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프에 '下山'이란 없다!

방민준 2025. 7. 19.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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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내용과 관련 없는 참고 이미지입니다. 현역 골프 선수 최강자인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가 2025년 메이저 대회 PGA 챔피언십 연습 도중에 퍼팅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사진제공=ⓒAFPBBNews = News1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골프한국] 불교 수행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의 하나가 수행자가 진짜 깨달음을 얻었는지 아니면 깨달았다고 오해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일이다.



오판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수행의 방향 전체를 왜곡시키는 결정적인 착각이 될 수 있기에 수행자에겐 매우 위험한 함정이다. 진리에서 벗어나 미망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이 깨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깨달음의 길은 너무나 깊고 미묘해서 자칫 자신의 견해나 체험을 '깨달음'으로 잘못 판단하기 쉽다.



 



필자 스스로 골프채를 잡은 후 무수한 깨달음의 관문을 지나왔지만 그 많은 깨달음들이 궁극의 깨달음이 아니었음을 구력 40년을 넘기면서 절감하고 있다.



골프에 입문해 한참 그 묘미에 빠져들 즈음 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친구 지인의 장인이 장성으로 은퇴하신 분인데 라운드를 끝내고 집에 들어설 때마다 부인에게 털어놓은 얘기가 "여보, 이제야 골프가 뭔지 알 것 같아."라는 것이라고 했다. 놀라운 것은 이런 토로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70대 후반 80대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주변에도 골프에 대해 깨달았다고 믿는 사람이 꽤 있다. 다만 나이를 먹음에 따라 그 깨달음을 몸으로 재현하는 능력이 따라주지 않을 뿐이라고 말한다. 필자도 그런 착각과 오판에 빠진 사람 중의 하나일 것이다.



 



6톤이 넘는 거구로 정글을 누비는 코끼리도 어릴 때 사람에게 붙잡혀 서커스단에 팔려 가면 조련사의 지시에 복종하는 애완용 동물로 전락한다.



서커스단의 조련사는 어린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뒷다리를 쇠사슬이나 밧줄로 묶어 말뚝에 매어 둔다. 코끼리는 도망치려 몸부림치다 스스로 쇠사슬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쇠사슬 끊는 것을 포기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말뚝 주변을 자신의 영역으로 받아들인다. 성장해서 쇠사슬이나 밧줄을 끊을 힘이 있는데도 어릴 적부터 익숙해진 경험에 갇혀 쇠사슬에 묶인 채 아무 저항 없이 살아간다.



이를 'Baby Elephant Syndrome'(아기 코끼리 증후군)이라고 한다. 과거의 굴레와 멍에, 혹은 선입견에 익숙해져 자유와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병리적 모습을 상징한다.



골프를 하는 사람 중에도 의외로 '아기 코끼리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레슨프로로부터 체계적인 교습을 받은 사람 중에 이 증세에 갇힌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레슨프로들은 처음 골프를 배우는 사람에게 가능한 한 교과서적인 스윙을 익히기 위한 동작들을 터득하도록 가르친다. 프로들 나름의 '교습의 틀'을 심어주려 애쓴다. 이를 터득한 골퍼들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스스로 깨달았다고 착각한다. 열심히 연습만 하면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많은 골퍼들이 자신도 모르게 '아기 코끼리 신드롬'에 빠진다. 레슨프로가 가르친 동작에 가깝게 재현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생체리듬에 따르는 자유의지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레슨프로의 품을 떠나서도 레슨프로가 만들어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골프 스윙은 지문과 같아서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는 말에 수긍한다면 특정 레슨프로가 가르치는 스윙을 절대시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골프에 철칙은 없다. 내가 가장 잘 소화할 수 있는 스윙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게는 철칙이다. 나이가 듦에 따라 변하는 신체 상황과 조화를 이루는 스윙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무술의 고수가 제자에게 '하산(下山)'을 허락하는 것은 더 배울 것이 없으니 떠나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가르칠 것은 다 가르쳤으니 이제 세상으로 나가 다른 문파(門派)의 무술을 습득해 자신만의 무술을 구축하라는 의미다. 하산은 완성이 아니라 진정한 무술의 길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소림사 같은 무술을 수련하는 곳이라면 정해진 관문이나 시험을 통과하면 하산(下山)이라도 할 수 있지만 골프에선 결코 하산할 때는 오지 않는다. 포기하거나 추락할 수만 있을 뿐이다. 평생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의 형벌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골퍼에게 하산은 영원히 없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변증법처럼 골프에서의 깨달음은 계속 이어질 뿐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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