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국방의 초석, 통일교가 닦은 잊힌 역사 [종교칼럼]
우리 사회 누구로부터도 쉽게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통일교인들에게 이 겨울은 유난히 춥게 느껴질 것이다. 통일교를 둘러싼 정치권과 언론의 공세는 여전히 거칠다. 현재는 잠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을 뿐, ‘정교유착’, ‘반사회적 집단’, 심지어 ‘종교 해산’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공공연히 오르내린다. 그러나 한 사회가 특정 종교를 평가할 때는, 최소한 그 공동체가 한국 사회의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무엇을 했는지부터 차분히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통일교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궤적은 국가로부터 이익만을 취한 집단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다. 통일교는 대한민국이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던 시절, ‘안보’와 ‘자주국방’이라는 절박한 과제 앞에 집단적으로 몸을 던진 드문 종교였다.
1960~70년대 한국은 여전히 전쟁의 연장선에 있었다. 휴전선은 언제든 전선으로 돌변할 수 있었고, 북한의 무력 남침 위협은 상시적인 실존 공포였다. 그 시기 문선명 총재가 선택한 길은 종교 지도자로서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그는 정밀기계공업과 방위산업이라는, 가장 거칠고 위험한 영역으로 투신했다. 통일산업의 시작은 초라했다. 일본에서 들여온 중고 선반기계 한 대와 적산가옥의 연탄광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작은 출발은 곧 한국 방위산업의 토대를 떠받치는 거대한 기틀이 되었다.
통일산업은 이후 통일중공업으로 도약하며 1976년 방위산업체로 지정되었다. 이후 기관포, 자동포, 벌컨포, 장갑차 부품을 비롯해 자주포와 군용 차량의 변속기 등 핵심 무기체계를 국산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무기와 핵심 부품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었다. 유사시 공급망이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단순한 가정이 아닌 실제적 안보 리스크였던 시대다. 따라서 당시 통일교의 방위산업 참여는 권력과의 유착이 아니라, 국가 생존을 위한 기술 자립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응답한 결과였다. 통일중공업이 축적한 공작기계 기술과 엔지니어 양성 시스템은 단순히 ‘총을 만드는 공장’을 넘어 한국 기계공업 전반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수천 명의 숙련공이 이곳에서 기술을 익혀 한국 산업 생태계 전반으로 퍼져 나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금 통일교를 향해 던져지는 해산론과 낙인의 실태 속에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나, 그것이 특정 종교의 사회적 기여와 역사적 역할까지 지워버릴 명분이 될 수는 없다. 한국 현대사에서 통일교는 나라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 앞에서 등을 돌리지 않았고, 오히려 자주국방의 기틀을 닦으며 그 책임을 온몸으로 떠안았다. 한 사회가 위기에 처한 종교를 대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감정적 배척이나 정치적 프레임에 앞서, 공과(功過)를 역사적 지평 위에 공정하게 올려놓아야 한다. 통일교의 과거를 차분히 돌아본다면, ‘해산’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전에 우리가 반드시 직시하고 숙고해야 할 장면들이 결코 적지 않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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