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남 전 행정관 육성 공개 이후 …윤-한 육탄전, 제2라운드
‘인의 없는 전쟁’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다. 야쿠자들끼리의 싸움이 소재다. 요즘 정권 내 갈등을 보면서 이 영화 제목을 떠올릴 때가 많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024년 10월1일 페이스북에 “현재 정부 투자 금융기관 감사인 사람이 지난 전당대회 당시 좌파 유튜버와 직접 통화하면서 저를 어떻게든 공격하라고 사주했다고 한다” “국민들과 당원들께서 어떻게 보실지 부끄럽고 한심하다”고 썼다. 이는 에스지아이(SGI)서울보증 상근감사위원인 김대남 전 대통령실 시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지난 전당대회 시기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에 한동훈 대표 관련 의혹을 제기해달라고 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데 대한 반응이다.
국민의힘 감찰 착수, 김대남 탈당 선언
서울의소리는 당시 김대남 전 행정관의 육성을 공개했는데, 한동훈 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이던 총선 당시 여의도연구원 재정으로 대권주자로서 여론조사를 진행했고 이는 횡령에 해당할 수 있다며 김건희 여사가 만족해할 테니 이러한 의혹을 제기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동훈 대표의 입장이 공개된 이후 국민의힘은 김대남 전 행정관에 대한 자체 감찰에 착수했다. 결과에 따라 당 윤리위원회에서 징계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자 김 전 행정관은 의혹을 강력하게 부인하면서도 탈당을 선언했다. 이러면 윤리위의 조사는 실효성이 없어진다. 당은 형사고발을 검토한다는 분위기다. 쉽게 도망갈 길을 열어주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친한계 인사들은 “배후를 밝혀야 한다”며 격앙된 분위기다. 친윤계 인사들도 김 전 행정관이 부적절한 일을 했다는 것에는 의견을 같이한다. 다만 사건의 전말은 김대남 전 행정관이 지난 총선에서 공천받지 못한 것에 앙심을 품고 ‘자가발전’한 것에 불과한데 한동훈 대표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어서 친한계 인사들의 시각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감쌀 수는 없다. 한동훈 대표 입장에선 밀어붙여도 부담이 덜한 거다.
한동훈 대표가 이 건을 콕 짚은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 대표에겐 반격(?)의 소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가령 윤석열 대통령이 10월2일 한 대표의 독대 요구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면서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들과 만찬을 진행한 것을 보라. 대통령실은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에서 늘상 있는 일이라고 설명했으나, 10월2일은 대통령이 특검 등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한 날이다. 재의결 국면에서의 이탈표 관리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지만, 이날의 만찬은 대통령이 원내 지도부 및 의원들과 직접 소통해 한동훈 대표와 현역 의원들을 분리하는 효과를 거두려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 한 대표는 그렇잖아도 원내 기반이 약하다. 사정권을 쥔 상태로 예산에 막대한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한 대표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주면 현역 의원들은 ‘눈치 모드’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한 대표가 기댈 데는 여론뿐인데, 보수 지지층의 가장 큰 요구는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한 대표가 자꾸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구하고 친한계 인사들이 김건희 여사의 사과를 촉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지지층에 ‘문제를 지금 해결하는 중’이라는 신호라도 줘야 하는 처지인 거다. 그러나 용산은 한 대표의 이런 움직임을 ‘자기 정치’의 맥락으로 의심한다. ‘현재 권력’의 등에 칼을 꽂고 밟고 올라서서 ‘미래 권력’의 입지를 분명히 하겠다는 거 아니냐는 거다. 의심의 끝은 친한계 의원들이 특검에 찬성하는 등 야당에 호응해 ‘탄핵’을 연상케 하는 정권의 위기를 초래하는 장면에 닿아 있다.
협의가 불가능한 ‘불신 정국’
물론 한동훈 대표 또는 친한계 인사들이 조직적으로 야당의 움직임에 호응하려는 징후는 찾아보기 어렵다. 보수 지지층의 정서도 윤석열 대통령을 끌어내리자거나 제2의 탄핵 국면을 열자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불행한 사태로 상황이 이어지기 전에 상황을 바로잡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기반을 다시 확보해야 한다는 정도다. 보수 지지층의 바람이 실현되려면 대통령은 한동훈 대표의 정치적 공간을 열어주고 한 대표는 정권의 성공에 기여하는 형태의 딜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한 대표를 근본적으로 불신하는 지금 상황에서 이런 모델은 작동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양측 간 긴장 관계가 관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의혹이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남 전 행정관은 앞서 서울의소리와의 통화에서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출마를 준비하던 지역구에 김건희 여사의 개입으로 이원모 전 공직기강비서관이 오게 되면서 자신이 피해를 보게 됐다고 하소연한 것이다. 김대남 전 행정관은 이러한 일에 불만이 있지만 공기업 자리라도 얻으려면 이원모 전 비서관과 협력해야 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는데, 그의 바람은 2024년 8월 초 실제 이뤄졌다.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의혹은 뉴스토마토 보도 등 다른 경로를 통해 이미 제기된 상태다. 제이티비시(JTBC)는 10월2일 의혹의 키를 쥔 명태균씨와 김건희 여사 간 텔레그램 메시지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이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였다는 건 사실이라는 얘기다. 이에 앞서 뉴스토마토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을 도운 명태균씨가 대통령 부부와의 관계를 활용해 2022년 6월 김영선 의원이 경남 창원의창 보궐선거에 공천받을 수 있도록 도왔고, 이후 세비의 절반을 가져갔다는 등의 의혹을 보도했다. 이 보도에는 명태균씨가 창원시청 공무원들에게 김건희 여사와 통화한 음성 녹음을 스피커폰으로 들려줬다는 내용도 포함된다. 명태균씨는 경남지역 정치권, 특히 보수정당 관계자들 사이에 매우 잘 알려진 인사였다고 한다. 제대로 수사가 이뤄질 경우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가늠할 수 없다. 더군다나 명태균 씨 측근이자 제보자 모씨는 이번에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겠다는 입장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계된 흐름 역시 심상찮게 흘러간다. 2심 재판부가 전주 손아무개씨의 방조 혐의에 대해 유죄 판단을 내리면서 김건희 여사 역시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게 된 거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JTBC는 김건희 여사가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관계자들과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기록을 과거 검찰이 확인했었다는 등의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수익을 내준다기에 돈을 맡겼을 뿐’이라던 해명을 믿을수 없게 만드는 내용이 확인됐는데도, 검찰은 명품백 수수 의혹에 이어 이 사건 역시 불기소 처분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상황이다.
견제를 거부하는 권력 누아르
하나같이 폭발력이 어마어마할 얘기다. 집권세력의 일원으로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는 가득 쌓여 있는 인화물질 바로 옆에서 육탄전을 벌일 준비를 하는 셈이다. 이것은 정치의 현시라기보다는 권력을 소재로 한 스펙터클이다.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견제를 거부하는 권력 덕분에 정치는 누아르가 됐다. 10월은, 이 ‘인의 없는 전쟁’이 절정에 이르는 고비가 될 전망이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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