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일어난 뱅크런'… SVB의 파산 전말

차종관 인턴 기자 2023. 3. 1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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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40년동안 성장했지만, 파산까지는 36시간
예금과 자산 간의 불일치 원인으로 지목돼
소셜미디어의 일부 허구 정보 유포도 한 몫

[캘리포니아=AP/뉴시스] 연방예금보험공사가 실리콘밸리 은행의 자산을 압류하면서 2008년 금융 위기가 한창이던 워싱턴 뮤추얼 이후 최대 규모의 은행 부실 사태가 발생했다. 사진은 1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의 창문에 빗방울 사이로 실리콘밸리은행(SVB)의 간판이 보이는 모습. 2023.03.13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차종관 인턴 기자 = 예금과 자산 간의 불일치로 인해 실리콘밸리뱅크(SVB)가 파산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1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SVB가 파산한 배경과 당시 스타트업 대표들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했다.

보험 스타트업 '커버리지 캣(Coverage Cat)'의 공동창업자인 맥스 조는 지난 9일 공항에서 스타트업 창업자 수련회까지 가는 한 시간짜리 버스 노선에 탑승했다. 그는 버스에서 생소한 광경을 목도했다. 동료 승객들이 정신없이 휴대폰을 두들기며 서둘러 돈을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뱅크런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날 대출 기관이 영업을 마감할 때까지 예금자들은 420억 달러(약 55조원)를 인출하려 시도했다. 연방예금보험공사는 10일 은행이 아침에 문을 열기도 전에 SVB를 압류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은행 파산이다.

SVB가 스타트업 업계 최고의 금융회사로 성장하는 데는 40년이 걸렸지만, 파산까지는 36시간이 걸렸다. 이 원인은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은행을 파산으로 몰고 간 이색적인 파생상품이나 위험 감수 같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복잡하지 않고 간단하다. 예금과 자산 간의 불일치가 SVB 파산의 원인이라고 WSJ는 분석했다.

SVB는 신생 기업, 창업자, 벤처 캐피탈 회사를 중심으로 은행 프랜차이즈를 구축했다. 코로나 시대의 예금 붐으로 다른 미국 은행과 마찬가지로 SVB에도 현금이 넘쳐났다. 예금은 2021년에 86%나 증가했다. 은행이 대출할 수 있는 것보다 현금이 더 빠르게 유입된 것이다. 그 때문에 SVB는 이 중 상당 부분을 매우 안전한 국채와 30년 만기 모기지에 투자했다. 예금은 2년 만에 3배로 증가하여 1890억 달러에 달했고, 2021년은 SVB의 역대 최고 수익성을 기록하는 해가 되었다. 이 전략은 수익성이 높았지만, 은행의 예금 기반은 기술 기업과 이들의 거액 계좌에 크게 치우쳐 있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 후, 기술 기업의 주가는 하락했다. 벤처캐피털은 지갑을 닫았고, 스타트업은 현금을 모두 소진했다. 예금은 감소했고, SVB가 저렴할 때 매입한 채권의 가치도 떨어졌다. 2022년 말 기준 SVB의 예금 1570억 달러가 FDIC의 예금 보험 한도인 25만 달러를 초과하는 3만7000개의 계좌에 예치되어 있었다. 그렉 베커 SVB 최고 경영자는 지난 11월 WSJ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최고의 시장에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며 회사의 기술 기업 의존도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일축한 바 있다. 8일, SVB는 보유 주식의 일부를 손해를 보고 매각했으며 현금을 조달하기 위해 주식을 매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때 SVB가 규제 당국에 제출한 서류는 시장에 경종을 울렸다.

슬랙(Slack)과 왓츠앱(WhatsApp)과 같은 비즈니스 메신저에서 심지에 불을 붙였다. 8일 267.83달러로 마감한 SVB의 주가는 개장과 동시에 폭락했다. 벤처캐피털은 자금을 회수하고 포트폴리오 기업들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금융 위기 당시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소셜미디어가 이제는 전 세계에 사실과 허구를 빠르게 전달했다. 겁에 질린 고객들은 휴대폰을 꺼내 뱅킹 앱을 열었다. 그들은 몇 번의 탭과 스와이프만으로 돈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은행에 비즈니스 계좌가 없는 스타트업은 가능한 모든 곳으로 자금을 보냈다. 벤처기업 코어 이노베이션 캐피털의 명예 파트너인 캐슬린 유텍트는 "그들은 로펌의 은행 계좌로 송금했고, 심지어는 CEO의 은행 계좌로 송금했다"고 증언했다.

엔도 랩스의 최고 경영자 바룬 배드와르는 지난 9일(현지시간) 오전 10시 30분 경 한 직원이 슬랙 채널에서 SVB의 주가가 폭락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기 전까지는 은행의 상황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배드와르는 "과잉 반응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몇 시간 만에 SVB에 대한 기술 업계의 지지는 그야말로 녹아내렸다. 오후 2시 30분, 배드와르는 퍼스트리퍼블릭의 은행원에게 이메일을 보냈으나 계좌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라는 답변을 받았다. 오후 2시 47분, 그는 SVB가 당일 송금을 중단하기 13분 전에 인출을 시작했다. 오후 4시 50분, 퍼스트리퍼블릭은 자금이 도착했음을 확인했다.

로스앤젤레스 경영 컨설팅 회사인 리네아 솔루션(Linea Solutions)의 직원들은 10일 아침 은행 계좌를 확인했을 때 월급이 입금되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직원 100명이 근무하는 이 회사는 급여 지급 서비스 제공업체인 리플링을 이용하고 있었는데, 리플링은 SVB와 거래하고 있었다. 리플링은 회사 은행 계좌에서 직원 계좌로 돈을 이체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번 장애로 인해 은행 시스템의 일상적인 백엔드 기능이 중단된 것이다. 회사의 재무 책임자인 브라이언 콜커는 "급여 예금을 보관하는 은행이 48시간 이내에 파산하여 돈을 지급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리플링의 CEO는 트위터를 통해 회사가 JP모건으로 거래 은행을 변경했으며 13일까지 누락된 급여를 충당하기 위해 자체 자금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실리콘 밸리 전역의 창업자들은 이번 주에 직원들에게 어떻게 급여를 지급할지 고민하고 있다.

조나단 벤사문의 스마트 개 목걸이 회사인 Fi는 5년 전 설립 당시부터 SVB와 거래해 왔다. 그 관계는 Fi가 천만 달러의 신용 한도를 받으면서 더욱 깊어졌다. 대가로, Fi는 모든 운영 계좌를 SVB에 유지해야 했다. 벤사문은 뱅크런에 대한 소문을 처음 들었을 때 SVB와 상의했지만, SVB 담당자는 은행에서 큰 자금 유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벤사문 역시 자금을 이동하는 것은 상황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그는 10일 마음을 바꾸고 SVB에서 500만 달러를 송금하려고 했다. 하지만 송금은 실패했다. 차후 그는 은행이 규제 당국에 의해 인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이후로 그는 3월 15일에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50만 달러 이상을 요청하는 전화를 걸고 있다. 하지만 그 투자자들도 Fi와 같은 20여개의 회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제때 돈을 인출하지 못했으며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고객들은 법정관리 증명서를 받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돈을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공감언론 뉴시스 alone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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