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시간에는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발이 되어 주었던 청와대 공식 의전 차량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초대 이승만, 4대 윤보선 전 대통령이 사용한 우리나라 첫 번째 공식 대통령 의전 차량은 미국 '캐딜락 플리트우드'입니다. 당시 유럽을 필두로 한 기존의 강대국들이 기나긴 세계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되어있던 반면, 미국은 그렇지 않았는데요.
본토와 기반 시설의 피해가 크지 않았던 미국은 오히려 전쟁을 계기로 세계 최고의 경제 국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막대한 부를 쌓게 되면서 이를 노려 다양한 사치품 시장이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고, 당연하게도 럭셔리카 수요도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거대한 차체와 대배기량 엔진을 장착한 고급차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고, GM의 럭셔리 브랜드 캐딜락은 오랜 기간 대통령 의전 차량으로 쓰였던 포드의 '링컨'과 함께 단연 돋보이는 브랜드였죠. '플리트우드'는 캐딜락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플래그십 라인업이었습니다.
차체 길이와 사양에 따라 이름 뒤에 서브 네임을 붙인 여러 파생 모델이 있었고, '플리트우드 62' 모델이 대통령 의전차로 사용됐습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선물했고, 청와대 의전 차량답게 방탄 처리도 이루어졌죠.

5.5m에 달하는 거대한 전장과 2m가 넘는 전폭, 번쩍이는 크롬 장식으로 남다른 존재감을 뽐내는 외관은 수레와 달구지가 더 흔했던 서울 거리에서 단연 돋보였겠죠?
V8 6.0L 엔진에 3단 자동 변속기를 맞물렸고, 최고 속도는 시속 180km에 달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도로 위에서는 가장 빠른 차라고 봐도 무방했죠. 한동안 방치되어 있던 이 차량은 현재 '국가등록 문화재 396호'로 지정됐고, 과거의 빛나던 모습을 되찾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가장 오랜 재임 기간을 지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취임 초기 GM 산하 쉐보레의 1960년식 '비스케인 세단'을 업무용으로 이용했습니다. 당시 쉐보레 역시 캐딜락과 비교하면 럭셔리 차량은 아니었지만, '차'라는 물건 자체가 귀했던 당시 우리나라 사정을 떠올리면 웬만한 고급 세단 부럽지 않은 차였죠.

직렬 6기통 3.9리터 엔진이 탑재되어 최고 출력 135마력의 넉넉한 힘을 제공했고, 보편적인 미국 세단 중 하나였지만 당시 트렌드를 충실히 따라 넓고 긴 차체가 돋보였습니다. 또 유려하게 떨어지는 C필러, 비행기의 꼬리 날개인 '테일핀'을 연상시키는 후면부는 자동차 디자인계의 전설로 평가받는 인물 '할리 얼'이 활약했던 당시 GM 계열 세단들의 디자인 특징을 그대로 따른 모습이었죠.
이 차량 역시 '국가재건운동'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평가 받아 '국가등록 문화재 397호'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이 긴 만큼 다양한 의전 차량을 도입했는데요.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캐딜락 플리트우드의 신형 모델인 '플리트우드 75'를 의전 차량으로 사용했습니다.
연임 이후 사용한 68년식 '플리트우드 75 리무진' 모델은 캐딜락 특유의 각을 세운 디자인, 5.8m에 달하는 넓고 쭉 뻗은 검은 차체로 플래그십 다운 풍채를 자랑했고, 세로로 배치된 헤드램프가 범상치 않은 인상을 풍기는 모델이었습니다. 성인이 세로로 누울 수 있을 만큼 넓다란 보닛 속에 무려 7.7L의 어마어마한 V8 엔진을 품었고, 4단 자동 변속기를 갖췄습니다. 또 380마력이라는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한 출력을 제공했어요.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시범 운행을 했던 차량도 바로 이 차량이었습니다. 육군본부에서 관리되던 이 차량은 '국가등록 문화재 제398호'로 지정되어 지금은 '육군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밖에도 재임기간 동안 의전 차량이 여러 번 교체됐는데요. '플리트우드 75 브로엄'과 '세단 드빌' 등 마찬가지로 당대 캐딜락 최고급 세단의 신형 모델을 번갈아 이용했습니다.
한편 1973년 시작된 1차 오일 쇼크를 계기로 기름을 들이마시던 기존의 대배기량 세단들이 서서히 주춤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럭셔리카의 다운사이징이 시작된 시기와 맞물렸기 때문에 무식하게 크기만 했던 캐딜라기 세단들도 서서히 엔진과 차체 크기를 줄이기 시작했죠. 다만 특유의 각진 디자인에서 오는 권위적인 느낌과 위압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분위기는 여전했습니다.

가장 짧은 임기를 끝낸 10대 최규하 전 대통령은 앞서 박정희 대통령이 사용하던 캐딜락 플리트우드 75와 더불어 프랑스 푸조의 플래그십 세단 '푸조 604'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국무총리 당시 쓰던 관용차를 그대로 이용했죠.

언뜻 봐도 당시 유럽 세단의 디자인이 미국 세단의 디자인과 너무나도 달랐다는 게 느껴지시죠?
이 차는 럭셔리카 시장에서 독일 차와 경쟁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디자인도 '페라리'로 유명해진 이탈리아 대표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의 손을 거쳤고, 화려한 기교는 없지만 군살 없는 매끈한 보디에 직선이 돋보이는 단정한 디자인이었습니다.

전장은 4,720mm, 폭은 1,770mm로 앞서 소개된 캐딜락 리무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지만, 당시 보편적인 차량들의 크기를 감안하면 대형 세단에 걸맞는 크기였습니다. 뒷좌석 편의성과 승차감 역시 부족함은 없었기 때문에 고향인 프랑스에서도 대통령 의전 차로 이 '푸조 604'가 활약했죠.
파워트레인은 푸조와 르노, 볼보 3개 회사가 합작해 만든 V6 2.7L 가솔린 엔진이 탑재됐고, 134마력의 최고 출력을 발휘했죠.

특히 이 차는 1979년 기아차가 빈약한 고급 세단 라인업을 보완하기 위해 부품을 들여와 조립 생산한 모델로, 기아차의 판매망을 통해 일반인에게도 판매가 이루어졌던 모델입니다.
출시 당시 대당 2,300만 원으로 강남 아파트 한 채와 맞먹는 가격이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그 가치가 대략 짐작이 되시죠?

'푸조 604' 역시 당시 현대 포드 '그라나다', 대우 로얄 '레코드'와 경쟁하던 당시로서는 만만치 않은 고급 차량이었지만, 마치 항공모함처럼 거대한 캐딜락 리무진과 대비되는 모습이 조금은 검소해 보이기도 하네요. 실제로 최규하 대통령은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있던 인물로 익히 알려져 있죠.
이 차량은 현재 최규하 전 대통령의 고향인 강원도 원주시에 기증되어 '원주시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통령 의전차 이야기는 다음화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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