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환자의 마지막 친구

햇수로 13년째 아주대병원 권역별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에서 봉사 중인 노희원 씨는 봉사자들 사이에서 터줏대감으로 통합니다. 지난 10월 11일 ‘제12회 호스피스의 날 기념식’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발전의 기여를 인정받아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는데요.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환자가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자신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환자의 편안한 얼굴을 볼 때 가장 보람된다는 노희원 씨 인터뷰를 정책주간지 'K-공감'에서 확인하세요.

말기 환자의 마지막 친구
“13년 봉사 덕분에 내 삶이 아름다워졌어요”
햇수로 13년째 아주대병원에서 말기 환자를 돌보는 노희원 씨. 사진 C영상미디어

호스피스 병동엔 의료진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영양사부터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성직자까지 다양한 이들이 오갑니다. 그중 자원봉사자는 ‘호스피스의 꽃’이라 불립니다. 말기 환자에게 다가가 마음을 열고 마지막 친구가 돼주기 때문입니다. 노희원(77) 씨는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생명의 연장이 아니라 환자가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자신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면서 “그게 내가 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그는 2012년부터 아주대병원 권역별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에서 봉사 중입니다. 2011년 아주대병원이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지정된 직후부터 몸담았습니다. 햇수로 13년째. 봉사자들 사이에서 터줏대감으로 통합니다.

10월 11일 ‘제12회 호스피스의 날 기념식’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상도 받았습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발전에 기여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수상 소감을 묻자 노 씨는 “‘이 나이에 머리 하얘서 상은 무슨 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습니다.

아주대병원은 2019년 경기도 유일의 ‘권역별호스피스센터’로 지정됐습니다. 병상은 총 11개입니다. 서른 명의 자원봉사자가 번갈아 환자를 돌봅니다. 노 씨는 매주 목요일 오후를 맡고 있습니다. 그는 “목요일만 기다리며 산다”고 했습니다.

Q. 완화의료센터에서 말기 암 환자를 돌본다고 들었다.

말기 암 판정을 받고 20~27일 시한부 선고를 받은 이들입니다. 기도도 해드리고 말동무도 됩니다. 머리 감기고 목욕 시키고 옷 갈아입히는 건 기본입니다. 마사지 해드릴 땐 ‘대한민국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있으시라’고 합니다. 27일을 채 못 채우는 환자도 왕왕 있습니다. 멀리 시골에서 버티다, 버티다 입원한 분들은 오자마자 ‘햇살방’으로 가기도 합니다. 완화의료센터에서 숨이 끊어질 것 같을 때 가는 곳입니다.

Q. 수없이 많은 죽음을 지켜봤겠다.

어느 날은 마사지를 하는데 환자 배가 돌덩이처럼 딱딱했습니다. 머지않았구나 싶었는데 다음날 돌아가셨습니다. 배가 시멘트처럼 굳었는데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주 고이 눈을 감았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환자도 있었습니다. 원체 과묵해서 말이 없던 분이었습니다. 열심히 마사지를 해주고 기도도 해드렸더니 마음을 열었는지 처음으로 입을 뗐습니다. 나이도 어린데 이리 신세를 져서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마사지를 받으면 병이 좀 나을까요?’하고 물어왔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는 시한부 환자에게 희망을 주지 말라고 교육받습니다. ‘꼭 회복할 거다, 반드시 이겨낼 거다’라는 말은 금기어입니다. 대신 이렇게 답했습니다. 여기 계시는 동안 편안하시라고 해드리는 거라고. 그 말을 듣고 다음날 운명하셨습니다. 아주 평안한 표정이었습니다.

Q. 환자들이 다 고령자는 아닌가보다.

대학교 신입생도 있었습니다. 뇌종양 말기로 기억합니다. 가망이 없어서 이곳에 왔습니다. 밤잠 설치며 옆에 있던 어머니께 다가가 ‘환자와 대화를 좀 해볼 수 있겠냐’고 했더니 ‘아이가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 커튼을 쳐놓고 있었습니다. 결국 혼자 그 아픔을 끌어안고 1주일 만에 세상을 등졌습니다. 생각하면 지금도 짠합니다.

Q. 여러 죽음을 목도하다보면 삶에서 부질없다 싶은 것이 있을 것 같다.

돈 좇아 아등바등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죽으면 소용없습니다. 단 1원도 만질 수 없습니다. 먹고살 만큼만 벌면 됩니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있을 때 잘해야 합니다. 가고 나면 아무리 땅을 쳐도 돌아오지 않습니다. 요즘은 보호자들이 병문안을 잘 안 옵니다. 입원할 때 잠깐 얼굴 비추고 마지막까지 찾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씁쓸한 현실입니다.

Q.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

10여 년 전 갑자기 몸이 아파 구급차에 실려 간 적이 있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울면서 ‘하늘이 당신을 이렇게 데려가진 않을 거’라고 하는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강 잃으면 다 끝인데 안 아플 때 더 많이 돕고 나누며 살 걸 하는 후회였습니다. 회복하면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했고 퇴원 후 바로 호스피스자원봉사자 교육을 받으러 갔습니다.

Q. 봉사활동 전과 후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욕심이 없어지고 부드러워졌습니다. 천년만년 사는 게 아니니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습니다. 원래는 성격이 불 같았습니다. 아내는 내가 성질 한 번 부리면 아무 대꾸를 못했고 직장에서도 모진 상사로 이름났었습니다. 요즘은 나도 모르게 웃는 일이 많습니다. 자주 웃고 좋은 말을 하다보면 옆 사람도 기쁘고 내 삶도 윤택해집니다.

Q. 가장 보람되는 순간은?

보호자들이 엄마, 혹은 아버지가 ‘평안하게 소천하셨다. 감사하다’고 말할 때입니다. 굳이 그런 말을 듣지 않더라도 환자의 편안한 얼굴을 볼 때 가장 보람됩니다. 가실 때도 그 모습이라면 더 바랄게 없습니다.

Q. 힘든 점은 없나?

1주일에 단 하루 봉사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힘들다고 여기면 나도 주변도 다 힘들어집니다. 지난 6월 새로 들어온 봉사자 두 분에게도 ‘봉사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임무대로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습니다. 요즘은 예전만큼 자원봉사자가 없는 게 문제입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봉사요원들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습니다. 특히 젊은 봉사자를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아파서 거동이 어려운 사람을 들어보면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인 이곳에서 환자를 들어보며 인생의 무게와 의미를 다시금 책정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Q. 존엄한 마지막을 위해 정부에 전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지금도 말기 환자를 위한 여러 정책들이 있습니다. 복지부 지원으로 이곳 완화의료센터 입원비 또한 환자의 부담은 적은 것으로 압니다. 다만 이러한 호스피스 서비스의 혜택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받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가능하다면 공기 좋고 새소리 들리는 지역을 적극 활용해서 머무는 동안 자연 속에서 치유받고 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Q. 봉사를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답게 가자.’ 이 일을 시작하고 정한 인생 모토입니다. 아름답게 살기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만 둘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힘닿는 데까지 할 생각입니다. 아직은 환자를 수발하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팔 힘도 좋고 눈도 잘 보입니다.


‘호스피스의 날’을 아시나요?

말기 환자와 가족 슬픔 덜고 사랑을 채우다

보건복지부는 10월 11일 서울가든호텔에서 ‘제12회 호스피스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사진 보건복지부

보건복지부는 10월 둘째 주 토요일 ‘호스피스의 날’을 맞아 10월 11일 ‘제12회 호스피스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습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제도에 관한 현장 종사자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그간의 노고를 격려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행사에는 박민수 복지부 2차관, 국립암센터장, 국가생명윤리정책원장, 중앙호스피스센터장, 연명의료관리센터장, 전국 호스피스전문기관과 권역별 호스피스센터, 등록·의료기관 및 관련 학회 등 3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1부 기념식에서는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제도의 정착에 기여한 34명의 유공자 및 6개 단체에 대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총 40점)을 수여했습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분야에서는 아주대학교병원 노희원 씨 등 호스피스전문기관의 자원봉사자 5명과 고려대의과대학부속 구로병원 간호사 이은정 씨 및 충남 홍성의료원 사회복지사 김병효 씨 등 호스피스전문기관 종사자 11명, 관련 공공기관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 발전에 기여한 4명 등을 포함해 총 20명에게 장관 표창을 수여했습니다.

연명의료결정제도 분야에서는 서울대학교병원 등 제도 활성화에 기여한 기관 6곳과 퇴직공무원재능나눔봉사단 상담사 민광호 씨 등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상담사 6명,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교수 이명아씨 등 의료기관윤리위원회 종사자 5명, 관련 공공기관에서 연명의료결정제도 발전에 기여한 3명 등을 포함해 총 20명에게 장관 표창을 수여했습니다. 2부 심포지엄에서는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생애 말기 교육지원 사업’을 주제로 국립암센터 최귀선 국가암관리사업본부장을 비롯해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울산대병원, 아주대병원 등 현행 권역별 호스피스센터 관계자와 현장 종사자들이 참여해 지역사회에서의 생애 말기돌봄에 관한 교육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박민수 차관은 “오늘 행사는 우리 사회에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정착을 위해 현장에서 애쓰시는 분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자리로 그 의의가 깊다”면서 “정부는 올해 마련된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을 통해 국민의 존엄하고 편안한 생애 말기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