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생각도 않는데 ‘핵존맛’ 김칫국 타령만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다. 9월8일 발표한 핵무력정책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관하여’에 ‘선제 핵 공격’도 가능하다고 적었다. 도발 수위도 높였다. 11월2일에는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지대공미사일을 쐈다. 11월3일에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고, 11월5일과 11월9일에는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을 각각 서해상에 4발, 동해상에 1발씩 쐈다.
여권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국도 핵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핵은 소량으로도 효과가 막대한 비대칭 전력(asymmetric power)이기에 재래식 전력 격차가 무색해진다. 그러나 한국의 독자 핵무장은 현실화 가능성이 극히 낮다. 한국을 포함한 191개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되어 있다. NPT를 주도하는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에 부정적인 입장을 바꾼 적이 없다.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등장한다. 미국의 소형 핵무기를 한반도에 두자는 것이다.
전술핵(tactical nuclear weapon)은 사정거리가 짧은 핵무기다. 사거리가 긴 전략핵(strategic nuclear weapon)과 대비된다. 미국은 벨기에·독일·이탈리아 등 유럽 동맹국에 전술핵을 배치해뒀다. 미국 정부는 수량을 공개하지 않으나 외신과 전문가들은 150~180여 기로 추정한다. 한국에도 전술핵이 배치된 적이 있다. 2017년 11월2일 안보·과학 전문지 〈불레틴 오브 아토믹 사이언티스트(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기사에 따르면 한반도 전술핵은 1958년 주한미군이 반입을 시작해, 1967년에는 최대 950기에 달했다.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이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합의하면서 전량 철수했다. 그해 12월18일 노태우 대통령은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에는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전술핵 재배치론은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일부 개별 의원들이 주장하던 전술핵 재배치론은 홍준표 대표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이끌던 2017년, 잠시 당 차원의 논의로 전면에 등장하기도 했다. 몇몇 의원이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기 위해 방미했으나 미국 현지 인사들의 부정적 반응을 접한 바 있다.
전술핵 등 핵무장 논의는 5년이 지나 당내에서 다시 반복된다. 국민의힘 당권주자로 꼽히는 이들이 전술핵 재배치론을 재차 들고나왔다. 유승민 전 의원은 10월5일 자신의 SNS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핵 공유, 전술핵 재배치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라고 적었다. 조경태 의원은 10월16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전술핵을 “지역구인 (부산) 사하구에 (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김기현 의원은 11월2일 페이스북에 “미친 깡패에게는 몽둥이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핵무장을 통해 공포의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라고 썼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게 ‘NO’다. 국내 전술핵 재배치론에 불쾌감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미국 인사들도 있다. 미국은 한국에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 정책을 천명한다. 미국 본토가 아니라 한국이 받는 핵공격도 방어한다는 의미다. 한국이 핵공격을 받으면 미국은 핵으로 공격자를 보복한다(핵우산). 이는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과 미국 바이든 대통령 간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도 재확인됐다.
1961년 프랑스와 2022년 한국은 달라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 독자 핵무장 주장은 미국의 확장 억제를 의심한다는 전제하에만 성립한다. 의심하는 바가 미국의 능력이든 의지든,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공식적으로 꺼내기 어렵다. 10월1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 “무책임하고 위험하다”라고 말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확장 억제는 핵전력을 포함해 모든 부문을 동원해서 보호한다는 의미다. 이건 누구도 의심해선 안 된다.”
게다가 미국이 마음을 바꿔 한반도에 전술핵을 들이더라도 그리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전술핵 사용을 결정할 권한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나토식 핵 공유’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는 핵정책을 논의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는데, 배치 수량과 타격 요건 등 결정적 사안은 사실상 미국 정부가 정한다. 미국에 의지하지 않고 한국이 직접 ‘몽둥이’를 휘두를 수 있다는 여권 인사들의 주장과 현실은 꽤 거리가 있다.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미국의 의지를 의심한다. 10월14일 YTN 라디오에서 김기현 의원은 “국제사회가 (북핵 방어에) 지원 안 하면 어떡하나? 미국이 우리 동맹국이긴 하지만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를 지키겠다고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일부 국내 언론은 1961년 베를린 위기 당시 프랑스 샤를 드골 대통령이 미국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던진 질문을 언급했다. “미국은 정말 파리를 위해 뉴욕을 희생할 것인가?” 동·서독 갈등을 둘러싸고 유럽에 대한 소련의 위협이 거세지자, 미국의 핵우산에만 기댈 수 없다며 드골 대통령이 한 말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본토 핵 피격을 염려해 소련에 핵을 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10월17일 ‘미국은 서울을 위해 시애틀을 내놓을 것이다’라는 칼럼을 실었다. 여기서 군사전략 분석가 재커리 켁은, 1960년대 프랑스와 2022년 한국 상황은 다르다고 썼다. 국내 핵무장론자들과 달리, 드골은 만약 소련이 프랑스를 상대로 핵을 먼저 발사한다면 미국도 소련에 핵으로 보복할 것이라고는 확신했다. 드골의 의문은 ‘선제 핵 사용’ 여부였다. 1960년대 초반 유럽 지도자들은 소련과 재래식 무기만으로 맞붙었을 때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소련이 재래식 공격을 가할 때도 미국이 먼저 핵을 쏴줘야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드골은 봤다. 이를 확신할 수 없었던 프랑스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반발을 무릅쓰고 독자 핵 개발에 나서게 된다. 〈포린 폴리시〉 칼럼은, 선제 핵 발사를 고민할 정도로 (재래식 무기 기준으로) 전력이 열세였던 “냉전 시기 유럽과 달리 한국군과 미국군은 북한의 재래식 침공을 쉽게 격퇴할 수 있다”라고 썼다.
동맹국이 핵 타격을 받았을 때 미국이 보복할 것이라고 여길 이유는 무엇일까? 칼럼에서 켁은 현지 주둔 미군, 오늘날 한국의 경우 주한미군을 이유로 들었다. “미국은 자국 시민이 공격받을 때 자제력이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에 핵을 사용하면 미군과 미국 민간인 수만 명이 틀림없이 죽는다. 진주만이나 9·11의 비극은 수치상 희미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가 미국 대통령이든 최소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만큼의 압박을 받을 것이다.”
정부는 선을 긋는다. 10월13일 윤석열 대통령은 전술핵 재배치론을 두고 “다양한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임기 초 CNN 인터뷰에서 부정적으로 답한 것과 뉘앙스가 다르다는 평이 나왔다. 그러나 11월3일 제54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전술핵 재배치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정책과 상충한다”라고 잘라 말했다. 핵을 들이면 북한에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명분만 잃고, 실익은 없다는 의미다.
여론은 전술핵 재배치 찬성론이 우위다. 10월20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찬성 49%, 반대 39%다. 그러나 여당 정치인들과 달리 정부로선 여론만 바라볼 수 없는 사안이다. 결정적으로 한국 정부가 칼을 쥐고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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