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의 좌절에서 환호까지, 2022 카타르 월드컵의 순간들[경기장의 안과 밖]

2022 카타르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아르헨티나가 36년 만에 우승 염원을 해소한 이번 대회는 결국 메시의 좌절에서 시작해 메시의 환호로 끝난 대회라고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29일간의 기록은 그보다 훨씬 다채롭다. 언제나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가 탄생했고, 새로운 역사와 진기록이 남았다. 불멸의 순간들을 정리했다.
■ 아르헨티나, 36년 만의 월드컵 우승
12월19일(한국 시각) 카타르 도하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의 결승전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경기였다. 90분으로는 승부를 가리지 못해(2-2) 연장전으로 넘어간 시간, 경기는 양보 없는 혈투로 치달았다. ‘라스트 댄스’를 이어간 베테랑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가 3-2 리드를 잡는 골을 추가하자 차기 ‘축구 황제’를 노리는 영건 킬리앙 음바페(프랑스)가 추격골에 성공하며 이날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완성했다. 눈을 뗄 수 없는 공방전에 연장 30분도 금세 흘러갔다.
마침내 다가온 승부차기. 메시와 음바페의 슈팅이 각각 골망을 갈랐다. 이어진 2, 3번 키커들의 슈팅에서 양 팀의 희비가 엇갈렸다. 아르헨티나의 키커들이 모두 슈팅에 성공한 반면 프랑스 코망과 추아메니의 슛은 모두 아르헨티나 골키퍼 마르티네스에게 막혔다. 프랑스 4번 키커 랑달 콜로 무아니는 슈팅에 성공했지만 아르헨티나 4번 키커 곤살로 몬티엘 역시 오차 없이 골라인을 통과하는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대접전을 끝냈다. 몬티엘이 슈팅하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던 메시의 얼굴은 경기장이 아르헨티나 팬들의 함성으로 진동하는 순간 누구보다 환하게 빛났다.
아르헨티나의 우승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이변의 제물이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 1-2로 역전패했다. 메시가 분전했지만 메시 외에 인상적인 선수도 보이지 않았고, 선제골을 지키지 못한 경기력도 불안 요소였다. 그러나 사우디전 패배는 일종의 예방주사가 됐다. 아르헨티나는 경기를 치르면서 자가발전하는 팀이 됐다. 메시를 강력한 구심점으로 삼되, 메시에게 집중되는 상대의 견제를 분산하는 움직임 혹은 역이용하는 측면의 침투 플레이로 승리를 챙겼다. 감독 리오넬 스칼로니의 대응은 유연하고 과감했다. 스칼로니 감독은 사우디전에서 실패한 4-2-3-1 전형 대신 엔소 페르난데스, 알렉시스 맥앨리스터, 로드리고 데파울을 배치해 메시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중원을 다시 꾸렸다. 조별리그 이후에는 메시의 공격 파트너를 신예 훌리안 알바레스로 교체하며 활동량과 결정력을 보강했다. 이 과정에서 벤치로 밀렸다가 결승전에서 선발 출전한 앙헬 디마리아가 어떻게 폭발했는지는 결과가 증명한다. 경기 중에 백스리(3)와 백포(4)를 오가는 수비 전술 변형에도 아르헨티나는 능동적으로 대처했다.
결정적인 위기에서는 골키퍼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가 최후의 보루로 활약했다.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빛난 마르티네스의 선방 활약은 8강 네덜란드전과 오버랩되었다. 8강전은 아르헨티나의 결승행 여정에 가장 큰 고비였다. 당시에도 아르헨티나가 2골을 리드하고 80분을 지배했지만 막판 교체 출전한 네덜란드 장신 공격수 부트 베르호스트에게 연달아 골을 내주며 승부차기까지 접전을 벌였다. 마르티네스는 네덜란드 1, 2번 키커 버질 반다이크와 스티븐 베르하위스의 슈팅을 막고 아르헨티나의 도약을 견인했다.
아르헨티나의 동력은 디에고 마라도나의 영혼을 지렛대 삼은 것이기도 했다. 36년 전 아르헨티나에 월드컵 우승을 안긴 마라도나는 2020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축구가 종교인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마라도나의 지위는 곧 구세주였다(실제로 ‘마라도나교’가 있다). 대회 내내 경기장 관중석 곳곳에서 마라도나 얼굴이 그려진 걸개가 눈에 띄었고, 메시도 팀의 영광을 언급할 때 마라도나를 빼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심각한 인플레이션으로 경제난에 빠진 자국민에게 축구는 현실을 잊게 만드는 치유제였다. 월드컵 우승은 축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였다.
■ 펠레와 마라도나 잇는 ‘불멸의 전설’
찬란하게 빛났다가 꺾이고, 다시 빛났다가 좌절하고, 다시 빛났다가 넘어지고, 다시 시도하고, 다시 또다시…. 결승전 120분은 메시의 월드컵 도전사를 압축한 요약본이었다.
메시는 일찌감치 프로 선수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다 누렸다. 바르셀로나와 파리 생제르맹에서 각각 리그 우승을 경험하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정상에 섰다. 이런 활약상을 바탕으로 그해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도 일곱 번이나 수상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대표 선수로는 올림픽(2008 베이징) 금메달 이후 꽤 오랫동안 도전자의 입장에만 머물렀다. 기량만은 디에고 마라도나나 펠레(브라질) 같은 전설들에 견줄 수 있는 선수로 인정받았지만, 월드컵 우승컵이 없다는 점에서 ‘2% 부족한’ 상태였다.
이번 대회에서 메시는 모든 갈증을 해소했다. 월드컵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순간 1970년의 펠레와 1986년의 마라도나를 잇는 ‘불멸의 전설’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중에서도 발롱도르 최다 수상에 올림픽, 챔피언스리그, 대륙컵(코파아메리카), 월드컵에서 모두 정상에 선 이는 메시가 유일하다. 펠레와 마라도나가 그렇듯 메시의 이름도 앞으로 축구사를 다루는 모든 영역에서 시대와 세대를 넘어 회자될 것이다.
단순히 우승팀의 일원으로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에 그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가 우승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이가 메시라는 데 이견이 없다. 조별리그부터 결승전까지 7경기를 모두 풀타임으로 소화했고 7골 3도움을 기록했다. 대회 최우수선수에게 주어진 ‘골든볼’도 그의 몫이었다. 팀의 총득점(15골)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비율이 66%에 이른다. 슛(32회), 키패스(21회) 등 각종 공격 지표에서 상단에 있다. 메시의 나이가 36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흥미로운 뉴스도 있었다. 영국 스포츠 매체가 ‘조별리그에서 가장 많이 걸어 다닌 선수’로 메시를 지목한 것인데, 이에 따르면 메시는 경기당 평균 4㎞를 걸어 다녔다. 역설적으로 힘을 비축할 때와 폭발해야 할 때를 아는 메시의 노련함이 돋보였다. 30대 중반의 메시는 90분을 활동량으로만 채울 수 없다. 대신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는 집중력을 보였다. 메시가 상대 선수들을 몰고 다니며 유려하게 압박을 벗어날 때마다 새로운 장이 열렸다. 메시는 아르헨티나 공격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월드컵 우승에 대한 메시의 집념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서사가 됐다.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도 메시를 활용한 월드컵 캠페인으로 축구팬들에게 큰 울림을 안겼다. 대회 전 2006년의 메시부터 2010년의 메시, 2014년의 메시, 2018년의 메시, 2022년의 메시까지 한 화면에 등장시켜 패스를 주고받은 뒤 ‘불가능은 없다(Impossible is nothing)’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결승전 직후에는 한 장의 포스터에 5명의 메시를 다시 담았는데, 같은 메시지 아래 2022년의 메시가 월드컵 트로피를 거머쥔 2006년의 메시를 업고 있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사실 ‘불가능은 없다’라는 슬로건의 기원은 메시다. 10대 시절부터 메시를 후원한 아디다스의 광고는 “내 이름은 리오넬 메시. 내 얘기 좀 들어볼래?”라는 고백으로 시작한다. 성장호르몬에 문제가 있어서 키가 작지만, 대신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공을 절대 공중으로 띄우지 않는 자신만의 기술을 익혔다는 내용이다. 작은 꼬마의 ‘셀프 격려’ 구호 정도로 여겼던 슬로건은 20여 년 만에 실재하는 ‘인간 승리’로 완성됐다.

■ 초라해진 호날두와 비교되는 리더의 품격
메시가 빛날수록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이 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다. 한때 메시와 타이틀 경쟁을 벌이며 세계 축구계를 양분했던 호날두는 월드컵에서 사실상 빈손으로 퇴장했다. 조별리그에서 한 골을 기록했지만 페널티킥으로 넣은 것이어서 감흥이 떨어진다.
물론 한 골의 가치는 소중하다. 그러나 슈퍼스타에게 기대하는 득점 장면에 미치지는 못했다. 기록이 저조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장 안팎으로 끊임없이 잡음을 일으키는 존재가 됐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A매치 최다골 기록을 의식한 탓인지 골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동료의 득점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골 욕심에 득점 기회를 수차례 날리기도 했다. 특히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조별리그 3차전에서는 결정적 기회를 네 번이나 날렸다. 공격수가 골 욕심을 내는 것은 본능에 가깝다. 나무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팀보다 개인에게 더 집중한다는 인상을 끊임없이 남겼다. 감독이 교체 사인을 보내거나 선발로 내보내지 않을 때면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리더이자 베테랑이 보일 만한 태도는 아니었다. 호날두의 나이는 37세. 사실상 이번 대회가 마지막 월드컵이었다. 대회 중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부터 계약해지 통보를 받아 무적 신세가 된 호날두는 새로운 행선지를 찾고 있다. 억만금을 흔드는 구단은 있어도 그의 가치를 존중해주는 구단은 더 이상 없다. 호날두의 처지가 초라하기까지 하다.
한편으로 메시처럼 ‘리더의 품격’을 보여준 선수들도 빼놓을 수 없다. 크로아티아의 주장 루카 모드리치는 팀을 3위로 이끌었다.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 사상 첫 결승행(준우승) 주역으로 활약한 그는 이번에도 팀을 정상 문턱까지 끌어올렸다. 37세로 불혹에 가까운 나이지만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드리치의 마법은 건재했다. 경기력뿐만 아니라 베테랑과 신예들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대표팀 주장 손흥민의 리더십도 인상적이었다. 월드컵 개막 3주 전 소속 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 도중 안와골절 부상으로 수술대에 올랐지만, 마스크를 쓰고 대표팀에 합류해 출전 의지를 보였다. 실제로 조별리그부터 16강전까지 4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하며 경기장 안팎에서 투지를 불태웠다.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한 발 더 뛰는 주장의 헌신에 다른 선수들도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한국 축구의 간판 공격수가 손흥민이라는 점에서 1도움(포르투갈전)에 그친 본선 기록이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어시스트로 완성한 황희찬의 골은 한국을 16강에 올려놓았다. 골이 완성되기까지, 손흥민이 상대 공격 기회를 가로채 50여m를 그대로 드리블해 상대 진영까지 진입한 순간은 한국 축구에서 가장 짜릿한 그림 중 하나로 남게 됐다.
■ 축구 세계에 비밀이 없어졌다
전통의 강호 독일은 조별리그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스페인은 16강전에서 탈락했고 브라질과 포르투갈은 8강전에서 눈물을 흘렸다. 유럽과 남미가 득세하던 월드컵에서 아시아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아프리카는 처음으로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약진이 눈부셨다.
조별리그에서부터 파란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꺾었고 일본이 독일과 스페인을 무너뜨렸다. 한국은 포르투갈을 잡았다. 오스트레일리아도 덴마크를 끌어내리고 16강에 진출했다. 모로코는 크로아티아, 벨기에, 캐나다와 함께 F조에 속해 1위(2승1무)로 16강에 올랐다. 자책골로만 한 골을 내주는 탄탄한 수비가 원동력이었다. 토너먼트에서는 모로코발 ‘검은 돌풍’이 매서웠다. 스페인(16강전)을 승부차기에서 꺾고 포르투갈(8강전)까지 제압했다. 4강전에서 만난 프랑스에 0-2로 패하고, 3-4위 결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1-2로 패했지만, 4위로 대회를 마무리한 성과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의 위업이었다. 유럽과 남미 이외 국가가 월드컵 4강에 오른 것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4위)에 이어 20년 만이었다.
‘언더독’으로 분류되는 아시아·아프리카 팀들의 선전은 축구 세상의 격차가 좁아졌다는 신호다. 남미에서 기술을 익히고 유럽에서 활약하는 ‘제3대륙’ 선수들이 많아졌다. 과거에는 팀 명성이나 연봉을 좇아 이적하는 경우가 다수였지만 최근에는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을 찾아가는 사례가 훨씬 많다. 축구 본류인 유럽 무대에서 실전을 통해 경쟁력을 키운 선수들이다.
이번 대회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기술연구그룹(TSG) 일원으로 현장을 지켜본 차두리 FC 서울 유스강화실장은 아시아 활약의 주요 이유로 “많은 아시아 선수들이 유럽에서 뛰는 것”이라고 꼽았다. 차 실장은 “특히 유럽에 기반을 둔 오스트레일리아, 일본, 한국 선수들이 많다. 유럽 팀과 경기에서 겁먹지 않고 더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주요 선수들이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며 “축구 세계에 비밀이 없어졌다”라고 분석했다.
유럽 빅리그 경기가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시대라는 점도 주요 선수들에 대한 분석이 수월해진 배경이다. 상대적으로 노출도가 적은 아시아·아프리카 선수들보다 빅리그를 누비는 선수들 대응법이 훨씬 세밀하고 정교해졌다. 한국과 일본이 준비한 압박과 역습, 모로코가 다듬은 수비 전술 등이 돌풍의 원동력이었다. 한편으로 과거의 영광에 머물거나 스타들의 이름값에 안주한 팀들의 말로는 씁쓸한 퇴장이었다. 냉철한 분석 없이 승리를 자신하는 오만함은 반드시 꺾이게 되어 있다. 세계 최강 타이틀을 쥐고 있었던 독일의 몰락과 스페인의 퇴장, 브라질의 눈물이 남긴 교훈이다.
배진경 (전 ⟨포포투⟩ 편집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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