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레트로를 찾아서, 현대 벨로스터
과거에 묻혀버린 자동차를 발굴해보는 그 두 번째 시간, 이번에는 현대 벨로스터다.
글 | 유일한
문 세 개를 가진 독특한 해치백의 등장
현대차의 역사에서 스포츠카를 이야기하려면 일단 스쿠프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뒤에 티뷰론이 등장했고 이후 투스카니가 등장하면서 젊은이들을 유혹했다. 사람들 중 일부가 "앞바퀴를 굴리는 자동차가 스포츠카일 수 없다"라면서 폄하하기도 했지만, 그들도 돈이 생기면 바로 투스카니를 구매한 뒤 부품을 하나하나 바꿔가는 재미를 즐기며 살았다. 그리고 어느 새 투스카니도 사라졌지만, 현대차는 계속 앞바퀴를 굴리는 재미있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처음에 등장한 것이 바로 벨로스터 스포티 쿠페 콘셉트(Veloster Sporty Coupe Concept)였다. 단, 이때까지는 평범한(?) 2도어 해치백 모델이었다(3도어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 구분을 위하여 그렇게 적어두겠다). 도어가 언제 추가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며, 2세대 모델이 등장하고 단종된 뒤 시간이 조금 지난 현재까지도 이 의문에 대한 해소는 되지 않았다. 2도어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이런 비대칭 형태의 도어를 적용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현대차의 핵심 인재를 자르겠다는 의지
벨로스터 출시 당시의 기사들을 잘 보면 "현대차가 젊은이들을 위한 독특한 형태의 프리미엄 소형 쿠페를 만들었다"면서 칭찬하는 기사들이 꽤 있다. 그런데 현대차 내에서는 그렇게 환영을 받는 자동차는 아니었던 것 같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당시 현대차를 이끌던 정몽구 회장이 벨로스터의 디자인을 문제삼아 그 동안 현대차 엔진 개발에 큰 공헌을 한 이현순 박사에게 사표를 쓰게 한 일이다.
정몽구 회장은 벨로스터를 국내에 출시하기 직전에 디자인을 보고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면서 '벨로스터를 디자인한 사람들은 모두 사표를 내고 회사에서 나가라'라고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 지시에 이현순 박사가 반발했지만, 정몽구의 의지가 너무 강했는지 결국 책임을 지고 현대차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스쿠프에 탑재한 알파 엔진부터 해서 현대차 엔진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기술 독립을 실현했던 이현순 박사의 마지막은 허망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현순 박사는 그 뒤 두산그룹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금은 고문으로 남아 있다. 엔진 박사를 내친 현대차는 그 뒤 세타 2 엔진이(이현순 박사는 세타 1 엔진 까지만 담당했다) 문제를 일으키면서 소송에 휘말렸고 결국 정의선 회장이 엔진 리콜 관련 충당금을 따로 만들어야 하는 부담까지 안게 됐다. '자동차 한 대로 인한 나비효과'라고 말하기엔 조금 클 수도 있지만, 아무튼 현대차의 흑역사(?)라고 기록은 해 두어야 할 것 같다.
조금 늦게 등장한 벨로스터 터보
사실 벨로스터 초창기 모델은 주행 능력이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아반떼에 탑재했던 1.6ℓ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그대로 탑재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야말로 '패션카'라고 하는 것이 맞았을 것인데, 그 분위기는 이후 1.6ℓ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벨로스터 터보'에 의해 반전되기 시작했다. 작은 차체를 경쾌하게 이끌기에는 최고출력 204마력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외형에 어울리는 엔진을 탑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늘어난 출력을 타이어를 비롯한 서스펜션이 쉽게 받쳐주지 못하는 등의 소소한 문제는 있었지만, 그것은 서킷 주행을 할 때의 이야기였고 거기에 맞추어 서스펜션이나 타이어를 바꾸고 추가 냉각장치를 설치하는 튜닝도 생겨났다. 그리고 벨로스터는 북미 시장에서 의외로 인기를 끌었다. 가격에 비해 성능이 꽤 괜찮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 닥터 드레 오디오를 설치하면서 음악 재생 부문에서도 꽤 좋은 느낌을 냈다. 꽤 의욕적인 행보인 셈이다.
벨로스터 N이라면 인정이지!
2018년, 2세대 모델이 등장했다. 이전보다 좀 더 정제된 형태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커다란 그릴을 갖고 있어 달릴 수 있는 모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본 모델부터 1.4ℓ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을 탑재하고 있어 성능에 대한 아쉬움을 크게 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2.0ℓ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과 수동변속기를 조합한 고성능 모델 벨로스터 N이었다. 국내에는 2018년 6월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벨로스터 N에 놀란 것은 가격이었다. 기본형 모델을 3천만원 미만으로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르노삼성(현 르노코리아)의 사장이었던 도미닉 시뇨라가 이 차를 보고 놀라움을 표현했었다. 비슷한 성능의 르노 메간 RS는 절대로 이 가격을 실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체급 아래의 클리오 RS를 수입한다고 해도 마찬가지.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르노코리아는 라인업에 고성능 모델이 없다.
필자도 사실 이 차의 성능에 굉장히 놀랬다. 당시 미니 JCW를 가볍게 따라잡는 것도 모자라 역전하는 그 종합적인 주행능력은 아직도 인상에 깊게 남아있다. 비록 지금은 아반떼 N에 그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되었지만, 그럼에도 고성능 스포츠카를 원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벨로스터 N을 아끼고 있다. 지금도 주말마다 서킷에 가면 꽤 많은 벨로스터 N을 볼 수 있다. 앞으로도 몇 년 동안은 최강의 가성비 스포츠카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저렴하게 손에 넣을 수 있는 펀카
현재 벨로스터 1세대 모델의 중고 시세는 345~678만 원이다. 상태가 좋은 벨로스터 터보 모델을 손에 넣는다고 하면 600만원 초반 선에서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리프트 이후 모델이라면 조금 더 주어야 한다. 만약 주행능력이 아쉽다면, 돈을 조금 더 들여 튜닝을 해도 된다. 서스펜션과 타이어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비약적으로 능력이 올라갈 것이다. 무엇보다 고장이 난다고 해도 수입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 국산차의 최대 장점이다.
만약 벨로스터 N을 손에 넣고 싶다면, 1900만 원 정도는 준비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른 고성능 모델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이고, 그만큼 다루기도 쉽다. 되도록 서킷 주행을 하지 않은 모델로 권하고 싶지만, 이런 장르의 자동차를 구매할 정도라면 서킷 주행 몇 번 정도는 했을 것이라고 각오해야 한다. 진짜로 서킷에 진지하게 입문할 예정이라면 그 정도는 신경을 안 쓰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