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말 핵폭탄’ 일촉즉발…‘헤어질 결심’ 섰어도 냉각기 가져야
‘헤어질 결심’의 치킨 게임
‘특수관계→적대적 관계’ 악화 뒤
섣부른 “북 정권 종말” 후폭풍 거세
윤 정부 ‘경고’ 수위 갈수록 높아져
작은 불꽃도 순식간 참화 가능성
“취하하고 잘 살아봅시다~”
“싫어! 그럼 인정하라고 안 할 테니 이혼이라도 해줘!”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굿파트너’의 첫번째 사건이었다. 되풀이해서 외도하는 남편을 더는 참을 수 없는 여자가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티격태격하는 와중에도 남편은 잘 살아보자며 좋은 남자 코스프레를 하고, 멘탈이 무너진 여자는 울부짖으며 애원한다. 바람피운 것은 인정하지 않아도 좋으니 이혼만이라도 해달라고. 하지만 한유리 변호사에게 막혀 이조차 쉽지 않다. 재판에서 지고 만다. 헤어질 결심을 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결심해도 실제로 헤어지는 건 쉽지 않다. 개인 관계에서도 그럴지언정 남북관계는 얼마나 어렵겠는가.
조선(북한)은 진지하게 헤어질 결심을 한 것 같다. 지난 7~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하며 한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정했다고 최근 조선중앙통신이 밝혔다. 절대로 같이 살지 않겠다는 최고 수준의 선언이다. 지난 7일 김정은국방종합대학을 방문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그 의미를 솔직하게 설명했다. “이전 시기에는 우리가 그 무슨 남녘 해방이라는 소리도 많이 했고 무력통일이라는 말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이에 관심이 없으며 두 개 국가를 선언하면서부터는 더더욱 그 나라를 의식하지도 않습니다.” ‘민족해방’이나 ‘무력통일 노선’은 이미 폐기했고, 대한민국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한국을 “의식하는 것조차도 소름이 끼치고” 싫으니 제발 이혼하자는 것이다.
‘북 정권 종말론’에 ‘핵 반격’ 위협
갑자기 나온 말이 아니다. 조선은 작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와 올 1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북남관계는 더 이상 동족관계, 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고착되었다고 선언했다. 같이 살 수 없는 두 개의 국가라고 한 것이다. 그 이전인 2021년에는 8차 당대회에서 ‘민족해방혁명 추진’을 규약에서 삭제해, 한국을 조선식으로 ‘흡수통일’ 하겠다는 노선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이어 ‘공화국 북반부에서 부강하고 문명한 사회주의 건설’을 추진하겠다며, 두 국가로 헤어진 상태에서 조선은 나름대로 독립해서 살아가겠다고 분명하게 천명하기도 했다.
이 ‘두 국가론’도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이나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은 남북에 존재하는 두 개의 국가들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었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은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주체로 명기하여 두 국가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통일 방안으로 ‘연합제’와 ‘연방제’에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두 국가론’은 오래된 주장이지만 두 국가의 관계 규정에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한국과 조선이라는 두 국가가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였다고 인정했던 반면, 작년 연말부터는 ‘적대적 국가’ 관계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더는 같이 살 수 없으니 헤어지자는 것이고, 여차하면 확 집에 불이라도 싸지르겠다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일 서부지구의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부대 훈련기지를 현지 시찰하며 발언했다. “주권을 침해하는 무력 사용을 기도하려 든다면 가차 없이 핵무기를 포함한 수중의 모든 공격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그런 강경 발언의 이유는 윤석열 대통령이 제공했다. 윤 대통령은 1일 건군 76주년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 종말의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 발언은 미국의 핵 독트린을 넘어서는 위협적인 수준이다. 미국은 ‘핵태세 검토 보고서’(NPR)에서 “북조선에 의한 핵공격은 (…) 그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며 북의 ‘핵무기 사용’을 명확하게 반대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핵무기 사용 기도’조차도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며 위협의 수준을 크게 상향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기도’를 정권 종말과 연결한 것이 한-미 핵억제전략의 변화를 시사하는 것은 아닌가.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한국 재래식 전력과 미국 핵전력의 통합을 의미하는 한·미 일체형 확장억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내용의 ‘한-미 한반도 핵억제 핵작전 지침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한국의 첨단 비핵전력이 미국의 핵전력과 통합되어 운용된다는 것인데, 잘 알려진 것과 같이 한국의 3축 체계는 북이 핵무기 사용 움직임을 보이면 선제타격하는 무기체계들을 포함하고 있다. 유사시 한국의 비핵전력이 먼저 불을 뿜고, 조선이 핵무력으로 보복하면, 미국이 핵무력으로 정권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미-소 ‘확증파괴전략’보다 위험
이러한 상황에서 이제 이런 ‘말 핵폭탄’의 교환은 더욱 위험한 단계로 치닫고 있다. 무인기 침투를 둘러싸고 남북의 긴장이 팽팽한 가운데 13일 국방부가 위협 수위를 높였다. “우리 국민 안전에 위해를 가한다면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 이제는 그 의미마저 애매모호한 ‘안전 위해’만으로도 ‘정권의 종말’을 향해 치닫겠다는 것이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같은 날 바로 반발했다. 이를 ‘특대형 범죄행위’라고 규정하며 ‘비참한 종말’을 위협했고, 이틀 뒤 한국 군부를 ‘적대적 주권 침해 도발행위의 주범’이라며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의미를 모르겠다면 지난 2일 김정은 위원장이 ‘주권을 침해하면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공격력을 사용하겠다’고 한 발언을 상기하라.
이제 작은 불꽃만 튀어도 위기가 순식간에 비화할 수 있다. 남북에 모두 핵무기가 떨어질 수 있다. 조선은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며 ‘초강경’ 억제 전략을 구사하고 있고, 한국도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며 ‘일체형 억제’ 전략으로 맞서고 있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 간의 ‘확증파괴전략’보다도 훨씬 위태롭다. 핵과 핵이 서로 억제하는 상태가 아니라 무인기 침투 소동만으로도 핵무기가 발동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과 조선 모두 한발 물러서야 한다. 전쟁에도 비례성의 원칙이 있다. 조선이 자국 영토 안에서 도로를 폭파하는데, 한국군이 중화기로 대응사격을 한 것은 과도하다. 무인기가 주권을 침해했다고 ‘핵보복’을 시사하는 것도 과도하다. 당장 이혼이 안 된다면 냉각 기간이라도 가지라.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
시카고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국제관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반도와 국제관계에 대한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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