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 마음먹으면 그냥 뺏는다”…특허 지킴이 나선 KAIST 총장님
최근 국가지식재산위원장 선임
한국 지재권 보호할 수단 적어
특허 전문 판사제 도입은 물론
미국처럼 증거·서류 공개하는
한국판 디스커버리법 시급해
해외로 기술유출도 적극 대응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이 ‘지식재산권 지킴이’로 팔을 걷어부쳤다. 안으로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등 약한 고리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밖으로는 글로벌 기업들의 공세에 맞서 한국의 지식재산권을 지키는 보루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그는 지난 8월 범부처 지식재산 컨트롤타워인 국가지식재산위원회(지재위) 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이 위원장은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국내 지식재산권 현실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전 세계적 기술패권 경쟁으로 지식재산권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지만, 정작 한국은 지식재산권을 보호할 수 있는 구조가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수준은 수치상으로도 주요국 중 하위권에 속한다. 2023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특허출원 건수와 특허등록 건수는 각각 세계 64개국 중 4위, 인구 10만명당 특허출원 건수는 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식재산 보호순위는 28위에 그친다. 이 위원장은 이는 강자가 약자의 지식재산권을 쉽게 빼앗아올 수 있는 국내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통상 지재권 침해의 주체는 강자다. 이 위원장은 “예를 들어 중소기업이 대기업 보유 특허를 빼앗아오려는 경우를 봤느냐”고 반문하며 “이런 생리 때문에 국내에서는 강자가 약자의 지식재산권을 빼앗아오기가 쉽다”고 설명했다.
지식재산권 탈취는 무효소송부터 시작한다. 이 위원장은 “강자는 전세계 모든 특허를 뒤져 비슷한 것을 들고 온다”며 “이를 근거로 무효화를 주장하게 되는데, 이 단계에서 무려 절반 이상이 무효 처리된다”고 말했다.
운이 좋아 무효가 되지 않고 살아남아도 ‘배상 단계’에서 좌절한다. 강자가 약자의 특허를 침해했으니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약자는 계속 약자다. 이 위원장은 “약자가 배상을 받으려면 강자가 침해 특허를 어떻게 활용했고,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등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강자가 영업비밀이라 공개가 불가하다고 주장하면 끝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송사는 각 과정마다 몇 년씩 걸린다. 당장 발등에 불을 끄며 사업을 영위해야 하는 약자들이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시간이다. 승리하더라도 배상액은 극히 적다. ‘다윗과 골리앗’ 같은 스토리가 현실화되기 불가능한 구조인 셈이다.
이 위원장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전문판사제와 디스커버리법 도입, 관련 세법 개정 등을 제시했다. 그는 “판결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순환보직을 도는 판사들의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미국과 독일 등의 선진국들은 특허 판사의 경우 ‘종신제’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도 특허 전문 판사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업비밀을 무기로 지식재산권 소송에서 강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는 구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한국형 디스커버리법’의 도입도 필요하다. 미국의 디스커버리법은 소송 당사자가 서로 요청에 따라 관련 정보나 서류를 공개하는 절차다. 합당한 이유 없이 요청을 거절하면 법원의 처벌과 제재를 받는다. 이 위원장은 “판사가 지정하는 전문가가 강자가 약자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했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높은 특허 무효율을 낮출 방안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특허 업무와 관련된 변리사들의 수가가 적어 박리다매식으로 특허 등록 업무를 진행하다보니 무효율이 높을 수 밖에 없다”며 “특허청 심사관들의 숫자 부족 등 여러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국내 지식재산권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면 그로 인해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며 “약자의 입장에서는 지식재산권이 돈이 되는 재산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식재산권을 중시하는 풍토를 심겠다는 것으로 최근 나날이 늘고 있는 해외 기술유출 대응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위해 관련 특허법과 세법 등의 개정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2011년 설립된 지재위는 대통령 소속기관으로 국가지식재산 기본계획과 국가지식재산 시행계획의 수립·변경에 관한 사항 등 국가 지식재산 정책을 총괄 조정·관리해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부처의견수렴 권한 제약, 주요 어젠다 견인 전문성 미흡 등을 이유로 ‘무용론’이 나오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에 대해 이견이 있는 이들은 없다”며 “조직원들에게 문제의식을 심어주고 이들을 힘있게 이끌고 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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