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트라우마에 금투세 오락가락... '큰 개미' 이재명의 '표'퓰리즘[정치 도·산·공·원]

박세인 2024. 10. 6.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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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야 할 근거 없으면 정책 일관성 없다"던 李
3년 만에 '시기 고민'→'완화'→'지금은 안 돼 정서'
'큰 개미' 이재명의 투자자 공감… '지금은 심리'
'잠재적 납세자'의 욕망세… 종부세 시즌2 될라
'무원칙' 비판 野 대표 몫… 민주당 정체성 논란도
편집자주
여의'도'와 용'산'의 '공'복들이 '원'래 이래? 한국 정치의 중심인 국회와 대통령실에서 벌어지는 주요 이슈의 뒷얘기를 쉽게 풀어드립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2년 10월 27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금융위기 대책 마련 긴급 현장점검'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손해 보다가 가끔 한 번씩 돈 버는데, 거기에다 세금을 내야 한단 말이야. 억울하죠. 우리나라는 '지금은 하면 안 돼' 이런 정서가 있어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MBN 정운갑의 집중분석 인터뷰

지난달 29일, 모처럼만의 방송 인터뷰에 나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민주당 내에서 가장 치열한 정책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금융투자소득세를 두고 한 말입니다. 한 차례 유예 끝에, 내년 시행 예정이었는데, '현 상황에서는 부작용만 생긴다'는 주식투자자들의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당내에서 '공개 정책토론'까지 진행됐던 제도입니다.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제도 보완을 전제로 시행'과 '한번 더 유예' 주장이 팽팽하게 맞붙었는데 이 대표의 발언으로 사실상 '유예'로 종지부가 찍히는 분위기입니다.

사실 이 대표도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2022년 대선 전에는 "조세 제도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미뤄야 할' 합리적 근거를 만들지 못하면 정책 일관성이 없다"며 강경한 시행 입장을 내비쳤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당대표 재선에 도전하면서는 "주식 시장이 어려운데 이런 상황에서 금투세를 예정대로 하는 게 정말로 맞느냐. 시행 시기 문제는 고민해봐야 한다"고 하더니, 다시 토론회에서 "5년간 5억 정도 버는 것에 대해서는 세금 면제를 해줘야 한다"며 '완화 후 시행' 입장으로 달라졌습니다.

이 대표의 생각이 바꾼 배경에는 스스로를 '왕개미'라 칭해왔던 주식투자자의 '촉'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예나 폐지를 주장하는 당내 인사들은 금투세를 반대하는 투자자들을 보면서 '종합부동산세 트라우마'를 예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책 결정권을 가진 제1당의 수장으로서, 과거 본인이 말했던 '정책 일관성'을 뒤집는 데 대한 후과는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당시 대선후보)가 2021년 11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주식시장 발전과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한 간담회를 앞두고 증시 활황을 의미하는 황소 동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개미 중에 큰 개미' 이재명, 투자자 향한 '표퓰리즘'

"왕개미까지는 못 되더라도 개미 중에서는 큰 개미입니다."(2021년 11월, 한국거래소 간담회)

주식시장에서 이 대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90년대부터 투자를 해 왔던 '큰 개미'입니다. 대선 기간 중 여러 유튜브에 출연해 "주식시장이 뭔지도 모르고 투자했다가 계좌가 깡통이 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하루종일 단타만 하게 되더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기도 했고, 대선 후 한국조선해양, 현대중공업 등 이른바 '방산주'를 2억 원 이상 투자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오랜 기간 투자를 해 온 경험이 있는 만큼, 다른 투자자들과의 공감은 이 대표에게 큰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대박'의 경험이 있는 만큼 투자자들이 주식 투자를 통해 자산증식을 꿈꾼다는 것을 잘 알고, 세금 도입이 불러올 '나비효과'에 대해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습니다. '1,400만 명'이라는 주식투자자들의 요구를 귀담아 듣는 모습은 분명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자칫 주식시장이 더 안 좋아지고, 그 원인이 금투세로 지목된다면 그 후폭풍은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는 게 금투세 시행론자들을 바라보는 유예론자의 현실론입니다. 결국 지금은 '당위성과 논리'보다는 '투자자의 심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더구나 "잘못 건드리면 민란이 일어난다"는 세금 문제입니다. 대선까지 2년 반 가까이 남았다지만, '이재명 2기' 체제 구성 후 이미 집권 계획 수립에 나서고 있는 상황인 만큼 유권자들의 표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죠. 이미 금투세를 두고 '재명세'라는 프레임까지 씌워 있어, 시행에 따른 부담도 과거보다 커진 게 사실입니다. "시행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여러 이유를 대고 있지만, 결국은 이 대표의 대선에 부담을 줄 것이 두려워서 스스로 나선 것 아닐까." 한 기재위 관계자의 말입니다.

9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은 어떻게?'라는 주제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정책 디베이트에서 이소영 의원이 금투세 유예를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증세는 곧 선거 패배, 민주당 발목 잡던 '종부세 트라우마'

"금투세 논란을 보고 있으면, 종부세를 올린 뒤 사람들이 등을 돌렸던 게 생각난다."

민주당이 과거 겪었던 ‘종합부동산세(종부세) 트라우마’는 금투세 시행에 대한 불안감을 더 키웁니다. 종부세를 처음 도입했던 노무현 정부, 이를 다시 확대했던 문재인 정부 모두 공교롭게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이죠.

대선 직전인 2021년 주택분 종부세 납세자 규모는 93만1,000명에 달했는데, 2022년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이 대표의 표 차이(24만7,077표)를 훨씬 웃돕니다. 더구나 종부세 납부자가 많은 ‘한강벨트’ 등 서울에서의 표 차이(31만766표)가 더 컸다는 점은 민주당의 대선 복기 과정에서 종부세가 큰 패인으로 작용했다는 인식을 갖게 했습니다.

금투세는 종부세와 마찬가지로 '고액 자산가'가 주된 세금 납부 대상입니다. 기획재정부는 2022년 말 기준으로 약 15만 명이 세금을 내게 될 것으로 추산한 바 있습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 기대 수익이 달라지는 만큼, 이는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혹여나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1%포인트 이내의 격차로 당락이 갈린다고 가정하면, 충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이 대표와 가까운 한 재선의원은 "종부세와 금투세는 '욕망의 세금'이다. 내가 당장 세금을 내지 않더라도, 조금만 투자를 잘 하면 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조심스러운 접근을 강조했습니다.

9월 4일 오전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정책디베이트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참여연대 회원들이 금투세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왼쪽 사진). 반면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회원들은 금투세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오른쪽). 연합뉴스

"유예 후 반복되는 혼란 어떻게?"… 감당해야 할 부메랑

하지만 유예가 능사는 아닙니다. 이번 결정이 이 대표 집권을 위한 ‘키’일 수 있지만, 이에 따르는 부담도 고스란히 이 대표의 몫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대표가 대선 후보 시절 했던 말을 뒤집는 꼴이라, 그 부메랑은 더 클 수 있습니다.

당내에서 제기되는 것은 ‘무원칙’에 대한 부담입니다. 금투세 시행 후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시나리오 등 명확한 근거자료가 제시되지 않다 보니 ‘여론에 떠밀려’ 유예를 반복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어서입니다. 금투세는 2023년 시행 예정이던 것을 한 차례 연기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도 “2년 유예가 주식시장 활성화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지 불확실하다”는 국회 전문위원의 지적이 있었습니다.

현실적인 고민은 유예 기간입니다. 앞선 유예 때와 마찬가지로 2년간 추가 유예를 선택한다면 대선을 앞둔 2026년 말 이를 다시 논의해야 합니다. 김민석 최고위원이 주장한 대로 3년을 유예한다고 해도 2022년 대선과 마찬가지로 금투세 논쟁이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고, 2028년 총선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시행을 주장하는 측에서 “사실상 폐지”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 시점에서도 시행이냐 다시 유예 혹은 폐지냐를 논의하게 되면 투자자들은 또 한 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중진 정성호 의원이 폐지 후 재검토를 주장하면서 “유예가 시장의 불안정성을 더 심화시키는 게 아니냐”고 우려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시행을 주장하던 의원들 사이에서는 “한 번 유예한 것을 시행하기도 이렇게 어려운데, 처음부터 다시 법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나옵니다.

근본적인 문제인 ‘입법의 형해화’에 대한 비판도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개개인이 헌법기관 역할을 하는 국회의원들이 오랜 논의를 거쳐 만들어온 법안을 뒤집는 잘못된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원칙론'을 강조하던 한 재선 의원은 "한 번 무너지는 선례를 만들고 나면 앞으로도 법을 만들었다가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유예하고 폐지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더구나 강령에서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한다'고 해 왔던 민주당이 이 원칙을 깨고 '부자 감세'로 선회하는 데 대한 '정체성' 비판도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명제는 금투세를 처음 만들 때부터 정부와 정치권이 공감대를 형성해왔던 바입니다. "민주당이 고민해야 할 문제는 불평등과 자산 격차를 해소하는 것일 텐데, 금투세 유예나 폐지는 이와 배치되는 방향 아니냐." 당내에서 이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대표가 허투루 넘어갈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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