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도 도쿄의 때이른 '벚꽃'처럼 활짝 필까?
한일 12년 만에 셔틀외교 재개…김대중 오부치 선언 계승
윤 대통령 "한일관계 새 출발" 기시다 "겨울 지나 벚꽃 개화"
"이번 주 도쿄에서는 벌써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긴 겨울철을 벗어나 12년 만에 한국의 대통령을 일본에 모시게 됐다"
12년 만의 한일 셔틀외교의 복원을 알리는 16일 한일정상회담 직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앞서 기시다 총리는 확대 회담 모두발언을 시작하며 "도쿄에서는 벚꽃이 개화했다"며 "윤 대통령과 미래를 위해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함께 열 기회가 찾아온 데 대해 대단히 기쁘다"고 말했다. 벚꽃이 피는 따뜻한 봄날과 그동안 경색됐다 풀어지고 있는 한일관계를 비유한 것이다.
두 정상의 환담 자리에서도 기시다 총리는 벚꽃을 언급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벚꽃이 이리 일찍 피었나 봅니다"
두 정상은 회담을 통해 그동안 경색됐던 한일 관계를 회복하기로 했다. 이날 회담은 외교장관 등 소수 인원만 배석하는 소인수 회담(25분)에 이어 경제부처 장관 등이 함께하는 확대회담(60분) 등 1시간 25분간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올해는 1998년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 25주년 되는 해"라면서 "공동선언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한일 간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됐다"고 평가했다.
기시다 총리도 "일본 정부는 1998년 10월에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속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시 공동선언에서 오부치 총리는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밝힌 바 있다.
우리 정부가 지난 6일 발표한 '제3자 변제' 방식의 강제동원 배상해법에 대해선 "일본 정부로서는 이 조치를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양국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했다.
기시다 총리는 "윤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 하에 한국의 조치가 발표된 바 있다"고 윤 대통령을 치켜 세웠다.
특히 "윤 대통령과 저 사이에 개인적인 신뢰 관계를 더욱 더 돈독히 해 나가면서 양국이 함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어진 기자의 질문에서도 "저 자신도 윤 대통령과의 사이에서 개인적인 신뢰 관계를 확인하고 긴밀히 의사소통을 도모하고자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윤 대통령에 대한 평이 좋다"며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고 분석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 이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하며 신뢰를 쌓게 됐다는 것이다.
이날 일본 측은 자위대 사열, 두 차례 연속 만찬 등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해 이례적인 의전으로 환대해 눈길을 끌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정상회담을 끝내고 도쿄 번화가인 긴자의 스키야키 식당에서 만찬을 함께 한 뒤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두 정상은 이 곳에서 통역만 대동한 채 맥주와 소주를 주고받으면서, 오므라이스 등을 먹었다고 NHK가 보도했다. 상의 재킷을 벗고 넥타이를 푼 채로 스스럼없는 분위기 속에서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NHK는 전했다. 생맥주잔을 기울이는 사진이 보도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처럼 '하나씩 하나씩'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피해자 측의 구상권 행사 여부를 묻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구상권이 행사된다고 한다면 이는 다시 모든 (강제징용) 문제를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구상권 행사라는 것은 판결 해법의 취지와 관련해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강제징용 해법의 취지와 관련해 "그동안 한국 정부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대해 해석해온 일관된 태도와 판결을 조화롭게 해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기금에 의한 3자 변제안을 판결 해법으로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도 과거사 문제와 관련한 일본 측의 명확한 사과는 없었다.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 등 진전된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공동의 이익은 얻었지만 우리의 통큰 결단에 비해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이 나왔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역대 일본 정부가 일왕과 총리를 비롯해 50여 차례 사과한 바 있는데, 그 사과를 한 번 더 받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미래 세대를 위한 역사적 창을 열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문법으로 한·일 관계를 풀겠다는 윤 대통령 의지의 표명"이라고 말했다.
한편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 문제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독도 문제의 일본 입장을 전달했다"는 일본 언론 보도와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독도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소인수회담은 외교안보 위주, 확대 정상회담은 경제산업 위주여서 위안부 합의는 언급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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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CBS노컷뉴스 곽인숙 기자 cinspai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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