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에서 차를 타고 1시간 반, 잠시 도심의 속도를 내려놓고 싶은 날이면 생각나는 길이 있다. 시원한 낙동강을 따라 걷는 산책길, 그 위를 붉게 수놓은 양귀비와 노란 금계국이 부르는 곳. 경남 밀양의 '초동 연가길'은 이름부터가 로맨틱하다.
강둑길에 발을 딛는 순간, 먼저 시야가 환해진다. 초록 둑길 위로 붉고 노란 꽃잎들이 끝없이 이어지며 바람결에 출렁이고, 붉은 꽃비가 흩날리는 듯한 풍경이 걷는 발걸음을 자꾸만 멈추게 만든다.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우리 강 100선’ 중 한 곳이라는 소개가 무색하지 않다.
포토존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 초동 연가길의 산책 코스

초동 연가길은 총 3.6km의 순환형 무장애 산책로로, 휠체어나 유모차도 걱정 없이 함께할 수 있는 배려 깊은 길이다. 입구에는 “우리 함께 꽃길만 걸어요”라는 문구가 새겨진 안내판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300m 안쪽에 무료 주차장과 깔끔한 화장실이 두 곳이나 마련되어 있어 편의성도 높다.
길 중간중간에는 쉼터와 벤치가 여럿 있어 걷다 지치면 잠시 쉬기 좋고, 특히 ‘나루 쉼터’에서는 흔들 그네에 앉아 강을 바라보며 인증샷을 남길 수 있다. 조금 더 걸으면 만나는 ‘멍타정’은 이름처럼 정자는 없지만 기다란 벤치가 놓여 있어 꽃과 물빛을 배경 삼아 멍하니 앉아 있기 그만이다.
계절 따라 피어나는 색의 퍼레이드

이곳의 매력은 단지 양귀비와 금계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초여름 붉은 양귀비가 5월 중순부터 물들기 시작하고, 6월 초가 되면 금계국이 바통을 이어받아 길을 노랗게 물들인다. 9월엔 코스모스가 피고, 올해는 자주빛 수레국화까지 등장해 붉은 꽃들 사이에 보랏빛 포인트를 더했다. 축제는 없어도, 계절은 스스로 시를 쓰듯 제때에 꽃을 피운다.
SNS를 위한 사진을 원한다면, 해 질 무렵 30분 전후를 추천한다. 강물에 비친 햇살이 꽃잎을 부드럽게 감싸며 마법 같은 색감을 만들어낸다. 노을이 강변을 물들이는 시간, 사람들의 표정도 조금 더 차분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걷는 발걸음엔 이야기보다 여운이 깃든다.
걷다 보면 배도 출출, 연가길 주변 먹거리

산책을 마치고 허기를 느꼈다면 차로 약 5분 거리에 있는 ‘연가길 막국수’를 들러보자. 이곳은 동치미 국물에 말아낸 막국수로 유명한 로컬 맛집이다. 강물처럼 시원한 맛에 한 번, 투박하지만 정겨운 그릇에 두 번 감동하게 된다. 등줄기에서 흘렀던 땀이 국물 한 숟가락에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조금 더 멀리 나아가고 싶다면,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밀양 아리랑우주천문대도 추천할 만하다. 낮에는 꽃길을, 밤에는 별길을 걸으며 하루를 정리하는 일정은 어쩌면 초동 연가길을 가장 로맨틱하게 마무리하는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여행을 위한 실용 정보도 꼼꼼히

- 위치: 경남 밀양시 초동면 방원리 164-3 (‘연가길 주차장’으로 내비게이션 검색)
- 교통편: 밀양역에서 차량 20분 / 시내버스 1-4번 ‘초동면사무소’ 하차 후 도보 10분
- 주차: 무료
- 운영 시간: 상시 개방
- 편의시설: 무장애 산책로, 화장실 2곳, 쉼터 다수, 벤치, 포토존
꽃이 아름답다고 해서 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초동 연가길의 꽃들은 우리 곁으로 먼저 다가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천천히 와도 돼요, 계절은 늘 여기 있으니까요.”
이번 주말, 계획이 없다면 그저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바람에 실려 오는 꽃향기와 강물 소리, 그 사이를 걷는 당신에게 연가처럼 기억될 하루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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