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치니 '억'하고"… 안타깝게 떠난 21세 청년[오늘의역사]

━

박종철은 1987년 1월14일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에서 숨졌다. 이날 밤 11시45분쯤 중앙대 용산병원 의사 오연상이 현장에 도착해 검진했을 당시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경찰은 이날 밤에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화장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최환 부장검사는 사체 보존 명령을 내렸고 사건 지휘는 그날밤 당직이었던 안상수 검사가 맡았다.
사건 다음날인 1987년 1월15일 오후 6시가 넘어 한양대 병원에서 부검이 실시됐다. 부검 결과 온몸에 피멍이 들고 엄지와 검지 간 출혈 흔적과 사타구니, 폐 등이 훼손됐으며 복부가 부풀어 있고 폐에서 수포음이 들렸다.
━

그들은 기자회견에서 박종철 사망 원인에 대해 "냉수를 몇 컵 마신 후 심문을 시작했다"며 "친구의 소재를 묻던 중 책상을 '탁' 치니 갑자기 '억'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졌다. 중앙대 부속 병원으로 옮겼으나 밤 12시쯤 요절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당시 부검의 의사 진술을 확보해 고문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보도하자 강 치안본부장은 다시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진실을 실토했다.
강 치안본부장은 1987년 1월19일 기자회견에서 "박종운 소재를 묻는 심문에 답하지 않자 머리를 한 차례 잠시 집어넣고 내놓았다"며 "계속 진술을 거부하자 다시 집어넣는 과정에서 급소인 목 부위가 욕조 턱에 눌려 질식사했다"고 밝혔다. 이후 조한경과 강진규 등 고문 경찰관 2명을 사건 주도자로 지목한 뒤 구속해 사건을 축소했다.
사건 은폐 정황은 1987년 5월18일 김승훈 신부에 의해 밝혀졌다. 김승훈 신부는 이날 대공 경찰의 대부라는 치안본부 5차장 박처원 주도 아래 모두 5명이 가담한 고문치사사건을 2명만이 고문에 가담한 것으로 꾸미고 총대를 멘 2명에게는 거액의 돈을 주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김승훈 신부의 폭로 이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김인영 기자 young92@mt.co.kr
Copyright © 동행미디어 시대 & sida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62억 가로챈 전세사기 부부, 도피한 미국서 추방… 얼굴 공개 - 머니S
- "살아있었구나"… LA 산불로 잃어버린 반려견과 '기적의 상봉' - 머니S
- "교통사고로 장애 등급 받아"…김희철 고백 '충격' - 머니S
- "코로나 백신 맞고 가슴 커져"… 웹툰 작가, 작품으로 부작용 공개 - 머니S
- 블랙핑크 리사, 휴양지서 비키니룩 선보여… 러블리+섹시 - 머니S
- 가톨릭, 동성애자 인정?… "성관계 안하는 게이, 신학교 입학 가능" - 머니S
- 불 꺼진 지방 아파트 1.5만채… "취득·종부세 완화 효과 미미" - 머니S
- 아웃백 제치고 패밀리 레스토랑 '왕좌' 오른 애슐리 - 머니S
- [주간경제전망]삼전·하이닉스 기초자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출격 - 동행미디어 시대
- [오늘 날씨]서울은 최고 30도 '무더위'…남부는 최고 150㎜ '폭우' - 동행미디어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