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소설과 나란히 노벨 문학상에 빠지다[북리뷰]

장상민 기자 2024. 10. 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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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한국·2024년)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산문”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대한민국은 마침내 노벨문학상 원전 보유국이 됐다. 세계문학과 독자로부터의 완벽한 공인. 이제 한국문학은 한강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사건을 어떻게 하면 더욱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까. 도저히 놓쳐서는 안 될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을 문화일보 북리뷰팀이 엄선했다. 독보적인 서사와 문체를 간직한 한강과 욘 포세, 아니 에르노를 통해 가장 최근의 수상작을 만난다. 또한 어렵게만 느껴지는 노벨문학상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가즈오 이시구로와 오르한 파묵의 친근한 작품을 소개한다.

아시아 여성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한 작가의 작품들을 두고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했다. 이처럼 작가는 등단 후로 줄곧 인간이 인간에게 입힌 상처의 자리를 매만지며, 외면하고 싶은 트라우마로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소설을 써왔다. 대표작으로는 소설집 ‘여수의 사랑’, 장편소설 ‘검은 사슴’ ‘채식주의자’ ‘흰’,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이 있다.

소년이 온다│창비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5월 문학’ 중 단연 최고로 평가받는 작품. 5·18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서 목격한 친구의 죽음 이후 시신 안치소 일을 돕게 된 주인공을 중심으로 국가 폭력의 현장을 재현해냈다. 무참히 살해당한 후 남겨진 시신의 모습,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문의 실태부터 회복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주는 고통의 몸부림까지 남김없이 그렸다.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작가는 제주 4·3 사건을 반 세기의 시간을 넘어 찾아 나선다. 오랜 시간 학살의 잔상이 꿈에 나오던 주인공은 손가락이 잘린 친구로부터 빈집에 홀로 남겨진 ‘새’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제주로 향한다. 폭설을 헤치며 집으로 향하는 여정 속 섬뜩한 감각은 글을 넘어 독자에게 전해진다.

■ 욘 포세(노르웨이·2023년)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 부여”

현대 연극의 최전선을 써내려가는 극작가. 한림원은 그의 작품이 “말할 수 없는 것에 목소리를 부여한다”고 상찬했다. 작품 전반에 마침표를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같은 내용처럼 보이는 문장을 수없이 변주하며 반복하는 문체는 마술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평범한 일상 속 단편을 재현하면서도 삶과 죽음, 인간의 존재 이유와 같은 심오한 주제를 독보적 방식으로 제시한다.

아침 그리고 저녁│문학동네

소설은 노르웨이 해안마을의 한 살림집에서 요한네스라는 아이의 출산 장면을 그리는 1부, 요한네스라는 이름을 가진 늙은 어부가 하루를 시작하는 장면의 2부로 구성돼 있다. 작가는 시작과 끝이라는 두 꼭짓점 사이를 몽롱한 기억의 조각들로 채운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이어붙이며 중첩되는 혼란은 모든 탄생과 소멸이 결코 끊어지지 않고 뒤엉켜 연결돼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멜랑콜리아 1-2│민음사

특징 없는 인물을 통해 소설을 썼던 포세의 작품 중 실존 인물을 다뤘다는 점, 독특한 의식의 흐름 묘사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작품. 생전 주목받지 못한 채 그늘진 삶을 살았던 노르웨이의 화가 라스 헤르테르비그의 삶을 그린 멜랑콜리아 1, 평범한 삶을 살아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한 그의 누이가 죽어가는 모습을 그린 멜랑콜리아 2로 구성돼 있다.

■ 아니 에르노(프랑스·2022년)

“소외·구속 벗긴 꾸밈없는 예리함”

역사상 가장 많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를 배출한 프랑스 최초의 여성 수상자. 한림원은 에르노의 작품에 “사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을 가졌다고 평했다. 스스로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해온 에르노. 그는 ‘자전적 글쓰기’라는 독보적 영역을 구축한 작가로 여겨진다.

단순한 열정│문학동네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높은 선정성 탓에 1991년 출간되자마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에르노가 보여주는 예민한 관찰력은 1인칭의 시점으로 한 사람이 가진 열정뿐 아니라 치열하게 사랑하고 이별한 후 고통받는 인간의 보편적 열정에 대해 묻는다. 도무지 허구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는 마성으로 독자의 탄식을 이끌어 낸다.

세월│1984 BOOKS

노르망디에서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태어나 보낸 유년시절부터 파리 교외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치던 교수 시절과 현재의 작가로 살고 있는 삶에 이르기까지, 굴곡진 60년 동안의 삶을 자전적으로 담아냈다. 자전적 작품임에도 ‘나’는 등장하지 않으며 ‘그녀’와 ‘우리’ 그 밖의 ‘사람들’로 진행되는 소설은 자신을 세대 속에 위치시키며 개인과 역사의 기억을 엮어낸다.

■ 가즈오 이시구로(영국·2017년)

“환상 뒤의 어둠, 여실히 드러내”

일본에서 태어나 6세 때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한 뒤 영미권을 대표하는 중견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한림원은 그의 작품을 향해 “감정에 강하게 호소하는 소설”이라며 “세계와 연결돼 있다는 우리의 환상 뒤에 숨겨진 어둠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그의 소설은 시대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결여된 반성을 성실히 짚는다. 대표작으로는 장편소설 ‘위로받지 못한 사람들’ ‘우리가 고아였을 때’ ‘나를 보내지 마’ 등이 있다.

남아 있는 나날│민음사

문화계에서 영향력이 큰 귀족의 저택에서 일하는 집사장의 시선으로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영국의 시대상을 그린 작품. 계급 사회의 상징인 ‘집사’를 주인공 삼아 낡은 시대와 새로운 시대의 충돌, 삶의 위대함과 허망함을 진정성 있게 풀어냈다. 근래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로 높은 가독성을 지녔다.

클라라와 태양│민음사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출간한 작가의 최근작으로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는 SF적 설정을 지닌 소설. 작가는 인공지능 로봇 ‘클라라’와 불완전한 소녀 ‘조시’가 나누는 우정과 사랑을 그린다. 이상적인 인간의 기준에서 어긋난 모든 것을 배제하는 시대에 작가는 인간이 아닌 존재가 보여주는 헌신, 그를 사랑하는 인간에 대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 오르한 파묵(튀르키예·2006년)

“문화간 충돌서 새로운 상징 발견”

튀르키예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림원은 그의 작품에 “고향 이스탄불의 우울한 영혼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문화 간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동양과 서양의 경계에 선 튀르키예의 전통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서양 문화와 이슬람 문화 간의 경합을 첨예하게 포착한다. 대표작으로는 소설 ‘하얀 성’ ‘새로운 인생’ ‘순수 박물관’ 등이 있다.

내 이름은 빨강│민음사

16세기 말 광대한 오스만 제국을 무대 삼아 펼쳐지는 화가들의 음모와 배반, 그리고 사랑을 그린 작품. 화가를 꿈꿨던 파묵답게 당시 활동했던 화가와 유행했던 화풍, 다양한 화파(畵派)가 자세히 묘사된다. 역사소설이지만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며 다양한 인물은 물론 사물과 색상(빨강)까지 증언의 주체로 등장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페스트의 밤│민음사

1901년 오스만 제국에 펼쳐진 팬데믹 디스토피아. 파묵은 이슬람교와 그리스 정교회가 공존하는 한 섬을 배경으로 그곳에 발생한 전염병과 이를 마주한 인간군상의 각기 다른 모습을 그렸다. 작가가 35년간 구상한 소설 속 강경 방역을 고집하는 정부, 전염병의 존재조차 믿지 않는 집단 등 종교와 계급에 따라 분열하는 사회의 모습은 마치 팬데믹을 예견한 듯 섬뜩하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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