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종 재위 13년째였던 1862년
결국 터졌습니다.
1862년 2월 진주에서 먼저 터졌는데요.
당시 조선에서 진주는
꽤 큰 도시였습니다.
그만큼 탐관오리들이 더 판을 칠 수가
있었는데요.

지금의 진주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진주목사 홍병원과
진주에 주둔하고 있던
경상도육군사령부였던
경상우병영의 사령관
우병사 백낙신이 합작하여
아주 못된 짓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당시 진주에서
한양으로 보내야 하는 세금이
연 쌀 4만 석이었는데

홍병원-백낙신이 진주백성들로부터
떼먹은 세금이
연 쌀 6만 석이었다고 합니다.
해도 해도 너무 한 거죠.

결국 농민봉기를 일으켰던
진주농민들은
홍병원과 백낙신을 인질로 삼고
두 사람은 모든 악행의 원인을
중간 아전들에게 돌리며
분노한 농민들이 아전들을 때려죽이고

홍병원과 백낙신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에
중앙정부에선 안핵사를 파견합니다.
안핵사란 민란이 터졌을 시
백성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중간에 타협과 중재를 해주는
역할을 하는 직책인데

이때 안핵사로 파견된 사람이
박규수라고,
아주 유능한 관리였으며
나중에 모든 개화파들의
스승이 되기도 합니다.
박규수는 안핵사로서
진주 백성들의 호소를
전부 들어주었으며

철종에게 아뢰 홍병원과 백낙신에게
가장 강도 높은 단계의
유배령에 처하게 만들며
진주에서의 농민봉기는
어느 정도 일단락됩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 사회에서
또 특기할 만한 사회적 현상이
전국적으로 큰 도시에
큰 시장이 열리는데
이곳엔 인근 마을사람들까지도
모인단 말이죠.

진주에서 벌어진 일들이
이 시장을 매개로 전국으로 퍼지면서
1862년 3~5월까지
충청-경상-전라 삼남지방에서
농민봉기가 폭발적으로
그리고 연쇄적으로 일어납니다.

1862년 임술년에 일어났던
이 일련의 농민봉기들을 통틀어
‘임술농민봉기’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