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탄핵 찬성? 의문 남기고 별세한 김영일 재판관

김태훈 2024. 2. 2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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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탄핵심판 때 반대 6 대 찬성 3"
언론이 취재·보도한 내용 정설처럼 퍼져
공식적으론 미확인… 당사자 '노코멘트'

지금으로부터 꼭 20년 전인 2004년 국회를 통과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기각’이란 결론만 알려지고 헌재소장을 비롯한 재판관 9명 중에서 소수의견이 나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헌법재판소법이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소원심판과 달리 탄핵심판 사건은 소수의견 공표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후 법률이 바뀌어 지금은 탄핵심판 사건도 모든 재판관의 개별 의견을 공개한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를 떠올리면 그 차이를 이해할 수 있다.

김영일(1940∼2024)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판사 시절 12·12 및 5·18 사건으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1심 재판을 맡았고, 헌법재판관이 된 뒤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심리에 참여하는 등 유독 대통령들과 인연이 많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세상에 비밀은 없다’라고 했던가. 세월이 흐르면서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불러싼 비화가 하나둘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수의견, 즉 탄핵에 찬성한 의견이 있었다는 것은 물론 소수의견을 낸 재판관이 누군인지까지 드러났다. 물론 헌재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인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소수의견을 낸 것으로 지목된 인사들 역시 입을 다물었다.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 기각 10주년이던 2014년 7월 KBS ‘시사기획 창’은 “노무현 탄핵심판 사건의 진실을 공개한다”며 기자들이 헌재를 상대로 취재한 결과를 보도했다. 이 프로그램은 “KBS의 취재 결과 9명의 재판관 가운데 6명은 탄핵 반대, 3명은 탄핵 찬성을 주장했던 것으로 10년 만에 확인됐다”면서 탄핵 찬성을 주장한 재판관이 권성(2000년 9월∼2006년 8월 재임), 이상경(2004년 2월∼2005년 6월 재임), 김영일(1999년 12월∼2005년 3월 재임) 당시 재판관이었다고 실명을 거론했다.

2004년 3월30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심리가 열리고 있다. 재판관 9명 가운데 왼쪽에서 4번째가 김영일 재판관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헌재의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는 2004년 5월14일 오전 10시3분 시작됐다. 원래는 10시 정각에 윤영철 당시 헌재소장이 결정문 낭독을 개시할 예정이었다. ‘시사기획 창’에 의하면 당시 재판관들은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소수의견을 공개할 수 없다는 점에는 합의한 상태였다. 다만 소수의견을 공표하지 않는 이유를 결정문에 넣을지 말지를 놓고서 논란이 일었다. 결국 그 대목을 결정문에 포함시키지 않기로 하자 탄핵에 탄성했던 재판관 일부가 불만을 표시하며 심판정에 늦게 입장하면서 선고 시간도 그만큼 지연됐다는 게 KBS의 취재 결과다.

실은 KBS 보도에 앞서 2009년 출간된 이범준 작가의 저서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가 이같은 내용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오랫동안 법조 출입기자로 일한 이 작가는 책에서 권성, 김영일, 이상경 재판관이 탄핵에 찬성했다는 점에 더해 헌재의 탄핵심판 사건 선고를 늦춘 장본인이 김영일 재판관이란 점까지 상세히 기술했다. 물론 이에 대한 헌재 그리고 당사자들의 입장은 ‘노코멘트’다.

2004년 5월14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선고를 앞두고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 경찰력이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김영일 등 3인의 재판관이 탄핵에 찬성한 이유는 뭘까. 소수의견이 공개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KBS 기자들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국회에서 다수의견으로 탄핵을 결의했고, 대통령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위법한 행위가 있었다면 헌재는 국회의 결의를 따르는 것이 옳다’라는 논리였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2004년 3월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뤄진 표결 끝에 찬성 193표 대 반대 2표로 통과됐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투표에 불참했다. ‘대통령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위법한 행위’란 2004년 4월 17대 총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여당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한 점을 가리킨다. 헌재도 이 사안이 선거법을 어긴 것이라고 인정했다. 다만 ‘그 위반 정도가 대통령직 파면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라는 논리를 들어 기각 결론을 이끌어냈다.
1996년 8월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의(囚衣)를 입고 서울지법 법정에 출석해 12·12 및 5·18 사건 1심 선고를 기다리는 모습. 재판장인 김영일 당시 서울지법 형사30부 부장판사는 전 전 대통령에게 사형, 노 전 대통령에겐 징역 22년6개월을 각각 선고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그 김영일 재판관이 21일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이전에 고인은 12·12 및 5·18 사건 1심을 맡아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사로 유명했다. 1996년 8월 고인이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 재판장이던 시절의 일이다. 전 전 대통령을 ‘피고인’이라고 호칭한 고인은 “군 병력을 동원, 군 내부 질서를 파괴하고 헌법질서를 문란케 한 점에서 죄질이 매우 무겁다”고 질타했다. “비록 대통령 재직 중 업적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크게 참작할 수 없다”고도 했다. 함께 기소된 노태우 전 대통령에겐 징역 22년6개월이 선고됐다.

다른 법관들 같으면 평생 한 번도 맡지 못할 ‘세기의 재판’을 두 번이나 주관한 고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정말 찬성 의견을 냈는지 확인할 길도 없게 됐다. 진실은 헌재 청사 안에 사료로 보존돼 있다는 소수의견이 공개돼야 알 수 있을 듯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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