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기일이면 형제들은 각자 사정에 맞춰 산소에 다녀옵니다. 그런데 올해는 형이 아무 말 없이 혼자 먼저 떠났습니다.무슨 일이 있나 싶어 조용히 뒤따라갔습니다. 산소 앞에서 본 형의 모습에 저는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혼자 길을 나선 형
기일 아침 형에게 몇 시에 가느냐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답이 없어 전화를 했더니 이미 출발했다고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동생들을 기다려 함께 가던 사람이었습니다. 목소리가 평소와 조금 달라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는 차를 몰고 뒤늦게 산소로 향했습니다.

산소 앞에서 본 모습
멀리서 보니 형이 아버지 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습니다. 손에는 작은 공책 한 권이 들려 있었습니다. 형은 그 공책을 펼쳐 한 줄씩 소리 내어 읽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아버지가 생전에 쓰시던 가계부였습니다. 형은 마지막 장에 적힌 우리 형제 이름을 손으로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형이 혼자 오고 싶었던 이유
제가 다가가자 형은 조금 멋쩍게 웃었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다 이 가계부를 찾았는데 차마 동생들 앞에서는 못 읽겠더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매달 우리 셋 몫으로 조금씩 따로 모아 두셨다는 기록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형은 그 돈을 똑같이 나누자고 먼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날 처음으로 둘이서만 아버지 이야기를 오래 나눴습니다.

형제 사이에도 혼자 감당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 마음을 억지로 끌어내기보다 곁에 있어 주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유품이나 재산 정리는 집안마다 사정이 다르니 필요하면 전문가와 상의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다만 그 전에 형제끼리 부모님 이야기를 한 번 천천히 나눠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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