 너무 매달린 결과가 일본 영상물 시장의 침체로 나타났다는 일본 작가 노기 아키코의 질타는 원작 활용에 혈안이 돼 있는 문화 산업계가 되새겨야 할 유의미한 충고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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