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희 칼럼] 왜 국민이 애먼 피해자가 돼야 하나

이준희 2024. 9. 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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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지경까지 왔다.

처음부터 의료대란 아니면 입시대란이었다.

남은 건 의료대란이다.

이제 경험치 못한 끔찍한 의료대란이 일겠지만 이것도 점차 현실적응 단계를 밟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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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피할 수 없게 된 의료대란

국민 보기엔 다 같은 독선 불통

혹 막판 타협에 실낱 희망 걸지만
2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를 찾은 보호자가 통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이 지경까지 왔다. 처음부터 의료대란 아니면 입시대란이었다. 치킨게임에선 최악의 경우 플레이어의 공동 자멸로 끝나면 그만이다. 의정대립에선 애꿎은 국민이 직접피해자가 된다. 의료체계가 붕괴하면 모두가 상시 잠재적 공포에 내몰릴 것이고, 입시대란이 일면 숱한 청소년들이 삶의 첫 단계서부터 혼돈에 좌절할 것이다. 지금은 이마저도 선택의 시간이 지났다. 남은 건 의료대란이다.

이 문제 해결이 난망인 이유는 너무 큰 인식 차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를 지방의료와 중증필수의료 강화, 전문가 중심 병원 육성, 응급의료체계 개선 등의 개혁 시발점으로 보는 반면, 의료계는 별도의 정책행위를 통해 해결할 문제로 본다. 공공차원에서 정부가 의사 수급을 관리해야 한다는 데 대해 의료계는 현실을 아는 자신들이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논의의 기반인 적정 의사규모에서도 OECD 통계를 반대로 해석해 절대부족과 충분함으로 갈린다. 접점이 생길 여지가 없다.

아주 단순화하면 핵심은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과 의사양성 시스템 붕괴다. 의사들이 항상 승리를 자신해온 이유는 의사양성에 장기간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른 직종과는 비교불가다. 여기서 킹핀 역할을 하는 전공의가 빠져나가면 그에 의존해온 대형병원들은 속수무책으로 진료공백에 빠질뿐더러 중간교육도 무너져 여파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오래전부터 의사부족 문제가 제기됐어도 이 대체불가성 벽 앞에 매번 좌초됐다.

어느 쪽 과(過)의 경중을 따지는 것도 이젠 부질없다. 추호의 입장 변화 없는 양측에 더 이상의 타협과 조정 권유도 의미 없어졌다. 그래도 굳이 복기해보자면 이 긴 대치에서 잃은 건 의료계 쪽이 크다. 윤석열 정부는 이미 평판이 추락할 대로 추락한 상태여서 독선과 무능을 또 더한들 애당초 별달리 잃을 것도 없었다. 반면 의료계는 제 파이 크기에만 집착하는 이기적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하게 얻었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수능 상위 1%면 누려야 하는 부와 명예” 따위는 정말 해선 안 될 말이었다. 의료동료인 간호사들을 모욕하는 지독한 엘리트의식에다 힘겹게 응급실을 지키는 동료의사들을 매도하는 행위 등은 제 편에 세워야 할 국민을 도리어 등 돌리게 만드는 불필요한 악수들이었다. 최근 조사에서 의정갈등이 윤 정부 실정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 것도 의료계에 대한 동조 의미가 아니다. 한심한 정책추진 과정에 대한 염증의 표출이다.

냉정하게 현상만으로 볼 때 시간은 갈수록 정부 편으로 흐를 것이다. 증원이 고정 입력값이 되면서 의료계의 반발은 종속변수로 나날이 입지가 좁아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증원 발표 초기부터 축소 내지 유예 협상에 나서지 않고 과거의 승리방정식에만 기댄 걸 후회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가 무조건 직진 성향의 윤 정부라면 달리 생각했어야 했는데도.

이제 경험치 못한 끔찍한 의료대란이 일겠지만 이것도 점차 현실적응 단계를 밟아갈 것이다. 오히려 많은 국민은 지난 정부에서 400명 증원조차 실패했듯 이번에도 정부가 증원을 거둬들일 경우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의료계의 2027학년도 정원 논의 주장은 정권교체기로 보아 또 하지 말자는 얘기이므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의료계가 협의체에 참여해 올해 증원 규모를 최소 충격 수준으로라도 줄여보고 이후의 증원 규모를 논의해보면 어떨까. 정부도 의대교육 여건이 감당 불가임을 인정하고 유연성을 보여야 함은 물론이다. 양측 분위기로 보아 지극히 자신 없는 제안이긴 하지만.

이준희 고문 jun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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