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 아빠가 16시간씩 일해 월 3천만원 버는 비결

안녕하세요. 제가 겪어온 이야기를 상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저는 원래 2억 원이 넘는 빚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갚고 700만 원 정도만 남았습니다. 예전에는 관리비도 못 낼 정도로 힘들었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아 기분이 정말 좋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과거에 제가 게임, NC에서 나온 '아이온'이라는 게임에 너무 빠져 살았어요. 거의 망나니 같았죠. 와이프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가 "너 언제 철들래?"라고 물으시면 저는 "어머니는 도무지 나를 이해 못 한다, 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응원해 주는데"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심지어 일도 안 하고 게임만 하던 때에 어머니가 생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냐고 물으셨을 때, 아이온 게임 아이템인 '날개'를 사달라고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백혈구 수치가 낮아져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병원비를 내야 하는데 돈이 한 푼도 없었죠. 이곳저곳에서 돈을 빌려 해결했지만, 그때 제 자신이 너무나 한심했습니다. 아픈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저의 모습이 참담했어요. 그 사건이 제가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신용불량 상태라 돈 나올 곳이 전혀 없었죠.

빚 때문에 돈을 빌릴 곳이 없었지만, 신용이 안 좋은 사람들을 위한 미소금융을 끌어모아 가게를 차릴 수 있었습니다. 가게 이름은 '아빠의 바게트'라고 지었어요. 저희 어머니가 빵을 정말 좋아하시는데, 바게트 같은 빵은 계란이나 설탕이 들어가지 않아서 건강하거든요. 저희 아이들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든다는 의미에서 아빠의 마음으로 빵을 만든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저는 원래 29살에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7년 정도 일했습니다. 프랜차이즈는 반죽을 직접 가르쳐주지 않고 냉동 생지가 들어와요. 가게를 차리기 전, 조그만 믹싱기로 이 배합 저 배합을 해보면서 1년 반 동안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해도 되겠다 싶어서 '아빠의 바게트'를 창업했죠. 창업 당시 제 나이는 27살에 결혼해서 와이프는 21살이었습니다.

창업할 때 주변 사람들의 80퍼센트, 솔직히 90퍼센트 이상이 반대했어요. 돈 먹는 하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오직 와이프만 해보라고 응원해 줬죠.

실제로 가게를 열고 처음 1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한 달에 10만 원을 벌어서는 생활할 수가 없었어요. 빚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죠. 가게를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매우 컸습니다. 남은 빵은 가게 앞에 있는 고아원 같은 밴드에 계속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맘카페에 누가 빵이 너무 맛있다고 올려주면서 조금씩 잘 되기 시작했어요. 건강한 빵이나 바게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흐름을 잘 타서 운이 좋게 잘 풀린 것 같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 2시부터 나와서 일합니다. 바게트 반죽은 하루 전날 냉장고에서 숙성시킨 후 다음 날 새벽에 와서 작업해요. 번거롭고 힘들지만, 이 방법이 빵의 풍미를 좋게 하고 속을 쫄깃하게 만듭니다. 빵집 영업시간은 오전 9시부터인데, 보통 오후 5시나 6시면 빵이 다 나갑니다. 그러면 그 시간부터 반죽을 시작해서 저녁 7시나 8시까지 작업을 해요. 영업시간 끝나고도 2시간 정도 더 하고, 대략 10시간 정도는 준비 작업에 쓰는 셈이죠. 하루에 약 16시간씩 일합니다.

저는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철거할 때 쓰는 것 같은 특이한 방진 마스크를 착용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알레르기 때문이에요. 프랜차이즈에서 일할 때는 냉동 생지를 써서 몰랐는데, 이 일을 하면서 아나필락시스 쇼크, 즉 기도가 부어 숨이 막히는 증상을 겪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밀가루를 조금만 먹어도 입안이 간지럽고 힘들어서 유기농 밀가루를 사용하려고 노력해요.

옛날에는 빵 발효를 위해 나무 발효실을 사용했는데, 빵이 스트레스를 안 받고 천천히 발효되면 좋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겨울에는 2시간 이상 발효해야 하는 등 너무 오래 걸려서 지금은 발효실을 들여 시간을 훨씬 단축시키고 있어요. 저희는 보통 한 가지 반죽으로 여러 빵을 만드는 대신, 빵마다 특징 있는 반죽을 사용합니다. 통밀은 지리산에서 온 것을 쓴다고 말했는데, 사실은 지리산에서 온 통밀입니다. 100퍼센트 통밀을 써서 맛이 훨씬 더 괜찮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와이프가 홀을 보고 제가 주방에서 혼자 일합니다. 한 달에 20일 정도 일하는데, 지난달에는 매출이 3천만 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예전에는 동네 상권이라 유동 인구가 많지 않아 매출이 많이 안 나왔어요. 그래서 저희는 프리마켓이나 페스티벌 같은 곳에도 나가서 멀리 있는 분들께 빵 맛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초콜릿 바게트는 6,000원, 소금빵은 3,800원 정도입니다. 오랜 단골손님들도 많이 계신데, 어떤 분은 5년에서 7년 동안 거의 매일 오신다고 해요. 손님들이 프랑스 바게트만큼 맛있다고 하거나, 택배로 받은 하루 지난 빵도 맛있다는 후기를 남겨주시면 정말 힘이 납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돈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특히 요즘은 학원비가 정말 비싸거든요. 제 앞치마에 달린 뱃지는 어버이날에 막내딸이 사준 선물이에요.

2억이 넘던 빚을 아이들 다 양육하면서 갚아나가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정말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9년 동안 '이걸 어떻게 갚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힘들었지만, 이제 거의 다 갚으니 기분이 너무 좋아요.

제 꿈은 50살 정도 되면 르 꼬르동 블루 같은 세계 3대 요리학교에 들어가 프랑스 빵에 대해 좀 더 심도 있게 공부하는 것입니다. 한 학기에 1,600만 원 정도 한다고 하는데, 꼭 해보고 싶어요. 제가 못하게 되더라도 우리 아이들 중 누군가가 아빠 대신 그 꿈을 이어받아 이 가업을 이어가는 것도 제 꿈입니다. 제가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어떻게든 키워주고 싶어요.

본 콘텐츠는 해당 유튜브 채널의 이용 허락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국에 계신 많은 아빠이자 사업주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중간에 뭔가 안 될 거라고 미리 포기하지 마시고, 계속 이것저것 시도하고 노력하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21살 어린 나이에 저와 결혼해 고생 많았던 와이프에게는, "당신이 있어서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 수 있었던 것 같고, 열심히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앞으로 더 열심히 같이 한번 해보자"라고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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