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윳값 방정식 해법 찾기 어렵네

우유를 만드는 일은 까다롭다. 공급을 유연하게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유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해서 짧은 시간 안에 생산을 늘릴 수 없다. 반대로 수요가 적어졌다고 해서 생산을 줄이기도 어렵다. 이는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는 농축산물의 공통적 특성이기도 하다.
임신한 젖소 한 마리는 하루에 원유 20~30㎏을 만들어낸다. 농가에서는 소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매일 젖을 짜야 한다. 원유가 팔리든 팔리지 않든 임신한 소로부터 나오는 원유의 양은 정해져 있다. 한번 짜낸 원유는 상하기 쉬워서 오래 저장할 수도 없다. 가공부터 소비까지 짧은 시간 안에 이뤄져야 한다.
농가는 짜낸 원유를 최대한 많이, 최대한 비싼 가격에 우유업체에 넘기고 싶어 한다. 반면 원유를 우유로 가공하는 우유업체는 소비자들이 찾는 만큼만, 가능하면 낮은 가격에 받고 싶어 한다. 낙농업 농가와 우유업체는 서로 필요한 공생관계이지만 동시에 생산량과 소비량이라는 정해진 파이를 두고 각자의 이익을 저울질하는 경쟁관계다. 그런 만큼 농가와 우유업체가 한 테이블에 앉아 원유 가격을 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지난 8월 초 농가를 운영하는 농장주들이 모여 우유공장 앞에서 규탄 집회를 연 데도 이와 같은 맥락이 숨어 있다.
원래 원유 값은 정부가 고시한 가격으로 정해졌는데, 원유가 필요 이상으로 만들어질 때가 많았다. 특히 2002년에는 총 253만t이 생산되어, 하루에 1000t이 넘는 원유가 남아돌았다. 2002년 말부터 쿼터제(총량제)가 도입된 배경이다.
쿼터제는 우유업체가 농가와 협상을 통해 미리 정해진 양(쿼터)만큼, 정해진 원가로 원유를 사들이는 것이다. 새로 낙농업계에 진출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원래 농가를 운영하던 사람으로부터 쿼터를 사야 한다. 물론 쿼터를 사지 않고 독자적으로 농가를 운영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원가보다 낮은 가격을 받고 원유를 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쿼터제가 도입된 이후로도 원유 가격을 매기는 과정은 험난했다. 2013년 8월부터는 ‘원유 가격 연동제(연동제)’가 시행됐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연동제는 원유 가격을 우유 생산비에 연동시키는 제도다. 매년 5월 통계청이 발표하는 농축산물생산비 조사 결과에 따라 원유 가격을 조정하는 것이다. 다만 이때 발표되는 우유 생산비가 전년 대비 4% 이상 늘거나 줄었을 때에만 그해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다음 해에 가격 조정을 논의하게 된다. 매년 새롭게 정해진 원유 가격이 적용되는 시점은 8월1일이다.
올해는 8월1일이 지나도 협상이 마무리되지 못했다. 정부가 새롭게 제안한 ‘용도별 차등가격제(차등제)’를 놓고 농가와 우유업체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기 때문이다. 차등제란 사람이 마시는 흰 우유(음용유)와 치즈·버터·생크림 등으로 가공하기 위한 우유(가공유)로 용도를 구분 짓고 가격을 달리 매기는 제도다. 음용유든 가공유든 상관없이 모든 원유 가격이 똑같았던 연동제와 달리, 차등제가 도입되면 음용유 원유는 리터(L)당 1100원, 가공유 원유는 L당 900원 선으로 가격이 나뉘게 된다.
농가의 강한 반발을 예상하고도 정부가 차등제를 들고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농림축산식품부(농림부)는 지난 20년 동안 위축된 낙농산업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농림부에서 발표하는 ‘우유 수급 개황’ 통계에 따르면 2001년 국산 우유 공급량은 약 234만t, 수입 우유 공급량은 65만t이었다. 하지만 20년 뒤인 2020년에는 국산 우유가 약 209만t, 수입 우유가 243만t으로 역전된다. 국산 우유 공급량 비중이 78%에서 46%로 줄어든 셈이다.

흰 우유 수요 줄고 가공유 소비 늘어
이런 변화가 생긴 이유는 지난 20년 동안 소비자의 소비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흰 우유를 마시는 사람은 줄어든 반면 유제품을 찾는 사람은 늘어났다. 농림부에서 발표하는 ‘우유 및 유제품 생산 소비 상황’ 통계에 따르면 2001년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36.5㎏, 유제품 소비량은 63.9㎏였다. 2020년에는 흰 우유 소비량이 31.8㎏로 줄어든 반면 유제품 소비량은 83.9㎏으로 크게 늘어났다. 유제품 대부분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 우유로 만들어진다. 자연스럽게 유제품 소비량 증가는 우유 수입 증가로 이어졌다.
2001년 77.3%였던 국내 우유 자급률은 2020년 48.1%까지 떨어졌다. 농림부는 지금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국내 낙농산업의 미래가 어두울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한국 원유 가격은 L당 1083원(2020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소에게 먹이는 사료를 대부분 수입해 들여와야 해서다. 정부가 차등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데에는 소비자에게 많이 팔리는 가공유만이라도 원유 가격을 낮춰 수입 우유에 맞설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자는 계산이 깔려 있다.
농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한국낙농육우협회(낙농협회) 측은 정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높은 원유 가격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높은 유통마진이라고 반박한다. 낙농협회는 한국과 비슷하게 원유 가격이 높은 일본을 예로 든다. 2020년 기준 일본 원유 가격은 L당 1203원, 한국은 L당 1083원으로 한국이 더 낮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팔리는 우윳값은 L당 2054원인 일본보다 한국(2442원)이 더 비싸다. 원유 값은 더 싼데 우윳값은 더 비싼 원인을 낙농협회는 높은 유통마진에서 찾는다. 국내 유통마진은 38.0%인 데 비해 일본은 업체 규모별로 11.4~17.7% 수준에 그친다.
우유업체들은 우유 소비량은 줄어들고 있는데 생산비에 연동된 원유 가격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번에 정부가 제안한 차등제에 대해서는 업체마다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서울우유협동조합(서울우유)과 매일유업이다. 서울우유는 음용유가 주력상품이기 때문에 굳이 농가와 대립할 이유가 없다. 새 원유 가격을 도입해야 하는 8월1일이 지나도록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자 서울우유는 소속 농가 1500여 곳에 총 월 30억원씩 ‘목장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농림부는 서울우유가 정부 방침을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원유 가격을 올린 것으로 간주하고 지난 8월18일 서울우유를 정책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주력상품이 유제품인 매일유업은 차등제가 도입되기를 기다리며 원유 가격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 8월8일 낙농협회 소속 농가들이 매일유업 평택공장 앞에서 규탄 대회를 연 이유다.
낙농업계 사정에 밝은 한 전문가는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더라도 지속 가능한 낙농업을 위해 양측 모두 조금씩 양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입 고기가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한우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것처럼, 아직 우유도 국내 우유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실제로 수입 우유는 운송 과정에서 맛과 품질이 떨어지기도 한다. 이 점을 살려서 국내 우유가 지속 가능한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8월18일 낙농협회는 중단됐던 협상을 다시 이어갈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농림부에 보낸 상태다.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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