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없다” 하루 만에 또 던진 야마모토, 다저스 25년 만의 2연패 완성

짜릿함에도 단위가 있다면 2025 월드시리즈 7차전은 그 기준을 고쳐야 할 밤이었다. 토론토의 천장이 울릴 정도로 요란한 함성 속에서도, 다저스는 환호와 탄식이 교차하는 흐름을 자기 박자로 바꾸며 경기를 끝까지 끌고 갔다. 스코어는 5-4, 연장 11회. 단 한 줄의 숫자 뒤에 숨어 있는 이야기는 단순한 승부 그 이상이었다. 25년 만에 다시 탄생한 ‘백투백’ 우승, 그리고 확률과 배짱, 시스템과 본능이 한 문장 안에서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한 팀의 태도. 이 경기는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보여줬다.

처음부터 매끄럽진 않았다. 오타니 쇼헤이는 3일 휴식 뒤 선발로 나서 2⅓이닝 3실점에 그쳤다. 직구는 160㎞를 넘겼지만 초반부터 변화구 제구가 미세하게 흔들렸고, 그 빈틈을 보 비셋이 놓치지 않았다. 3회, 오타니의 첫 공 슬라이더가 가운데로 살짝 몰린 순간, 한복판을 가른 스리런 홈런이 로저스 센터를 뒤집었다. 호흡을 가다듬은 다저스는 4회 희생플라이로 한 점, 6회 또 한 점을 쥐어짜며 추격을 이어갔지만, 토론토도 곧바로 6회 한 점을 보태며 간격을 다시 벌렸다. 한 끗 차이의 진동이 계속된 가운데, 분위기는 홈팀 쪽으로 기울었다.

변곡점은 8회였다. 맥스 먼시가 불펜을 상대로 때린 솔로 홈런이 기점이 됐다. “지금부터”라는 신호 같은 한 방이었다. 그리고 9회, 그 순간이 정말로 온다. 1사 뒤 미겔 로하스가 마무리를 상대로 왼쪽 담장을 넘기는 동점 홈런을 쏘아 올리자 경기장은 정적과 소음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상한 공간이 됐다. 승리 확률이 한 자릿수대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찾아낸 단 하나의 스윙, 가을야구가 허락하는 극적인 장면은 대개 이런 간결한 문법을 따른다. 그 직후 토론토는 9회말 2사 만루 끝내기 기회를 놓쳤고, 연장 11회 1사 1·3루에서도 유격수 병살타로 고개를 떨궜다. 같은 긴장 속에서 누군가는 한 박자 참았고, 누군가는 반 박자 서둘렀다. 차이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다저스가 이 밤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덕아웃의 결심이었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시리즈 내내 투수의 역할을 유연하게 엮었다. 6차전 9회, 마무리가 흔들리자 7차전 선발 예정이던 타일러 글래스노우를 과감히 올려 세이브를 따내게 한 선택은 복선이었다. 최후의 7차전에서도 글래스노우와 블레이크 스넬을 불펜에서 꺼내며 빈틈을 메웠고, 마침내 9회말 더는 물러설 수 없는 1사 1·2루, 모든 계산이 뒤틀릴 수 있는 순간에 전날 96구를 던진 야마모토 요시노부를 불렀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리지 않는다”는 태도, 단기전에서야말로 유효한 문장이다. 무리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수의 이력과 회복 패턴, 구속보다 커맨드로 싸울 수 있는 유형인지까지 고려된 선택이었다. 결과는 2⅔이닝 무실점. 9회엔 맞혀 잡는 유인구로 땅볼을 만들었고, 11회 1사 1·3루에서 커크를 병살로 돌려세울 때는 몸쪽으로 시선을 묶어두고 낮게 떨어뜨리는 구종 배열로 배럴을 봉인했다. ‘괴물’이라는 별칭은 직구의 속도만 가리키지 않는다. 순간의 이해력과 흔들리지 않는 선택이 함께 있어야 붙는 이름이다.

경기 중간의 감정도 거칠게 요동쳤다. 4회말, 안드레스 히메네스의 몸쪽 사구를 둘러싼 신경전으로 벤치클리어링이 벌어졌고, 양 팀이 한꺼번에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물리적 충돌 없이 경고로 정리됐지만, 이 장면은 선수들이 이미 통증과 압박의 바닥까지 내려와 있음을 드러냈다. 이후 흐름을 먼저 정상심리로 끌어올린 쪽은 다저스였다. 글래스노우가 게레로 주니어를 높이 떠오르는 플라이로 잡으며 그 이닝을 닫았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미세하게 원정 덕아웃으로 옮겨갔다.

토론토에는 빛나는 장면이 적지 않았다. 맥스 셔저는 4⅓이닝 1실점으로 노장의 품격을 보여줬고, 게레로 주니어는 1루 수비에서 여러 차례 실점을 지우는 호수비를 펼쳤다. 달튼 바쇼의 다이빙 캐치는 관중의 호흡을 멈춰 세웠고, 무엇보다 무릎에 붕대를 감은 채 타석에 선 비셋은 투혼의 스리런으로 경기의 초반 흐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가을의 잣대는 잔인하다. 끝을 묶는 선택에서 실투가 홈런이 되었고, 한 번의 컨택이 필요한 장면에서 공은 글러브 속으로 사라졌다. 패배는 늘 아주 구체적인 몇 장면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에서 다저스 타선은 제 역할을 나눠 가졌다. 윌 스미스가 결정을 내리는 공을 쳤고, 먼시와 로하스가 필요한 공을 쳤다. 9회말과 10회초에 각각 2사 만루를 말아 올리고도 점수를 내지 못해 흔들릴 만했지만, 연장 11회 2사, 풀카운트 승부에서 스미스는 셰인 비버의 슬라이더를 한 박자 빨리 기다렸다. 짧고 강한 스윙, 좌측 담장 밖으로 사라지는 타구, 주먹을 불끈 쥔 포수의 표정. 이 장면 하나가 모든 서사를 정리했다. 그 뒤를 책임진 건 야마모토였다. 11회말 1사 1·3루, 커크의 타구가 유격수 정면으로 향하는 순간 다저스의 내야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병살을 완성했다. 그 공을 쥐고 있던 시간, 야마모토의 포효와 함께 시즌의 문이 닫혔다.

오타니의 득점 지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마운드에서 흔들렸지만 타석에선 2안타를 기록하며 경기 흐름을 끊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가 왜 선발이어야 했는지—지명타자와 투수를 동시에 맡아야 ‘교체 뒤에도 DH가 유지되는’ 룰의 현실—를 팀에 다시 증명했다. 불펜으로 올라오는 순간 DH가 사라지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대신, 1회부터 시작해 타선의 축을 계속 유지하는 선택은 팀 구조의 균형을 지키는 계산이었다. 결과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 오면 다저스는 다시 같은 길을 택할 근거를 하나 더 얻게 됐다.

이 우승을 숫자로만 설명하면 건조해진다. 다저스는 2년 연속 정상에 섰다. 메이저리그에서 마지막 연속 우승팀은 1998~2000년의 뉴욕 양키스였다. 통산 9번째 우승 트로피.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이 팀이 어떻게 그 자리에 도달했느냐다. 선발이 불펜으로, 불펜이 선발처럼, 2번 타자가 6번으로, 6번이 다시 3번으로. 하루가 바뀔 때마다 최적을 다시 계산하는 문화, 개인의 이해와 팀 전체의 효율이 정교하게 맞물리는 구조. 슈퍼스타의 팀이면서 동시에 역할 플레이어의 팀이라는 두 얼굴을 가진 조직만이 단기전의 지뢰밭을 끝까지 통과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구석에는 조용한 문장이 하나 더 있었다. 연장 11회말, 다저스는 수비를 갈아 끼웠고 김혜성이 2루에 섰다. 타석은 돌지 않았지만, 그 순간이 지닌 상징은 분명했다. 한국인 선수로는 김병현 이후 21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낀 두 번째 주인공. ‘언제든 들어갈 준비가 된 사람’에게 팀은 가장 높은 무대의 마지막 수비 이닝을 맡겼다. 유틸리티의 가치는 바로 그런 순간에 증명된다.

야구는 끝내 단순한 진실로 되돌아간다. 공 하나, 스윙 하나, 선택 하나가 계절의 얼굴을 바꾼다. 다저스는 그 ‘하나’를 자기 편으로 데려오는 법을 알고 있었다. 9회 1사 만루와 11회 1사 3루에서 무실점으로 버틴 침착함, 8·9·11회 세 번의 솔로 홈런으로 경기를 뒤집은 집중력, 전날 선발을 마무리로 당겨 쓴 결단. 계산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용기, 실패를 감수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견디는 힘이 모여 왕조의 문장을 만든다. 올가을 그 문장은 다저스의 이름으로 쓰였다. 내년에 또 같은 이름이 적힐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오늘의 선택들이 내일의 시즌을 더 쉽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야구는 늘 그런 방식으로 다음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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