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애니 발탁되었던 '알렉스 도연' 알고보니 '금수저'

피아니스트 아빠, 공연기획자 엄마를 둔 예술 ‘금수저’
<소프라노, 알렉스 도연 브랜튼>

Q 알렉스 도연, 이름이 특이하신데요?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학 Jacobs School of Music에서 성악 학사를 마치고 현재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소프라노 알렉스 도연 브랜튼입니다.
아빠가 미국인 재즈 피아니스트, 론 브랜튼이고 엄마는 한국인 공연기획자, 김향란입니다. 미국인과 한국인 이중 국적이고, 나고 자란 곳이 한국이라 이름도 미국, 한국 이름을 함께 쓰고 있습니다.

Q 재즈 피아니스트 아빠, 공연기획자 엄마라면 예술계 ‘금수저’시네요?

저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아버지와 공연기획자인 어머니 덕분에 태중에서부터 음악을 듣고 자랐어요. 어머니는 처음에 저를 피아니스트로 키울 생각을 하고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긴 시간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는 피아노가 제 적성에 맞지 않다고 판단하고 노래를 시키기로 마음을 바꾸셨다고 해요. 저는 어렸을 때 자유롭게 뛰어다니며 놀아서 눌러앉아 연습을 하거나 뭔가를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정말 싫어했어요. 피아노도 그냥 귀로 바로 멜로디를 외워서 치고는 악보 보는 법을 배우려고 하지도 않고 연습도 15분을 채 못 넘겼거든요. 어머니가 노래로 방향을 튼 것은 자신이 성악을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에 대한 보상 심리도 작용한 것 같아요.

Q. 성악은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뮤지컬 ‘애니’ 캐스팅, EBS ‘보니하니’ 출연으로 ‘노래’와 썸 타기 시작해 성악가,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곡을 듣고 ‘성악’ 사랑에 푹 빠졌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뮤지컬 ‘애니’를 했는데, 그때 세종문화회관이 EBS와 공동 프로모션을 하면서 다문화 어린이 중 한 명을 캐스팅하기로 하고 오디션을 했었어요. 그때 제가 뽑힌 거예요. 그때 저는 춤과 노래를 배워본 적 없이 무방비로 오디션에 나갔는데, 그때 캐스팅된 다른 어린이 뮤지컬 배우들은 학원에서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았던 터라 정말 실력이 빼어났어요. 따라갈 수가 없어서 처음에는 못하겠다고 울었죠. 하지만 일주일 만에 그 아이들이 추는 춤을 따라잡았어요. 그냥 앙상블이긴 했지만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22회나 공연을 했답니다. 그게 EBS ‘보니하니’에 시리즈로 6회에 걸쳐 방송이 되었어요. 그때 음악감독을 했던 선생님이 저에게 앞으로 크게 될 수 있으니 노래를 하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그 길로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어요. 이후에도 ‘슈퍼스타K’에 도전, 예선 3차까지 진출했지만,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관계로 아쉽게 출전을 포기하기도 했어요.

성악을 접한 이후로 성악 (Bel canto) 이라는 예술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점점 커졌고 성악이 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쩌다 성악을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왔는데, 예술, 특히 음악은 어떤 특정 계기보다 어느 순간 꽃이 피듯이 자연스럽게 갈망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결정적으로 성악을 ‘사랑’ 하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 우연히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La mamma Morta 아리아를 듣고 난 후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시 그녀가 누구인지, 그 곡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정확히 어느 언어인지도 몰랐지만, Callas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저는 아마 그때부터 그 열정, 사랑, 그리고 음악을 하는 의미를 찾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성장한 것 같습니다.

Q. 현재 커리어에 오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제가 원해서 음악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는 주어진 기회들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노래를 했어요. 중학교 2학년까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중 3 과정부터 미국에서 공부를 했어요. 제가 다니던 네브라스카 오마하 소재 음악원에서 하는 성악 콩쿨, 학교 콩쿨, 지역 성악 콩쿨 등 다양한 콩쿨에 참가해 거의 매해 제가 1등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진학한 후 어느 순간 제 노래가 막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지도 교수로부터 “네 발성에 너무 힘이 들어있어”, “넌 목소리가 작아서 큰 오페라 무대에 못 서.” 같은 지적을 받으면서 화가 났습니다. 그때 전 “아, 나는 나를 진정으로 믿어주고 이끌어주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전 혼자 힘으로 성장하기로 결심을 하고 남은 3년 동안 혼자 발버둥쳤습니다. 특히 코로나가 겹쳐 집에서 혼자 그 상황을 이겨 내려 했지만,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계속 마리아 칼라스를 생각하며, 그녀의 노래를 듣고, 기도하고, 자기 암시를 반복했습니다. 그녀의 영상들을 찾아보고, 그녀의 마스터 클래스를 모두 찾아서 공부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마리아 칼라스는 가끔씩 제 꿈속에 나타나 제게 레슨을 해주고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혼자 발버둥을 치며 졸업을 했고 석사 과정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마침내 제 마음에 딱 드는 지도 교수를 만났습니다. 마리아 칼라스와 쌍벽을 이루었던 ‘디바 중의 디바’ 버지니아 제아니의 수제자인 앨리스 호퍼(Alice Hopper) 교수를 지도 교수로 모시게 된 것입니다.  Hopper 교수는 제가 겪고 있는 기술적인 문제점들을 바로 알아보고 저를 진심으로 지도해주었습니다. 그 후 저는 급성장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앨리스 호퍼 교수는 정통 벨칸토 테크닉만 지도하는 분이라 제가 원하고 배우고 싶은 바로 그 발성을 배울 수 있었고, 그래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앨리스 호퍼 교수는 무려 12년 동안 버지니아 제아니(Virginia Zeani) 문하에서 공부했으며, 제아니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런 선생님에게 배운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지금 굉장히 행복합니다.

오르락 내리락 하던 내 커리어
지금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더 당당해지고 확신이 생겼습니다!

저의 커리어는 멋모르던 어린 시절 뮤지컬 ‘애니’로 시작해 학창시절 인정받으며 자신이 넘쳤지만, 대학에서 좌절을 맛보고, 다시 대학원에서 꽃 피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제 커리어도 얼마나 더 오르락 내리락 하게 될지 모르지만, 이제 저는 제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어떤 시선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자신 있고 당당해졌습니다. 성장하는 제 자신을 더 사랑하려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성장 발전하고 있습니다.

Q. ‘커리어브랜딩’을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본인의 커리어에 있어, ‘커리어브랜딩’의 어려움 혹은 성과가 있었다면?

커리어 브랜딩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값진 것을 대중에게 더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제 커리어를 갈고 닦고 있는 과정이지만, 커리어 브랜딩은 한순간에 생길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가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소중하게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머니가 제 매니저의 역할을 하며 저의 모든 공연과 이력 등을 기록하고 계십니다.
고등학교 시절, 한국계 여고생으로 미국의 유명 합창단에 소프라노로 선발되면서 한국에도 보도가 된 적이 있는데 매우 영광스럽고 고마운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Q. 성공적인 커리어 브랜딩에 있어서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악가로서는 아무래도 노래 실력이 최우선이겠지만 이를 세상에 알릴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할 것 같아요.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유명 콩쿨에서 우승을 하거나 오디션을 통해 유명 오페라단에서 배역을 따내며 인지도를 높여나가야겠지요. 이 경우 미디어를 통해 보도가 되면 대중들에게 제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제 명성을 쌓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뿐 아니라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홍보가 뒷받침된다면 좀 더 빠르게 저의 커리어 브랜드를 구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Q. 향후 성악가로서의 목표는? 이를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하고 있나요?

소프라노도 종류가 다양한데 저는 콜로라투라와  리릭 소프라노의 중간에 가까운 소프라노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목소리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앞으로 제 목소리가 어느 쪽으로 흘러갈지 아직은 정확히 모릅니다. 무대 위에서 진심을 다해 노래하여 자신을 뛰어넘는 의미 있는 한순간을 관객들에게 전할 수 있는 소프라노, 그리고 저처럼 예술을 갈망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지도하고 이끌어 주는 소프라노가 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몸과 마음의 성장이 함께 이루어질 수 있도록
철학, 영혼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제 자신을 믿고 저의 마음을 믿습니다.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저도 그에 걸맞게 성장해야겠지요. 성악은 몸과 마음이 같이 성장해야 하는 것이며, 기교만 성장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열심히 연습하고, 동시에 지적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읽고 그리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도교수가 너무 마음에 들기 때문에 제 계획을 일부 변경했습니다. 앨리스 호퍼 교수와 몇 년 더 공부하기 위해서 석사를 마친 후 인디애나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을 계획입니다. 기악과는 달리 성악은 몇 시간씩 계속 연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듣는 것에 시간을 정말 많이 할애하고 있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듣죠. 동시대 성악가들보다는 50, 60년대 성악가들을 찾아서 듣는 편입니다. 그러면서 어떤 주제나 이슈를 두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어요. 영혼의 문제, 철학적인 주제까지를 포함해서요.

Q. ‘소프라노 알렉스 도연’을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마음을 다해 노래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성악가’입니다.

※ 해당 기사는 개인의 브랜딩을 돕는 플랫폼, ’꺼리어’에 등록된 회원의 인터뷰입니다.

'꺼리어'(www.kkurry.com)는 세상의 모든 꺼리어들(자신의 커리어를 성장시키고 싶은 사람들)과 취재원을 찾는 미디어가 직접 만나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브랜딩하고 명성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커리어 브랜딩 플랫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