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명태가 황태로 변신하면 쓰임새와 즐기는 방법은 무궁무진 해진다. 석 달 열흘 일교차가 심한 겨울 강원도 산골 덕장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스무 번 이상 반복해야 명태는 속 노란 황태로 바뀌는데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비타민 A, B, D, E를 함유해 숙취해소는 물론 혈관 건강, 뇌 건강, 다이어트, 노화예방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황태는 해장국으로 끓였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러시아 베링해에서 온 명태가 사람의 손을 서른 세 번 거친 다음 겨울 국밥의 황태자로 거듭나는 계절이다.
겨울 국밥에서 빠질 수 없는 동해
양양 읍내에서 차로 5분 정도 떨어진 위치에, 남대천을 바라보며 자리잡은 감나무식당은 연일 만원이다. 두 번 방문했다가 먹기를 실패했던 식당이다. 그때마다 줄이 길어서 포기했다. 오가는 일이 있어 소문 듣고 먹을 욕심을 낸다면 허탕치기 일쑤다. 시골 식당이 뭘 그리 대단할까 하다가 뒤통수를 맞는다.
그래도 서울에서 그 어중간한 시간에 식당에 대려면 서둘러야 한다. 황태국밥을 먹기 위해 아침식사를 거르고 8시 정도에 감나무식당으로 출발해야 한다. 그럴 일인가 하지만 먹어 보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세번 도전 끝에 자리를 잡은 감나무식당
옆 손님을 빨리 살펴봐야 한다. 감나무식당의 국밥은 부드럽고 묽은 죽에 가깝고 해장국은 칼칼하며 매운 국에 가깝다. 기호에 따라 선택할 일이 아니다. 각각을 먹어보면 완전 다른 음식이다. 황태국밥이 황태와 콩나물을 밥과 함께 넣고 오랫동안 푹 끓인 보양죽이라면 황태해장국은 큼직한 황태포와 콩나물, 해산물을 넣은 다음 육수를 넉넉하게 넣어 끓인 탕에 가깝다.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황태국밥을 추천한다.
감나무식당의 황태는 인제 용대리 덕장에서 가져온다. 사실 황태를 이야기하기 위해 감나무식당을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명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수온이 1~10℃인 찬 바다에 사는데 몸은 가늘고 길며 머리가 큰 편이고 불리는 이름도 열가지가 넘는다.
사라지는 명태, 줄지어 떼 지어 돌아오라
산 명태는 생태, 얼리면 동태, 해안가에서 그냥 말리면 북어, 하얗게 말리면 백태, 검게 말리면 먹태, 덕장에서 3개월 정도 말리면 황태, 새끼는 노가리, 코에 꿰어 반건조하면 코다리로 불린다. 낚시로 잡으면 조태, 그물로 잡으면 망태, 4월에 잡으면 사태라고 한다. 알은 명란, 창자는 창란이다.
보통 명태 한 마리가 낳는 알 수는 25만∼40만개가량이다. 수명은 약 12~16년 정도이다. 음식과 술 안주로 쓸모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명태 포획량은 1940년대에 연간 22만톤이었는데 1980년대까지 연평균 10만톤을 꾸준히 유지하다가 1990년대부터는 점차 줄어들었다. 지금은 연간 2톤이 안되고 찾아보기 힘들어 해양수산부가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황태국밥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생각나게 해 주는 음식이다. 어릴 적 시골 부엌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북어는 한 겨울을 보내기 위한 비상 반찬거리였다. 어머니는 무와 배추, 김치가 전부였던 재료에 말린 명태를 찢어 넣어 국을 끓이곤 했다.
겨울철 그만한 고단백 음식이 없었다. 이제는 추억이 돼 버린 명태가 "검푸른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는" 날이 다시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모든 것을 내어 주고 이름만 남길 명태를 찾아 겨울 동해로 떠나보자. [글과 사진 양승덕/정리 김흥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