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모르는 시아버지 제사를 나보고 다?”…베트남 며느리 ‘봉’ 취급 이제 그만 [박민기의 월드버스]

박민기 기자(mkp@mk.co.kr) 2024. 9. 1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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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262만명’ 韓 다문화사회 진입
국제결혼도 지난해 기준 2만건 기록
‘한류 열풍’에 MZ세대 국제결혼도 늘어
“며느리 바꿔달라”…국민의식 못따라와
법무부, 국제결혼 교육프로그램 운영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세배와 차례상 차리는 등의 명절 예절을 배우고 있는 모습.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한국인 남편과 결혼 후 한국에서 4년째 살고 있는 베트남 여성 A씨는 매년 얼굴도 못 본 시아버지 제사를 직접 지내고 있습니다. A씨는 몸이 안 좋은 시어머니와 늦게 퇴근하는 남편을 대신해 매번 직접 장을 보고 인터넷으로 공부하면서 잘 모르는 제사 음식을 준비합니다. 혼자 일하는 것은 괜찮지만 아쉬운 점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은 결혼 후 한 번도 장모님 생신에 직접 전화를 한 적이 없습니다. 시어머니는 베트남 이름이 어렵다고 본인을 “야, 너” 또는 “어이”로 부릅니다.

올해에도 집에서 홀로 전을 부치다 튄 기름에 화상을 입은 A씨는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화상이 아파서 흘린 눈물은 아니었습니다. 문득 ‘고향에 있는 우리 엄마는 잘 지내실까’라는 서글픈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남편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어도 똑같이 행동했을까’라는 생각은 수시로 A씨의 마음을 괴롭힙니다. A씨는 오늘도 퉁퉁 부은 눈으로 남편과 시어머니의 뒷바라지를 합니다.

이는 최근 매일경제가 직접 참여·이수한 법무부의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에서 공유된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이미 미국 등 다른 나라처럼 다문화사회에 접어든 한국에서 국제결혼 역시 최근 급증하고 있지만, 국제결혼 당사자 및 이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의식 수준은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는 실정입니다.

인구 약 5000만명인 한국 내 외국인 수는 최근 기준 약 262만명(5.24%)으로 한국은 이미 다문화사회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 나라 전체 인구 중 외국인 비중이 5% 이상에 달하면 다문화사회에 접어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문화사회 진입한 한국에서 한국인과 외국인 간 국제결혼 건수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20년 1만6177건이었던 국제결혼 건수는 지난해 2만건으로 늘었습니다. 특히 국제결혼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전 세계적으로 한류열풍이 불면서 MZ세대로 분류되는 20·30 젊은층의 국제결혼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2020년 1900건이었던 20대 국제결혼 건수는 지난해 2150건으로, 같은 기간 6100건이었던 30대 국제결혼 건수는 7200건으로 늘었습니다.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에서 교육을 진행한 한 법무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국제결혼 연령대가 지금보다 훨씬 높았고 재혼·삼혼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며 “오히려 최근에는 초혼이 더욱 적극적으로 국제결혼을 수용하는 추세”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 양천구 대한적십자사 서울지부 서부봉사관에서 열린 ‘다같이학교 한가위축제’ 행사에서 다문화가구 구성원들이 한국 추석음식을 만들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처럼 국제결혼은 증가 추세로 접어들었지만 이를 대하는 국민 의식은 아직 과거 수준 그대로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평생을 다른 나라에서 살아온 만큼 생활습관은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 등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에 대한 100% 이해나 인식 없이 섣불리 국제결혼을 진행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열대기후에서 나고 자라온 베트남 사람들은 기온이 올라가는 여름에는 꼭 2~3시간씩 낮잠을 자는 습관이 있습니다. 대신 상대적으로 덜 더운 아침 일찍부터 일상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일부 시어머니들은 이처럼 열대기후에 익숙해 낮잠을 자는 베트남 며느리의 습관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마치 물건을 반품하듯 결혼을 물러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에 전문가가 베트남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이유를 설명해줘도 “어디서 외국여자 편을 들어주느냐”는 날선 말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식습관으로 인한 오해나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바다가 인접하지 않은 내륙에 사는 몽골 사람들은 고기에 익숙해 해산물을 선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 시어머니들이 몽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몽골 여성의 출산 후 한국 문화에 따라 한 달 내내 미역국을 끓여주는 사례도 다수입니다. 몽골에서는 산모에게 양고기로 만든 ‘헌니슬’이라는 국을 끓여주는데, 서로의 문화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 오해가 쌓이면서 결국에는 갈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되면서 법무부는 건전한 국제결혼 문화 조성과 행복한 가정 유지 등을 위해 국제결혼을 준비하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2010년 도입된 프로그램은 약 4시간 교육 과정으로 서울출입국·외국인청 등 전국 20여개 기관에서 매달 1~2회 진행됩니다. ‘주요 국제결혼 국가의 문화와 특징’, ‘국제결혼 가정의 경험담 및 사례’ 등으로 구성된 교육은 결혼이민(F-6) 사증 발급을 위해서도 필수로 이수해야 합니다.

증가하는 국제결혼에 발맞춰 법무부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 참가자도 매년 크게 늘고 있습니다. 시행 첫해인 2010년 4175명에서 팬데믹 기간 2182명으로 줄었던 참가자는 지난해 다시 7138명으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제결혼 이후 잘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로 오해가 쌓여 결혼생활이 파탄으로 이어지는 것을 대비하기 위해 법무부가 마련한 교육이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이라며 “이 외에도 법무부의 사회통합·조기적응 프로그램 등을 적극 활용하면 행복한 국제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매일 쫓기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알면 알수록 더 좋은 국제사회 소식.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 주의 가장 핫한 이슈만 골라 전해드립니다. 단 5분 투자로 그 주의 대화를 주도하는 ‘인싸’가 될 수 있습니다. 읽기만 하세요. 정리는 제가 해드릴게요. 박민기의 월드버스(World+Universe)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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