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0엔 추억, 1020엔 뉴트로’…서울 도심 속 추억 여행지

돈의문박물관마을·서울풍물시장·청량오락실…근현대 서울 모습 간직, 역사·문화 체험
©르데스크

서울 도심 속에서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1950년대 교실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돈의문박물관마을, 80년대 게임기가 여전히 가동되는 청량리 오락실, 근현대사를 간직한 물건들이 거래되는 서울풍물시장 등이 그 주인공이다. 50~60대에겐 추억을 10~20대에겐 뉴트로 감성을 만끽할 수 있는 이색 공간들이다.

이곳에서는 아날로그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의 만화방에서 흘러나오는 90년대 만화 주제가, 청량리 오락실의 브라운관 화면에서 반짝이는 게임 픽셀들, 풍물시장 골목을 채우는 옛 물건들이 MZ세대부터 실버세대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새롭게 마주하게 한다.

서울 100년의 역사가 한 곳에, 돈의문 박물관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시민들의 새로운 문화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5호선 서대문역 4번 출구에서 도보 6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서울의 10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서쪽 관문이었던 돈의문(敦義門)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1396년 처음 세워진 돈의문은 1422년 정동 사거리로 이전되며 ‘새문’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주변 지역은 ‘새문안 동네’로 불렸다. 그러나 1915년 일제강점기 도시계획으로 철거돼 현재는 서울 사대문 중 유일하게 실체가 없는 문이 됐다.

▲돈의문박물관 마을에선 1960~1980년대 아날로그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사진은 옛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교실(왼쪽)과 돈의문역사관에서 전시를 관람하고 있는 방문객들. ©르데스크

2022년에 들어서 한양도성 서쪽 성문 안 첫 동네라는 역사적 가치와 함께 근현대 서울의 삶과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비록 돈의문은 사라졌지만, 이곳은 돈의문 전시관을 통한 역사 교육, 한옥시설에서의 전통문화체험, 1960-1980년대의 추억이 살아 숨 쉬는 아날로그 감성공간 등 100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살아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박물관 마을 내에서는 14개의 상설전시장이 운영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돈의문학교 3-1반은 그 시절 교실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교실 중앙의 난로 위에 쌓인 도시락들, 신발장의 검정·하양 고무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걸상들, 그리고 교실 뒤편의 옛 표어 포스터까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이다. 오형자 씨(66세·여)는 “책걸상에 앉으니 그때 그 시절 나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며 “스스로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추억을 회상했다.

삼거리이용원에서는 1960~70년대 이발소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이용 의자, 영업 신고증, 이발기 등 당시 물품이 그대로 전시됐다. 백발의 어르신들이 조용히 바둑을 두며 옛 추억에 잠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양옥집의 돈의문역사관은 1960년대 지어진 건물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돈의문역사관이라는 이름을 달기 전 이곳은 90년대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한정식집으로 손님들을 맞이했다. 건물 기초 공사 중 발견된 경희궁 궁장이 현장이 보존됐고 돈의문 일대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사진들이 함께 늘어서 있다.

70대 방문객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나왔던 옛날 생각이 전시관들을 방문하면서 떠오른다”며 “미래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보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곳은 젊은 청춘과 노년 세대가 자연스럽게 아우를 수 있는 공간으로 안성맞춤이다”고 말했다.

“별게 다 있네” 추억과 역사가 공존, 서울풍물시장

▲ 서울풍물시장은 도심 속 문화장터로서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사진은 초록동에서 판매중인 암모나이트 화석과 광물들(왼쪽)과 근현대사가 담긴 추억의 물건들 모습 . ©르데스크

신설동역 6번 출구에서 250m 거리에 위치한 서울풍물시장은 서울의 근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청계천과 함께 성장해온 시장은 ‘도깨비시장’이라는 별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울풍물시장의 역사는 깊다. 조선시대 청계천이 생활하천으로 지정된 이후 이 일대는 도성의 중요한 생활권으로 자리잡았다. 현재의 시장 형태는 1950년대 6.25 전쟁 이후 고물상들이 모여들면서 시작됐다. 1973년 청계천 복개공사 완료 후에는 삼일아파트 주변으로 중고시장이 형성됐고 한때는 130여 개의 골동품상이 밀집할 정도로 번성했다.

서울시와의 1000회 이상의 명칭 협의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서울풍물시장’은 도심 속 문화장터로서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화된 동대문 상권 속에서도 중고품 거래라는 특색을 잃지 않고 서울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골동품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풍물시장의 1층 입구에 들어서면 각 구역마다 색깔로 구분된 안내도가 눈에 띈다. 노랑동에는 고물상에서 수집한 각종 생활용품들이, 주황동에는 가지런히 개여있는 미군 전투복과 갈색 전투화들이 늘어서 있다. 초록동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진열장 안에 가지런히 놓인 조개 화석, 운석, 광물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따라가면 추억의 물건들이 더 많아진다. 먼지 쌓인 카세트테이프와 LP판이 가득 찬 상자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생활잡화가 모인 남색동과 의류를 취급하는 파랑동을 지나 보라동에 이르면 ‘청춘1번가’라는 이름의 테마존이 나온다. 60-70년대 교실을 재현한 공간에서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체험존도 마련됐다.

한 악기사에서는 아버지인 강희연 씨(85세·남)로부터 이어받은 아들 강 씨가 2대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 씨는 “바이올린 수리 명장이신 아버지의 음악 사랑으로 시작된 가게다”며 “대를 이어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버려질 물건들이 모여 새 단장을 하고 각자의 주인을 만나는 곳이다”밝혔다.

“100원에 한 판” 가격도 그 시절, 청량오락실

▲ 청량오락실은 옛 오락실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사진은 나란히 앉아 테트리스를 즐기고 있는 커플(왼쪽)과 총을 활용해 즐길 수 있는 추억의 게임기. ©르데스크

청량오락실은 평일 저녁 7시 식사를 마치고 게임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청량리역 6번 출구에서 도보 5분 거리 아파트 상가 1층에 위치한 ‘청량오락실’이 레트로 게이머들의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옛 오락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이곳은 한 게임에 1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이다.

커다란 게임 음악소리가 오락실을 가득채운다. 80~90년대 추억의 게임기 30여 종이 즐비한 이곳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CRT 브라운관 모니터들이다. LED 화면에 익숙해진 요즘, 이 투박한 화면이 오히려 반가운 이들이 많다.

오락실에는 80~90년대 사이에 인기를 끌었던 30여종의 게임기가 설치됐다. 직접 총을 들고 게임 내 좀비를 죽이는 게임과 음악 리듬에 맞춰 발을 움직여야 하는 펌프 게임도 마련됐다.

청량오락실은 밝고 깨끗한 공간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거 오락실의 향수를 담은 이 곳은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아이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 덕분에 아이 손을 잡고 온 가족들과 데이트를 나온 커플의 모습도 심심찮게 보인다.

유튜브를 보고 찾아왔다는 이재영 씨(46세·남)는 “평소 레트로 게임을 좋아해서 컴퓨터로 다운 받아 즐겼는데 오랜만에 추억 속 오락기로 게임을 할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며 “브라운관 모니터가 어색하지만 옛날 생각이 나서 들뜬다”고 소감을 밝혔다. 20대 방문객 김모씨는 “PC방 세대라 오락실 게임들은 많이 접해보지 못했다”며 “식사하러 왔다가 우연히 들렸는데 옛날 게임을 즐길 수 있는게 흥미롭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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