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낙태죄 위헌인데…"약 구해요" 3년 지나도 위험한 음지 거래

정세진 기자 2023. 1. 2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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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미프진을 검색하면 미프진을 판매한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사진=SNS 캡처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를 결정하며 형법의 낙태죄가 효력을 상실했지만 입법 공백이 이어지면서 여전히 낙태약이 불법 유통되고 있다.

23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헌법재판소(헌재)는 2019년 낙태 수술을 한 임산부, 의료진을 처벌하는 형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법 조항에 대해 바로 위헌결정을 내릴 경우 생기는 혼란을 막기 위해 법 개정 시한을 두는 결정이다. 낙태죄는 위헌이지만 법 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해 유예기간을 둔다는 의미다.

헌재는 2020년 말까지 법을 개정할 것을 주문했지만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해당 법 조항은 2020년 말 효력을 상실했다.

헌재 결정 후 정부는 임신 14주 이내에는 여성의 결정에 따라 임신중지를 할 수 있고 24주까지는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적극적으로 임신중지를 허용하는 개정안을 주장했고 국민의힘은 더 제한적으로 임신 중지를 허용하자는 개정안을 발의해 맞선다. 현재 개정안들은 모두 계류 중이다.

관련 법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선 임신기간과 관련 없이 낙태를 해도 처벌받지 않는다. 제한 없이 낙태를 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약물을 이용한 임신중지는 합법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현대약품이 2021년 7월 이른바 '먹는 낙태약' 미프지미소정(미프진)의 품목허가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청했지만 식약처는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지난달 15일 현대약품이 미프지미소정(미프진)의 품목허가 신청을 자진 취하하면서 식약처는 허가 심사 절차를 종료했다.

의약계에서는 입법공백 상태에서 식약처가 선제적으로 낙태약 허가를 내주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등 시민단체는 성명서를 내고 "사용한 지 30년 된 의약품에 안전성·유효성 자료 보완을 요구하는 등 허가 절차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심사를 운영해 왔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많은 사람이 약을 이용한 임신 중지를 원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방치해 왔다"면서 "식약처는 (현대약품의) 자진 철회를 핑계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입법 공백 상태 속에서 낙태약은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제대로된 복약 지도 없이 온라인을 통해 불법 유통되고 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포털에서 일명 먹는 낙태약 '미프진(약품명 미프지미소정)'을 검색하면 미프진을 판다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들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복용상담까지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상담에 나선 이가 의사 또는 약사의 자격을 소지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의사나 약 처방 없이 복용하는 미프진의 부작용을 우려하지만 음지에서 이뤄지는 거래와 투약을 막거나 감시하긴 어렵다.

홍순철 고려대 안암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식약처법에 임신 분만·진통·유도 등에 미소프로토를 쓸 수 없도록 돼 있다"며 "한번 왕절개를 한 여성이 임신 14주때 이약을 복용하면 최악의 경우 자궁이 파열될 수도 있는 위험한 약"이라고 말했다. 미프진은 미페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주성분으로 한다.

낙태약이 식약처 승인을 받아도 유통·복용을 양성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은 기록을 남기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지금도 국내 미프진 소비량이 연간 100만정으로 추정된다. 병원에 와서도 차트를 쓰기 싫어하는데 합법화한다고 의사 복용지도를 받겠냐"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 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낙태죄를 처벌하지 않고 여성의 자기결정을 존중한다는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취지에 따르면 미프진은 수입돼야 법리에 맞다"면서 "헌재 결정 후 구체적인 임신중단 규정에 대한 입법 공백 때문에 산모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국회가 구체적 내용을 담은 관련 법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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