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 최현석 “내가 욕먹는 게 대수? 팀이 이기면 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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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엔 ‘흑백요리사’의 일부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리더가 흔들리면 그냥 ‘개판’ 나는 거예요. ‘그냥 나 혼자 욕먹으면 되지’ 정도는 리더의 책임감이 아니에요.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팀의 목적을 달성하게 만드는 것이 진짜 책임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화제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요리사)’의 두 차례 팀 대결에서 리더를 맡아 단호한 리더십으로 압도적 승리를 끌어낸 최현석(52) 셰프를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레스토랑 ‘쵸이닷’에서 WEEKLY BIZ가 만났다. ‘흑백요리사’는 요리사 100명이 최고의 자리를 놓고 대결하는 요리 예능이다. 요리 명장급인 ‘백수저’ 셰프 20명, 아직 명성은 백수저에 못 미치지만 나름의 실력과 포부를 갖춘 도전자 ‘흑수저’ 셰프 80명이 붙는 치열한 대결을 그리며 인기를 끌었다.
팀 대결은 총 두 차례 있었는데 최 셰프는 두 번 다 팀 리더를 맡아 승리를 이끌었다. 팀원 중엔 미 백악관 만찬을 맡았던 에드워드 리, 조리 명장 안유성 셰프 등 수준급 요리사도 있었지만 ‘최현석 팀’은 다른 팀과 달리 잡음이나 분열 없이 목표를 향해 움직였다. 그 과정에 메뉴도 안 정하고 주요 재료를 싹쓸이하거나, 매출을 불리려고 음식 단가를 아주 높게 설정하는 등 파격적 결단을 내려 상대팀과 시청자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비열하다’는 비난도 적잖았지만, 결과는 모두 최 셰프의 승리였다. 그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무엇인지 묻자 그는 주저하지도 않고 말했다. “‘뽀대’가 나야죠. ‘우리 리더는 실력자’라는 믿음을 팀원에게 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최현석의 리더십 “팀의 승리가 곧 리더의 책임감”
-쟁쟁한 셰프들도 군말 없이 따라오게 한 비결이 있습니까.
“리더는 팀원들을 이끌 수 있는 ‘진짜 카리스마’가 있어야 해요. 사람들이 날 신뢰해야죠. 팀장급 셰프들한테 제가 하는 말이 있어요. ‘멋있게 해. 멋있게 해야 후배들이 따라 한다’고요. 군대에선 조교가 ‘뽀대’가 나야 신병들이 열심히 따라 한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그러려면 리더가 실력을 갖췄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말로만 하는 리더는 절대 사람들을 이끌 수가 없어요. 그다음 조건은 팀원의 능력을 보고 일을 위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위임에도 원칙이 있습니까.
“위임이라는 게 내 권한을 다 내준다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잘하는 게 있겠죠. 하지만 제 식당 직원도 보면 다양한 장점을 지닌 다양한 프로들이 있고, 어떤 분야에선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겐 (그 분야에 대한) 권한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외부 분들과 일을 할 때 답답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어요. 어떤 기업에 ‘회장님’이 계시는데 엄청 비싼 디자이너를 채용해요. 그래 놓고 디자인을 회장님 취향으로 막 바꾸거든요. 이해가 안 가는 거죠. 디자이너가 그 회장님보다 훨씬 디자인을 잘할 거 아니에요.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좋은 능력을 갖춘 사람을 구해서 구현하게 하는 게 베스트(최고)인데, 그걸 못 하는 거죠.”
-팀장을 뛰어넘는 팀원이 종종 있습니까.
“어떤 조직이든 나보다 장점을 가진 사람이 많아요. 그 장점을 최대한 발휘하게 (팀원에게도) 권한을 줘야 합니다. 그러면 그 팀장과 그 조직원들이 하는 일이 반드시 잘됩니다. 100%는 아니지만 잘될 확률이 굉장히 높죠.”
-흑백요리사 팀별 요리 대결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까.
“당연히 ‘우리 팀의 승리’죠. 팀이 이겨야지, 내가 스타가 되는 게 뭐가 중요해요. 내가 아무리 덩크슛을 꽂고 점수를 많이 내도 팀이 지면 그건 그냥 끝이에요. 전 그래서 확실하게 (어떤 파트를) 잘하는 사람이 보이면 그 일을 시키되, 만약 저보다 ‘리더’라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을 기꺼이 팀장으로 만들고 저는 서포트(지원)를 잘할 자신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남에게 이기면서 돈 번다는 게 진짜 삭막한 세상이거든요. 감정적 소모나 서로 간의 불편함, 이런 것 때문에 이긴다는 목표로 가는 과정이 길어진다면 그건 심각한 마이너스라고 생각해요.”
최 셰프는 “MBTI(성격 유형) 검사 다섯 번 해봤는데 전부 ENTJ가 나왔다”고 했다. ‘통솔자’로 분류되는 ENTJ에 대해 MBTI 정보 사이트 ‘16퍼스널리티’는 “자신의 권한을 이용해 사람들이 공통된 목표를 위해 함께 노력하도록 이끈다”고 설명한다.
◇“욕을 먹더라도 승리로 이끌어야 리더”
‘흑백요리사’는 라운드별로 탈락자를 발생시켜 최종 우승자에게 3억원이란 우승 상금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라운드에선 해산물로 만든 요리를 주제로 한 팀 대항전이 펼쳐졌다. 이 라운드에서 최 셰프는 메뉴를 정하지도 않은 채, ‘백수저’로 이뤄진 팀원들과 함께 주어진 해산물 재료 중 가리비를 싹쓸이했다. 상대팀은 기분 나빠 했고 시청자 중에도 “배려가 없다”는 식의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전략 덕에 최 셰프의 팀은 평가단의 호평을 받으며 이겼다.
-첫 지시가 왜 ‘가리비 싹쓸이’였나요.
“‘치사하게 남 방해하려고 저런다’는 소리 많이 들었어요. 백종원 심사위원도 ‘(다른 팀) 못 하게 하려고 가져갔쥬?’라고 했어요. 그런 짓 안 합니다. 상대방을 방해하려는 게 아니고, 우리가 그게 꼭 필요해서 한 거죠. ‘재료를 다 가져가면 반칙’이라는 룰도 없지 않았습니까.”
3라운드는 팀을 나눠 요리하고, 이를 시식한 심사위원단 100명이 승자를 정하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최 셰프는 “전략을 짤 때 타기팅(targeting·핵심 소비자 공략)이 진짜 중요하다. 그래서 타깃을 먼저 분석했고, 가리비가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왜 가리비가 그렇게 필요했습니까.
“심사위원단을 보니까 젊은 사람들인 거예요. 성별은 많이 섞여 있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맛을 원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포인트로 딱 떠오른 게 ‘가리비 감칠맛’이었어요. 가리비는 그냥 프라이팬에 소금만 뿌려 구우면 100명 다 맛있게 먹는 요리예요. 그래서 가리비 요리를 하려고 딱 봤더니 가리비가 60개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셰프보다 높은 게 있죠. 재료죠. 재료 털러 갑시다’라고요. 그리고 우리 팀원들은 저를 팀장으로 지목해 올렸으니 저를 믿기로, 이미 약속이 된 상태였어요. 그대로 따라주었죠.”
-이기려면 ‘욕 좀 먹어도 된다’는 각오까지 한 건가요.
“저는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성격 장애)처럼 남을 해치거나 부당한 지시를 하지 않았어요. 룰만 지킨다면, 사람들이 나한테 서운해하고 욕하는 게 뭐 대수인가요. 우리 팀이 이기는데? 거꾸로 내가 찬사를 받았는데 우리 팀이 졌다면? 그게 진짜 ‘신’인 거죠.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책임이 진짜 기본인데, 요즘은 책임이란 말이 너무 어려운 일이 됐어요.”
-책임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시던데요.
“만약 요리 명장들을 이끌고 잘못해서 떨어졌으면 정말 털렸을(더 욕먹었을) 거예요. 그건 각오해야죠. 하지만 그건(혼자 욕먹는 건) 차선책이고, 진짜 진짜 책임감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회사 생활을 할 때 저랑 의견이 다른 부장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이거 밀고 가겠다. 잘못되면 내가 책임지겠다. 사표 쓰겠다’고 그랬어요. 그때 중재를 한 회사 부대표의 말이 명언이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그만두는 게 이걸 책임질 수 있는 일이십니까. 당신은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잘못되게 하지 말고, 목표 달성을 할 생각이나 하란 거죠.”
◇최현석의 영업 전략 “외식업은 치밀한 타깃·데이터 분석이 기초”
이어진 4라운드에서 참가자들은 팀별로 가상의 식당을 차리고, 메뉴와 가격을 구상해 유튜버들로 구성된 손님들을 상대로 매출 1위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을 벌였다. 이 라운드에서 최 셰프 팀이 차린 ‘억수르 기사식당’은 다른 팀들보다 음식 가격이 두 배가량 비싼 프리미엄 가격 전략을 썼다. ‘캐비어 알밥 천국’은 5만8000원, ‘랍스터 마라 크림 짬뽕’은 4만2000원에 파는 식이었다. “비현실적인 가격”이란 목소리도 나왔지만, 결국 최 셰프 팀은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초고가 메뉴’란 또 한번의 파격은 어떻게 나온 전략입니까.
“방송엔 안 나왔는데 ‘전체 예산이 2000만원이다. 20석의 좌석이 있을 거고, 2시간 반 동안 좌석이 계속 채워진다’는 정보를 주더라고요. ‘손님’이 유튜버인 줄은 몰랐고요. 계산을 해봤어요. 그러니까 턴(회전율)을 많이 돌린다고 해도 ‘3턴’쯤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한 사람당 객단가는 20만~30만원인 거예요. 여기서 또 하나, 이 사람들은 자기 돈이 아니라 남(제작사)이 준 돈을 쓰는 거잖아요. 소비 성향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요. ‘그럼 이 사람들 마음껏 소비하게 해주자. 근데 어렵게 하면 안 된다. 정말 쉽게, 아무나 먹을 수 있는 험블(평범)한 음식에 비싼 재료를 때려 넣어 비싸게 만들자’고 했어요. 날치알이나 연어알로 만들어 먹던 알밥을, 캐비어로 알밥 해준다는 데 자기 돈도 아닌 남의 돈으로 안 사 먹겠어요?”
-박리다매 전략도 있을 텐데요.
“보니까 ‘트리플스타(흑수저 팀으로 나온 강승원 셰프)’가 너무 요리를 잘하더라고요. 우리가 (모든 팀 중) 매출 40%를 갖고 와도 트리플스타가 41%면 질 수가 있는 상황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단가를 높여서 매출(단가*판매 개수) 50%를 가져오기로 했어요. 그때 우리가 준비한 메뉴가 다 팔리면 매출이 1080만원이었어요. 전체 예산(2000만원)의 50%를 약간 넘죠. 이날 유튜버들이 (2000만원어치를 다 먹지는 못하고) 총 980만원어치를 사 먹었는데, 저희가 470만원어치를 팔아서 전체 매출의 48%쯤을 차지했어요. 예상에 근접한 매출은 가져왔어요.”
이 대결 때 최 셰프는 정해진 재료 구입비 내에서, 생각보다 많은 다량의 랍스터를 공수해 화제가 됐다. 그는 “금액 맞추려고 제 인맥을 동원했다. 생랍스터는 무리라 수족관에서 죽어 깨끗한 냉동 랍스터를 가능한 한 싸게 사 왔다”고 했다. 그는 또 “회전율을 높이려고 프렙(prep·재료 손질과 소분 작업을 해두는 요리 준비 과정)을 많이 해놔 요리가 주문 후 1분이면 나가게 했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 중 자신을 ‘분석 변태’라고 자주 불렀다. 수치 분석에 집착한다는 뜻이다.
-숫자 다루는 법은 어떻게 배웠나요.
“(하얏트 호텔 맞은 편에 있는) 라쿠치나라는 레스토랑에서 10년 넘게 일하며 배웠어요. 그게 저한테 가장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레스토랑 기획부터 메뉴 짜기, 거래처 상대 등을 그때 다 배웠어요. 당시 주방을 총괄했던 김형규 셰프님께도 많이 배웠습니다.”
-김 셰프님께는 무엇을 배웠습니까.
“김 셰프님은 원칙주의자세요. 제가 차가운 파스타를 만들거나, 과일 안주를 잠자리 모양으로 꾸미거나 하면 ‘음식으로 장난치지 마’라고 하셨어요. 근데 그게 정말 좋았어요. 재료를 덜 쓰고 쓰레기통에 버리면 그거 집어 가지고 먹으라고 하면서 ‘재료를 아껴야 좋은 재료를 쓸 자격이 있다’고 얘기했어요. 세제 많이 쓰면 ‘한강 물고기 네가 다 죽일래’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아껴 써야지’라는 식으로 혼났죠. ‘바빠도 치워. 치우고 해. 일 잘하는 애들은 자기 주변이 깔끔해’라고도 하셨어요. 진짜 피곤한 스타일이긴 한데, 그런 분한테 10년 동안 지독한 원칙들에 시달렸기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해도 중심을 잡을 수 있었어요.”
◇인간적인 최현석 “백발 흩날리며 플레이팅이 꿈”
-최 셰프를 평가했던 백종원 대표와 안성재 셰프를 거꾸로 평가하신다면.
“백종원 심사위원은 (삼국지의) 여포 같은 리더예요. 본인 역량이 엄청 많으시고 적진에 들어서면 선봉장으로 ‘나를 따라라’ 하면서 적들의 목을 다 치고 다니는 그런 지도력을 가진 리더죠. 안성재 셰프는 엄청 치밀해요.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죠.”
-앞으로 어떤 셰프로 기억되고 싶나요.
“제가 생머리거든요. 백발 생머리로 눈을 살짝 가린 채 플레이팅하는 모습이 되게 멋있을 것 같아요. 요리사라는 굵은 나무 몸통을 튼튼하게 해야 방송이든 화보 촬영이든 잔가지를 뻗고 나뭇잎을 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몸통이 상하면 잔가지도, 잎도 나지 않겠죠. 저는 튼튼한 나무 몸통을 절대 놓치지 않고 저만의 새로운 요리를 해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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